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무엇이 상식이고 상식 밖일까

이주연 2022. 1.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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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이 찾아오고, 산에 눈이 덮이면 그리운 얼굴이 있다. 그분은 대학에서 평생을 가르치시고 은퇴하여 진부령 정상 흘리에 주로 머무셨다. 선생님은 1960~70년대 가난하던 시절, 제자들의 등록금까지 대주시느라 빈 월급봉투를 받아 들곤 했다. 때론 가불하기까지 하니 교직원들에게 오해를 받았다. “무슨 교수가 돈을 어떻게 쓰기에 이렇게 사시나!”

한번은 선생님께 외국에서 귀국한 제자가 고급 양장을 선물했다. 여행도 자유화되기 이전이니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제자가 선생님은 ‘속물’이라며 단절을 선언했다. “교수라는 분이 선물을 이렇게 취급하다니!” 이유는 그 선물이 교문 앞 양장점 쇼윈도에 판매용으로 전시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은 어려운 학생을 돕느라 돈이 없어 마지못해 귀한 것을 내놓으신 것이었다. 일상을 초월한 상식 밖을 살면 곡해를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실은 이렇게 상식을 깸으로 삶의 새 하늘이 열리는 것일진대.

지난 주말, 추운 날에도 평창 산골짜기까지 의사 부부가 찾아오셨다. 그분들은 나와 함께 노숙인을 도와 왔고, 40년 지기로 짧지 않은 세월을 ‘통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의사이신 그분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들까지 책임지면서, 세계적 명의로 암센터를 세운 분이기도 하다. 본인이 아프면 환자를 살리려고 링거까지 꽂고 수술해온 분이다. 수술을 많이 하여 어깨를 못 쓸 정도로 산업재해(?)를 겪기도 하였다.

산중 이야기 끝에 세상 이야기가 나왔다. “목사님, 우리 아이에게 지난해, 연립주택을 증여하겠다고 하니 안 받겠다고 해요. 아버지가 평생 땀 흘려 번 것이니 아버지가 쓰셔야 한다고.” 그래서 “3억에 팔았는데, 매입자 사정을 봐서 6개월씩 기다려 잔금을 받았습니다. 그 사이 값이 15억이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해약해도 손해 보지 않으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목사님, 리모델링까지 다 해 놓은 집이니, 산 사람이 들어와서 잘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으로 된 거지요!” 곁에 있던 그분 부인께선 “목사님, 그런데 이젠 우리 아이는 서울에서 제 집 가지고 살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아쉬운 웃음을 지었다. 우린 “한눈팔지 말고, 자기 일에 열심을 내고 사는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세상이 상식적인 세상이 아닌가!” 입을 모았다.

같은 날 저녁, 임시 숙소로 쓰려고 컨테이너 하우스를 수리한 후 도배를 해주겠다고 이웃이 찾아오셨다. 늘 알아서 도와주신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미끄러운 눈길을 이기고 찾아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만 일을 마치고 가시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폐차하고 말았다. 겨울 눈길은 4륜 구동이 아니면 어려운데 일반 차량으로 오신 것이다. 온전히 보상할 능력은 없어 4륜 구동 중고차 매입 종잣돈이라고 드리니 끝내 거절하시는 것이다. 억지로 내맡겼다. 나는 송구하여 우선 우리 4륜 트럭을 쓰시라 하였더니 끝내 거절하신다. 오히려 미안해하는 티가 역력하다. 상식 밖이다.

지난 일이 떠오른다. 큰 자선 재단에서 노숙인을 위한 목욕 빨래 시설 짓는 일을 도와주시겠다는 고마운 제안이 있었다. 나는 받은 것으로 여기고 감사드리며 사양하였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노숙인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일이다. 노숙인들이 먼저 한 푼 두 푼 모으고, 그 위에 다른 이들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일 직후, 100원 500원 모으기를 3년 넘게 하였다. 일반 교우들도 열심히 보탰다. 그러나 그 기간 교회 인근 지역의 땅값은 몇 배로 뛰었다. 좌절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스스로 주인 의식을 갖는 것이다. 시설을 못 만들어도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 무모한 행진을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 대형 교회 담임목사님이 만나자는 것이었다. 만나니 “산마루교회 부목사라 생각하시고, 함께할 일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돕겠다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 진실한 마음에 감동해 함께할 마음을 먹었다. 그 후 2년이 지나, 노숙인 목욕 빨래 시설을 만들었다. 그러자 얼마 후, 세상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요지는, 큰 교회 도움 받은 것으로, 건물을 사서 카페를 차리고서 제 주머니 채운다는 이야기였다. 실은 임차해서 카페를 하며, 급식소 겸 노숙인 대학 강의실과 중독자 상담실로 쓴 것이었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주며, 청년들에게 맡긴 것이었다. 이익이 남으면 전액 노숙인 돕기에 쓰라면서. 하지만 운영 실적은 매해 마이너스 2000만원 전후였다. 이런 일을 겪을 때에 한 교우가 위로의 말을 했다. “목사님, 그런 소문이 세상의 상식입니다!” 코로나로 이젠 임차를 종료하고 문을 닫았다. 급식도 종료되었다. 기도 중에 새로운 날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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