탈출 포기하고 국민 지켰다.. 29세 조종사의 마지막 출격
20대 청년 조종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공군은 “지난 11일 경기 화성 F-5E 전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故) 심정민 소령(추서·1993년생·공사 64기)은 민간인을 보호하려 비상 탈출을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13일 밝혔다.
심 소령은 11일 오후 1시 43분 경기 수원 공군기지에서 이륙했다. 양쪽 엔진에 화재 경고등이 뜨자 수원 기지로 긴급 선회하던 중 조종 계통 결함이 또 발생했다. 기수가 급격히 떨어졌다. 심 소령은 ‘이젝션(탈출)’을 두 번 외치면서 비상 탈출을 하겠다고 관제탑에 알렸다.
블랙박스 분석 결과, 심 소령이 탈출을 선언하고 화성 야산에 추락할 때까지 10초가량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비상 탈출 장치 손잡이를 당기는 소리는 녹음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심 소령이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잡은 채 가쁜 호흡을 한 정황이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는데도 민간인 피해를 끝까지 막아보려다가 시기를 놓친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전투기는 상하 조종이 불가능하고 좌우 조종만 되는 상태였다. 생사가 엇갈리는 몇 초 새 기수를 야산 쪽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추락 지점과 인근 민가는 불과 100m 거리였다. 주변엔 400가구 아파트, 노인 요양원, 대학 캠퍼스를 비롯, 주택과 공장이 밀집해 있다. 한 공군 조종사는 “그 찰나에 가족을 떠올리며 본인도 살고 싶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훈련된 파일럿의 본능대로 행동한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고인의 살신성인은 ‘위국 헌신 군인 본분’의 표상으로 언제나 우리 군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폴 러캐머라 주한 미군 사령관도 “그의 희생을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군 내에선 최근 북한의 도발 등에 국민 안전보다 북한 눈치 보기가 먼저였던 군 통수권자와 지휘부 처신이 청년 장교의 군인 정신에 비춰 부끄럽다는 자성(自省)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도발에 “대선을 앞둔 시기에 우려된다”며 대선을 우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군 당국 역시 위협을 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군 관계자는 “심 소령 순직을 애도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나 싶다”고 했다.
심 소령은 장교 11명을 배출한 ‘병역 명문가’ 최원일(갑종 156기)씨 일가 구성원이다. 공사 생도 시절부터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동기와 선후배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동료들은 고인을 ‘받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던 우직한 군인’으로 기억했다.
2016년 공군 소위로 임관한 심 소령은 생전 “나는 언제까지나 전투 조종사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대로 본분(本分)을 끝까지 지키다가 28년 11개월 삶을 마쳤다. 다음 달 2일은 고인의 만 29세 생일이다. 수원 빈소로 달려온 친구, 동료들은 고인의 영정을 보고 통곡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13일 밤 빈소를 조문했다.
심 소령 영결식은 14일 오전 9시 소속 부대인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부대장(葬)으로 엄수한다. 유해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부모와 아내를 유족으로 남겼다. 2020년 말 결혼한 신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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