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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Mania | 세운상가, 건물 자체가 현대 서울의 역사이자 거울

입력 2022. 01. 14.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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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를 걷는다. 작은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종묘가 보인다. 그리고 그 맞은편, 회색 콘크리트로 된 한 덩어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도 오래된, 연식의 깊음을 알 수 있는 건물이다. 바로 세운상가이다.

1 을지로 지하도와 청계천 대림상가를 연결하는 지하 연결 통로는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길게 늘어선 세운상가군 7개 건물 중 도심 지하도와 연결되는 최초의 보행 통로다. (사진 2021.02.18.이충우기자, 매경DB)

이 상가는 무려 53년 전에 지어졌다. 보통 세운상가를 종로3가에 있는 것으로 국한해 생각하지만 세운상가는 종로3가를 시작으로 청계천, 을지로, 퇴계로까지 이어진 건물을 통칭한다. 세운상가, 아세아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신성상가 그리고 진양상가이다.

이 건물이 세워진 유래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간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미군의 폭탄 세례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불바다를 일으키는 소이탄의 피해가 제일 컸다. 해서 일본은 건물을 짓지 않고 공터로 남겨놓는 소개공지를 만들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총 19곳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종묘에서 필동까지의 소개지이다. 넓이 50m, 길이 1180m의 공터가 생긴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자 이 공터에 가난한 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판잣집을 짓고 난전을 벌이고 결국에는 ‘종삼’이라는 집창촌까지 생겼다. 1960년대 도시 개발 붐이 일면서 이 지역에 대규모 주상 복합 단지를 짓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1966년 지역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고 1967년에 건물이 완성되었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이곳의 이름을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세운世運’이라 지었다. 이 건물에는 가스보일러,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상층부 아파트의 인기는 대단했다. 사회 저명 인사는 물론 연예인 등이 거주했다. 하층부에는 전기 제품을 비롯해 공구, 가전 가게들이 입주했다. 1980년대 개인용PC의 전성기 때는 8, 16비트를 포함해 모든 소프트웨어의 카피 제품들이 이곳에서 유통되었다. 한때 ‘이 상가를 한 바퀴만 돌면 미사일, 잠수함, 심지어는 우주선도 만들 수 있다’는 말까지 돌 정도로 한국 전자기기의 메카였다.

그러나 쇠락은 금방 찾아왔다.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세워지고, 2003년 송파 가든파이브가 만들어지면서 대부분의 상가가 이전했다. 그러면서 세운상가 지역의 3층 공중보행로에는 이른바 ‘삐끼’들이 진을 치기 시작했다. 이곳을 걸으면 “학생, 좋은 거 있어”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들었던 새다. 이른바 ‘빨간책’ 등 음란물의 공급지가 된 것이다. 당연히 상층부의 아파트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은 강남, 이촌동으로 떠났고 그들의 빈자리는 상가의 기술자들의 숙소와 가내공장으로 변했다.

공사 잔해를 치우고 페인트 칠을 다시 하되 세운상가의 상징은 그대로 남겼다. 사진은 리뉴얼 전(위쪽)과 후(아래쪽) 모습(사진 퍼셉션).
점점 슬럼화 되어가는 세운상가는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과 보존 계획이 번갈아 수립되었다. 2008년 세운전가상가는 세운초록띠공원으로 재탄생했지만 2012년까지 상가 철거 계획은 금융위기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2014년 리모델링 보존형 개발을 추진했고 이후 2017년 세운상가는 재개장하고 청년 창업, 벤처기업 등이 입주했다.

세운상가 설계자는 김수근이다. 그는 지상 1층은 자동차 전용, 3층에는 공중데크를 설치해 보행을 돕고 상가 위 아파트 건물은 유리로 덮는 아트리움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건물에는 파출소, 초등학교가 들어서고 공중정원도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건물은 설계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 세운상가는 세운청계대림상가의 약 350m의 보행로는 양쪽으로 가게들과 창업 공간 즉 메이커스 큐브가 있다. 가전, 조명은 물론 갤러리, 카페 등이 모여 ‘힙지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호텔PJ가 들어섰고 진양상가는 꽃상가와 인근 인쇄소 거리와 연결되어 하나의 구역을 형성했다. 전자상가 메카에서 욕망과 일탈의 공간으로, 그리고 이제는 젊음과 도전, 옛것과 새로움의 공존 공간이 되었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매경DB, 퍼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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