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방역패스’ 이름부터 잘못
“말이 좋아 방역패스지, 방심패스 아닌가요?”
최근 본지 취재에 한 감염내과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 교수는 단순한 ‘백신 접종 이력’을 ‘방역패스’로 명명(命名)하는 게 온당한지 물었다. “백신 맞은 걸 마패나 훈장처럼 ‘방역 면제권’으로 치부해도 되는 겁니까? 누군가에겐 과도한 면죄부를 주면서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죄책감을 안겨주는 것 아닌가요?” 지난 4일 법원도 같은 논리로 학원·독서실 방역패스에 제동을 걸었다. “방역패스는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과도한 차별이다. 백신 접종자에 의한 돌파 감염도 상당수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법원 결정문의 한 구절이다.
공중보건에서 용어나 명칭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들은 결과지에 적힌 ‘정상’이란 단어를 ‘건강’이라고 해석한다. ‘정상’은 데이터상 아무런 질병을 못 찾았단 의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단어에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감염병 사태에선 더더욱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다른 의미를 연상시키는 용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 2009년 정부는 변종 바이러스 기반의 유행성 독감에 ‘신종(新種) 플루’란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은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가 출현했다는 사실에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곧바로 치료제 ‘타미플루’가 출시됐다. 전문가들은 “이 독감은 사실 기존 다른 독감들보다 더 위험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부는 지난해 ‘백신 2차 접종 확인서’에 ‘방역패스’란 이름을 붙였다. 백신 접종 이력에 방역 전반을 끌어와 무한의 자유를 허용한 것이다. 이 용어가 과연 중립적이고 불가피했을까? 얼마 뒤 우리나라에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돼 버리면 지금의 방역패스는 무의미해진다.
용어의 중립성은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잠시 프로파간다로 쓰고 말 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사용되는 이 용어가 5년, 10년 뒤에도 유효할지를 따져봐야 한다. 지난해 정부가 천명했던 ‘위드 코로나’는 한 달 만에 그 초라한 성적표를 드러냈다. 신규 확진자 4000~5000명대에, 위중증 환자는 2주 가까이 1000명대를 유지했다. 정부 공언대로 완벽하게 ‘코로나와 함께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정부는 또다시 ‘K방역 2.0′이라는 수사(修辭)를 들고나왔다. 올해부턴 ‘자율 방역’이 새로운 기조라고 했다. 2년 가까이 자화자찬하던 ‘K방역’이 실패라는 비판을 받자 슬그머니 새 이름을 내세운 것이다. 코로나 3년 차를 맞는다. 그럴 듯한 말로 현실을 덮는 건 언제까지 계속될까. 방역은 잠시 말로 꾸민다고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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