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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예능이 상기시키는 종교 상식

입력 2022. 01. 1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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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다수의 수다'는 매주 한 분야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다.

"사실 방송에서 종교 얘기는 금기시돼 있거든요. 웬만하면 피하려고 해요." MC 유희열의 말처럼 미디어한테 종교는 환영할 만한 주제가 아니다.

그래도 성탄절, 석탄일이면 어김없이 TV에 종교가 등장한다.

네 명 모두 입담이 대단한데, 특히 제 종교를 웃음 소재로 삼는 데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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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JTBC ‘다수의 수다’는 매주 한 분야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다. 연말을 맞아 12월 10일 주인공은 종교인이었다. “사실 방송에서 종교 얘기는 금기시돼 있거든요. 웬만하면 피하려고 해요.” MC 유희열의 말처럼 미디어한테 종교는 환영할 만한 주제가 아니다. 말 많고 탈 많기 일쑤여서다. 그래도 성탄절, 석탄일이면 어김없이 TV에 종교가 등장한다. 오래도록 세속 미디어가 지켜온 의례다.

한번 이 프로그램 PD 자리에 앉아보자. 그리고 질문해 보자. 우리 회사는 비종교 종합편성 채널이다. 교양을 다루는 프로그램이지만 예능적 성격도 강하다. 이번 아이템은 종교로 정해졌다. 고민할 게 너무 많다. 섭외는 어떤 기준으로 할까? 토크 소주제는 무엇으로 하나? 어떤 말을 끌어내야 하지? 편집할 땐 무엇을 살리고 무엇은 버릴까?

방송분은 분명 이런 깊은 고심의 결과였을 거다. 다행히 시청률도 자체 최고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종교를 다루는 TV 예능의 교과서처럼 보인다. 세속성이 기본 원리로 작동되는 우리 사회가 종교를 바라보는 상식들이 엿보인다. 뻔해 보이지만 자기 논리와 언어에만 매몰된 종교라면 경시하기 쉬운 것들이다.

먼저 우리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날 게스트는 개신교, 불교, 가톨릭, 원불교의 성직자 한 명씩이었다. 카메라가 비추는 시간은 넷이 엇비슷하다. 인구 비율이나 힘의 크기하곤 상관없다. 누구 하나만 스타가 되는 건 막겠다는 편집 의도 역시 감지된다. 종교 간 차이도 이야기하지만, 방점은 언제나 공통점에 찍힌다. 성직자들의 격의 없는 수다는 MC들에 의해 ‘종교 화합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승화된다. 목사가 법당 불상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설교하고, 불자들이 만든 성가대가 캐럴을 부르는 모습이 칭송 대상이다.

이런 다종교 공존 상황에서 유머 코드는 자기 종교를 낮추는 데 있다. 네 명 모두 입담이 대단한데, 특히 제 종교를 웃음 소재로 삼는 데 유능하다. 자신들의 급여 체계를 비즈니스에 빗대어 각각 ‘자영업, 직영점, 프랜차이즈, 스타트업’으로 칭할 때도 거침이 없다. 성직자를 향한 친근함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한화 보살 팬’을 잘 이해하고, 면 앞에선 불을까 봐 식전 의식도 짧아진단다. 와중에 “지금 다들 영업하고 있습니다”며 은근한 속내도 드러낼 줄 안다. 종교인의 호감은 ‘고결’이나 ‘권위적’과는 거리가 멀어야만 가능하고, 대중의 삶과 현실을 잘 아는 게 핵심 요건이다.

동시에 무례한 종교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23년 차 스님 동생에게 목사의 안수기도를 강권하는 누님이나, 다른 종교 성직자를 향한 노방전도에 대한 리액션은 깊고 긴 한숨이라야 제격이다. 영화 ‘밀양’ 속 유괴범의 신앙은 목사에 의해 용서에 대한 경박한 이해와 무책임으로 정리된다. 종교적 신념 차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타 종교 혹은 비종교를 존중하지 않는 건 무례이자 몰상식으로 읽힐 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세속사회가 인정하는 ‘종교다움’이다. 민주화 시절 종교를 떠올리며 유희열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지막 보루”라고 규정한다. 클로징 자막에선 “약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언제든 기꺼이 손을 내어주는 일.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종교인”이라 못 박는다. 사랑, 평화, 그리고 약자의 편. 종교 사이 벽을 초월해 세속사회가 말하는 종교다움의 알맹이다.

세속과의 대화에 나설 때 종교가 갖춰야 할 기본은 뭘까? 자기 종교만의 ‘배타적 진리’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TV 예능이 상기시키는 상식들은 그 실마리로서 훌륭하다. 더구나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종교라면 더 곱씹어야 할 성찰의 교과서다.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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