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만물상] 위문편지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22. 01. 1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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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해도/ 고마운 우리 국군 아저씨길래/ 정성 들여 위문편지 써 보냈더니/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왔어요~.’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동요 ‘위문편지’엔 전방 군인들에게 단체로 편지 쓰던 1970년대 교실 풍경이 녹아 있다. 여중·여고생 중엔 ‘이번에는 내 사진도 넣어 보내고~’라는 가사 2절처럼 사진을 넣어 보냈다가 편지를 주고받게 되고 훗날 결혼하는 사례도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 쓴 적 없던 위문편지를 몇 해 전 아들이 입대한 뒤 다시 썼다. 훈련소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글을 남기는 ‘인편’(인터넷 편지)은 당일로 배달되니 편리했다. 훈련소 첫날 잠 못 이뤘던 경험을 들려주고 “군대 시계 금방 간다”고 위로했다. 각개전투와 행군을 힘들지 않게 하는 요령도 귀띔해줬다. 다 큰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편지로는 그게 됐다.

▶위문편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독부 주도로 초등학생들에게 쓰게 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게 이렇게 저렇게 이어져 오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시대인 지금까지 극히 일부에서 남아 있다고 한다. 교육부나 국방부와는 상관 없는 학교 자율이라고 한다. 외국에도 위문편지 문화가 있다. 제복 입은 이들을 각별히 존중하는 미국에선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주로 해외 파병된 군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서울의 한 여고생이 쓴 위문편지 때문에 요 며칠 소셜미디어가 들끓었다. 인터넷에 공개된 편지를 읽어보니 청춘의 한 시기를 나라 위해 희생하는 장병에게 보낼 글로는 부적절했다. 차라리 편지를 안 보내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쓰라고 해서 억지로 보낸 위문편지들 중에는 이보다 더 심각한 내용도 있다고 한다.

▶그런 한 편으로 요즘 시대에 위문편지는 시대착오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남자에게 군 입대는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편지가 주요 연락 수단이기도 했다. 70년대 이전 군 생활은 배까지 고팠다. 고생 그 자체였다. 이런 시대에 위문편지는 군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다. 부모나 친구·애인과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연락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시절에 어린 학생들이 보내 온 편지를 읽으면 두고 온 고향 생각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엔 학생들도 정성 들여 고마운 국군 아저씨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군에서도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된 뒤로 가족 친구와 수시로 통화한다. 이제는 위문편지가 아니라 위문카톡의 시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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