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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잔인하고 식상한 단일화는 실패한다

남도영 입력 2022. 01. 1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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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영 논설위원


단일화는 잔인한 게임이다. 단일화에 주로 사용되는 여론조사라는 방식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이다. 여론조사는 인기투표다. 올라갈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 특정한 시점, 몇 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로 정치 생명이 결정된다. 이긴 사람은 대권에 도전할 자격을, 진 사람은 실권 없는 들러리로 전락한다.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여론조사 득표율 차는 4.6% 포인트에 불과했다.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면 이겼다거나 졌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의미 없는 표 차이로 후보가 결정된다. 유권자에게 단일화는 식상한 소리다. 선거 때면 늘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또 단일화 타령이냐”는 소리부터 나온다. 1997년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후보의 DJP 연합은 태풍이었고,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드라마였다. 2012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후보에겐 잔인하고 유권자에겐 식상한 단일화가 또 등장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다른 길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과거엔 주로 좌파 진영의 단일화가 이슈였다. 이번에는 보수 진영의 단일화가 핵심이다. 대선 구도가 ‘이재명이냐 아니냐’ ‘정권교체냐 아니냐’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모두 정권교체의 열망을 홀로 채우지 못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두 후보의 결함들이 드러났다. 윤 후보의 행보는 실망스러웠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검사는 어느새 말실수 많은 ‘바보 형’이 됐다. 내부 통합에 실패한 후보, 비전이 부족한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렸다. 안 후보는 단기필마다. 정치를 10년 했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 “내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말하던 2017년의 부정적 이미지는 벗었지만, 정권을 맡길 만큼 신뢰를 얻진 못했다. 지지율 10%대를 기록 중인 안 후보가 남은 기간 1위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윤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제압하고 압도적인 1위 후보가 될 수 있을까. 둘 다 비관적이다. 약점은 단기간에 극복되기 어렵다.

단일화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손쉬운 길이다. 약점 많은 1등이 있는데, 약점 많은 2등과 3등이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이다. 게다가 정권교체 여론도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높다. 그런데 생각만큼 단일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시간이 없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협상 제안으로부터 24일이 걸렸다. 정몽준 캠프가 11월 1일 단일화를 공식화했고, 단일화가 이뤄진 것은 11월 25일이었다. 대선 24일 전이었다. 13일 현재 대선까지 55일 남았다. 지금부터 단일화 협상을 공식화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단일화의 전제다. 단일화는 양보의 게임이 아니다. 참가자 모두 자신이 후보가 되는 단일화를 상정한다. 상대방이 후보가 되는 단일화는 선택지에 없다. 그러니 2등과 3등 모두 자신이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 서야 단일화가 가능하다. 참가자 모두 승산이 있다는 확신이 서는 상황이 쉬울 리 없다. 우연들이 겹치고 여러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아니면 누군가 큰 양보를 해야 한다. 윤 후보도 안 후보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에 성공하더라도 국민이 지지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지를 얻으려면 믿음을 줘야 한다. 2등과 3등이 힘을 합쳐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지금까지 정치권의 단일화가 보여준 것은 승리를 위한 신경전, 마타도어, 약속 뒤집기였다. 승자독식 게임처럼 변해버린 단일화가 성공하려면 아름다운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에서 협치와 타협이 가능하다는 점을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핵심 정책들을 함께 공약하고,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제한해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는 권력 운용을 약속해야 한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는 것은 문재인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바람이다. 정치가 극한적 진영 대결에 빠지지 않고 토론과 타협의 장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단일화는 실패한다. 성사되더라도 지키지 못할 권력 나눠 먹기에 불과하다.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이런 단일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보여준 두 후보의 모습, 두 후보 진영의 정치력을 생각하면 어려울 것 같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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