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복수의결권 주식' 법안, 폐기가 정답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입력 2022. 1. 14.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칼럼 주제로 몇 가지가 떠올랐으나, 국민과 언론의 주목이 덜 쏠린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1주-10의결권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벤처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이야기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벤처특별법 개정안은 개정 목적과 법안 내용 사이에 심각한 모순을 갖고 있다. 먼저,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특별법 개정안의 필요성으로, 유니콘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대규모 투자 유치 시 창업주의 지분 희석과 이에 대한 우려가 투자 및 성장의 장애요인으로 대두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익명의 세 사례를 제시해 왔다.

구체적으로, A사가 총 104억원을 투자유치해 창업주의 지분이 29%로 줄었고, B사는 총 162억원 투자유치로 창업주 지분이 27.75%로 그리고 C사는 총 146억원 투자유치로 창업주 지분이 26.44%로 줄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성장 가능성이 있는 비상장 벤처기업이 지분 희석 우려 없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복수의결권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상장 기업의 경우에 복수의결권 주식발행 없이도 주주 간 사적 계약으로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가 가능하므로, 복수의결권 주식발행을 허용해야만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미국의 구글도 상장 전에 정관을 통해 창업자 측이 이사 과반을 지정하도록 했고, 유니콘으로 성장한 국내 기업들도 유사하다.

그런데 벤처 투자자가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 그런 기업의 창업자가 복수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다면 오히려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공적자금이 들어가 있는 모태펀드가 정부의 정책이나 압력에 의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보유한 비상장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게 된다면, 이는 벤처기업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벤처 버블만 낳을 수 있다.

이런 논리적·실증적 모순을 정부도 알고 있다. 개정안 제16조의8의 발행요건은, 창업 이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의 투자를 받았을 것과 설립 당시부터 가장 나중의 투자를 받기 전까지 계속하여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30% 이상으로서 가장 많은 주식을 소유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복수의결권의 발행대상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벤처기업이고 벤처기업의 대표자는 대규모 투자유치 과정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으므로, 무능한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호의 위험이 없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대규모 투자로 창업자의 지분이 희석되기 전에 비상장 벤처기업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도록 하자는 입법 취지와 모순된다. 실제 법률 개정안의 초안에서는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요건으로 누적투자 100억원 이상이면서 마지막 신규 50억원을 제시했었다. 이를 익명의 세 사례에 대입해 보면, A사와 C사는 10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하면서 창업자의 지분이 30% 미만이 되어서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적용 대상이 안 된다. B사의 경우 100억원 이상 투자유치 당시 창업주의 지분이 얼마였는지 정보가 가용하지 않아 적용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앞서 논의했듯이, 대규모 투자유치 과정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창업자는 복수의결권 주식 없이도 지분과 무관하게 투자자와 사적계약으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정부는 개정안에 보통주로 전환되는 일몰조항 등 안전장치가 있어서 재벌들의 경영권 세습 등에 악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일몰조항으로 인해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창업자의 의결권이 대폭 축소된다. 따라서 일몰조항 때문에 유니콘 기업이 거래소에 상장조차 할 수 없다거나 갑자기 창업자가 경영권을 잃게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결국 존속기간을 대폭 연장하거나 아예 일몰조항 자체를 삭제하는 법 개정 논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형평성에 맞게 재벌기업에도 복수의결권 주식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벤처특별법 개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어떻게 하든지 복수의결권 주식을 법의 테두리에 집어넣으려는 얄팍한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벤처특별법 개정안은 폐기가 답이다. 이 법안이 폐기된다면, 이재명의 민주당이 문재인의 민주당과 다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