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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아픈데 병원까지 1시간"..멀고 먼 인구소멸 지원 정책

이수민 입력 2022. 01. 14. 05:00 수정 2022. 01. 1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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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상주시의 한 포도농원에서 최성경씨가 포도를 가꾸고 있다. [사진 최성경]

‘서울 토박이’ 최성경(39)·최은아(37)씨 부부는 2년 전 경북 상주로 내려왔다. 아이가 생기면서 귀촌을 결심했지만 ‘귀촌 판타지’는 얼마 가지 못했다. 귀촌 첫해 포도밭 3300㎡를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손에 쥔 돈은 1000만 원이 안 됐다. 트랙터와 비룟값 등 초기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 탓이다.

고심 끝에 부부는 요즘 인기품종인 ‘샤인머스캣’을 재배하려 밭을 계약했지만 대출부담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현재 소득으로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린 3억 원의 이자와 원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농업창업자금은 5년 거치 5년·10년 상환 조건이어서 15년 안에 갚아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보육 환경이었다. 마을에 아이 또래가 없는 데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기반이 열악하다. 아내 최씨는 “농번기 때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1시간을 차를 타고 읍내 병원으로 달려야 한다”며 “‘다행히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적응해 가고 있지만, ‘서울로 돌아가냐 하나’ 고민할 만큼 어려운 적도 많다”고 말했다.

귀농·귀촌·귀어를 꿈꾸는 청년이 늘고 있으나 “여전히 농촌 정착에는 어려움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의 인구소멸을 막기 위한 청년 지원책들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0대 이하 귀농 가구 수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청년층 귀농가구 역대 최대


귀농·귀촌에 대한 청년층의 관심은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30대 이하 귀농가구는 역대 최대치(1362가구)를 기록했다. 더욱이 비수도권 청년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귀농·귀촌인의 정착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수도권 인구는 34만3420명(1.3%) 늘어난 반면, 비수도권은 48만3155명(1.9%) 감소했다.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줄이고 인구소멸지역에 대한 지원을 위해 지난해 10월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방소멸 대응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지원을 강화할 태세다.


땅, 주택 얻는 것조차 불안


경상남도 남해군 팜프라촌 입주민들이 마을내 이동식 목조주택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 팜프라촌]
청년들은 귀농·귀촌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토지·주택에 대한 불안’을 꼽는다. 논·밭은 아파트와 달리 매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아서다. 운 좋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더라도 땅주인이 나가라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정부도 이런 현실을 감안한 ‘농산어촌 청년 관련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지원사업의 선발 조건이 워낙 까다로운 탓에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청년 창업농에 선발되면 3년간 영농정착 지원금을 월 최대 100만원씩(1인당)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농사를 지을 땅이 있다’는 서류를 갖춰야 해 자본이 적고 연고가 없는 귀촌 청년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나온다. 해당 지역에서 임대를 내놓은 땅 또한 농사 경험이 많은 원주민에게 먼저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제주에서 2년째 당근 농사를 하는 백인호(37)씨는 지난해 7월 농지은행에서 도움을 얻어 밭을 빌린 후에야 겨우 정부의 ‘청년 창업농’ 사업에 지원할 수 있었다. 백씨는 “실제 농사를 짓는데도 농지가 있음을 증명하는 ‘농지원부’가 없으면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부모님께 물려받을 게 있는 ‘후계농’을 보면서 농촌 금수저는 따로 있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2018년 현재 청년 창업농 사업의 지원 대상자 중 64.4%는 부모에 이어 농사를 짓는 후계농으로 파악됐다.

농어촌의 주택을 지원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마다 ‘귀농인 농가주택 수리비 지원사업’이 있으나 해당 건축물의 등기부 등본이 있어야 한다. 농가주택을 새로 지으려고 해도 농업에 의한 수입액이 전체 수입액의 50%를 넘을 때만 허가가 가능하다. 최성경씨는 “농사 초기부터 큰 수입을 기대할 수 없어 아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아내의 벌이가 오히려 농가주택을 짓는 데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귀촌 정책이 ‘다인가구’에 집중된 것도 문제다. 2020년 현재 귀촌인의 74.7%가 1인가구다. 젊은 층에선 그 비율이 더 높은데도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역살이 체험을 운영 중인 오린지 농업회사 팜프라 관계자는 “팜프라촌의 입주를 희망하는 청년의 80%가 1인가구”라며 “농촌에서 지낼 공간을 빌리고 싶어도 가족 단위 중심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 1인가구의 접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5년간 수도권비수도권 인구 증감률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농사지어야만 귀촌?…귀농어 비율, 전체 1%
농·어업을 위해 귀농·귀촌을 하는 경우에 지원이 집중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농촌진흥청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회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현재 30대 이하 청년층 지역 유입 유형 중 귀농어의 비율은 전체 1% 수준이어서다. 오 팀장은 “청년들 중엔 카페, 운동, 법무사,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원래 하던 일을 귀촌 이후에도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역에서도 다양한 비즈니스를 이어나갈 기회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귀농·귀촌 희망자와 지역 전문가를 연계해주는 ‘귀농닥터’ 제도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번의 교육에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데다 농업인이나 전문가들의 수당이 낮아서다. 박종관 전국귀농운동본부 강사는 “귀농이란 한 개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선택인 만큼 이들과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며 “(귀농닥터는) 좋은 제도이지만 귀농인에게 종합적인 선택지를 찾아주려면 보다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귀촌 청년 지원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귀농·귀촌 정착률이 낮다는 점에서 보다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주인 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농어업과 관련된 기술과 정보를 제공한 뒤 정착을 원하는 청년들에 한해 생활기반을 지원하는 등 단계별 지원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지원 체계가 귀농에 편중되다 보니 자영업, 문화콘텐트업 등 농업 외 귀촌 산업은 사각지대에 있다”며 “농촌으로 눈을 돌리려는 청년들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발전의 근본은 일자리”라며 “스마트화한 농·어업 단지로 청년들이 접근성을 가질만한 일자리를 만들고, 기반시설을 확대해 지역에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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