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이긴 다음엔 어쩔 겁니까
요즘 짬이 날 때마다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주변 집값을 살핀다. 전세 만료 기한이 반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OOO이 대통령 되면 영영 집을 못 살 수도 있다” “그럼 나라에서 100만호나 지어준다는 기본 주택에서 평생 살면 된다” “너나 거기 살아라” 같은 말이 오가니 마음이 복잡하다.
앱에 실거주자들이 남긴 솔직 후기를 확인하곤 한다. 한강 다리 건너 백화점을 두고 “집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정보도 종종 있다. 그래도 쓰레기 분리 수거는 일주일에 몇 번 하는지, 평범한 걸음으로 지하철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주차장 자리는 충분한지, 층간 소음은 없는지, 이런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남의 후기를 보려면 먼저 나의 후기를 써야 한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대한 후기를 남긴 적이 있다. “단지가 조용하고 마트가 가까워 좋습니다만, 언덕이 너무 가파르고 분리 배출은 일주일에 하루만 할 수 있어요.”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 “옆 단지는 분리 배출을 오전에 하는데요. 퇴근 후 버릴 수 있는 게 어딥니까?” 또 알림이 울린다. “님 전세시죠?”
엉겁결에 갈라치기를 당했다. 그래, 나 전세다. 그러니 더 솔직하게 적어 주리. ‘윗집뿐 아니라 옆집 소음도 있고요. 출근 시간 마을버스를 놓치면 역까지 20분은 걸어야 하고요.’ 이렇게 쓰려다, 댓글 싸움이 싫어 그만뒀다. 다른 아파트 후기를 살펴보니 ‘바깥 소음이 심하다’는 글에 “새시를 싸구려 쓰셨나 봐요”란 댓글이 달렸다. ‘언덕이 심하다’는 후기엔 이런 댓글도 있었다. “이 핑계 저 핑계만 대니 전세살이 하는 겁니다.”
‘임차인 대 임대인’뿐일까. 세대 갈등도 나타난다. 리모델링 앞둔 단지들이 그렇다. 오래 거주한 어르신들이 이주 부담 등으로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경우다. ‘나이 들어서 왜 이 동네를 고집하실까? 팔고 싼 동네로 나가세요’ ‘분담금도 없어서 버티는데 손주 용돈은 주는지… 참 안됐다’. 같은 아파트에서 얼굴 마주치는 주민들끼리 ‘지능이 떨어진다’는 험한 말까지 오간다.
하긴,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치인들 입에서 ‘틀딱 꼰대’란 단어까지 나오는 시대다. 상식적 청년들은 입 밖에 내지 않는 온라인 은어까지 양지로 끌고 와 갈라치기에 이용한다. ‘갈라치기’는 이 정부의 고질병이었다. 임대차 3법으로 멀쩡하게 돌아가던 전세 제도를 ‘가진 자 대 빌붙는 자’의 대립 구도로 만들었다. 정규직 대 비정규직, 간호사 대 의사, 친일 대 반일... 지난 5년간의 갈라치기로 모두의 삶이 팍팍해졌다.
그런데 사그라질 줄 알았던 갈라치기 기술이 이번 대선에서 유독 명확하고 잔인하게 쓰인다. 한 후보는 ‘타인의 주거 자유를 제한해가며 돈을 버는 게 다주택자’라며 무주택자의 적이 다주택자라고 한다. 집 못 사게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너희끼리 싸워보란 식이다. 또 다른 후보는 일곱 글자 공약을 툭 던져놓고 환호하는 내 편만 챙긴다. 본인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성별을 두고 벌이는 갈라치기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런 편 가르기를 더 겪어야 한다니 애가 탄다. 한쪽이라도 확실하게 표를 얻는 덴 갈라치기만 한 것이 없다는 판단인 걸까. 그래서 반쪽을 모시고 이긴 다음엔 5년간 어쩔 예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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