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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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 '언제나 초록' 남쪽의 빛 담양 이야기

입력 2022. 01. 1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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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 다녀왔다. 대나무숲으로 늘 푸른 곳인데 겨울철에는 메타세쿼이아 잎이 붉게 물들다 떨어지면서 색깔은 다양해진다. 그러나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가 담양의 전부는 아니다. 아름다운 근대 문화 유물과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하천, 방죽길, 그리고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국수집까지, 담양의 빛나는 공간들을 함께 보자.

▶메타세쿼이아 이름과 친해지기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다.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완전히 하늘을 향해 꺾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로수 길을 걷노라면 수많은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봄과 여름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연두와 초록의 세상이다. 가을이 오면 길은 붉은색으로 변화하고, 계절이 깊어질수록 그 색 또한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 겨울철 눈이라도 내려주면 메타세쿼이아 길은 그야말로 겨울 왕국으로 변신, 찾은 사람들을 동심의 세계로 빠트려버린다. 이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는 그 모습처럼이나 숱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실, 영 외워지지 않는 이름이다. 메타세쿼이아는 미국과 뉴질랜드가 고향인 나무로 최대 100m 넘게 자라는 거목이다. 키가 너무 커서 뿌리에서 보내는 수분이 꼭대기까지 도달하지 못하자 나무 윗부분은 안개, 습기를 빨아들여 영양을 자가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한번 태어나면 2500년에서 3000년을 살다 죽으니, 이 나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우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화석 나무가 20세기 중반에는 멸종목으로 분류된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화석으로나 볼 수 있는 지구의 유산으로 종의 막을 내렸던 것이었다. 그것도 인간에 의해.

1941년 중국 스촨성과 후베이성 사이를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인 마타오치강에서 왕전이라는 이름의 산림공무원이 생태계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어느날 마타오치강 연안에서 거대한 삼나무숲을 발견했는데, 자세히 조사해 보니 이게 단순한 삼나무가 아닌 이미 멸종되었다고 보고된 바 있는 세쿼이아였다. 중국의 산림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은 이 군집하고 있는 나무의 유전자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1946년에 중국지질학회지에 세쿼이아가 여전히 멸종되지 않고 생존하고 있다는 과학적 논리를 발표했다. 이 주장은 세계 관련 학계에서도 인정받게 되어 세쿼이아는 ‘그 이후’, ‘뛰어 넘는’ 등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를 기원으로 하는 영어 접두사 메타와 접사하며 ‘세쿼미아 뒤를 잇는 나무’, ‘메타세쿼이아’로 명명되었다.

종말을 맞은 줄 알았던 메타세쿼이아의 발견은 중국에서 했지만, 본격적인 연구와 종 보전, 번식 작업은 중국이 아닌 미국의 아놀드 식물원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아놀드 식물원은 북미 최대의 식물원인데, 정원으로서의 식물원이기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지구 식물의 다양성, 인류의 근본적 가치 등을 탐구하는 실험실이자 연구소다. 아놀드 식물원에 유입되는 모든 식물들은 유전자 중심으로 데이터베이스화되며 유전자원 보호를 위해 적절한 인원 이상의 관람객을 받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872년에 설립되었으니 그동안 그들이 쌓아둔 지구 식물의 생로병사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 면에서 중국에서 발견된 메타세쿼이아의 세부적인 관찰과 번식을 위한 연구가 아놀드 식물원에서 이뤄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시작된 종 복원 작업 덕분에 우리에게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걸으며 사색에 빠질 기회가 온 것 아니겠는가.

사실 한반도에도 메타세쿼이아의 자생 흔적은 남아 있다. 경주와 포장 일대에서 발견된 화석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학계에서는 해당 화석의 형태와 지질을 미루어 보아 오래 전 한반도에서도 세쿼이아가 살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아놀드 식물원에서 메타세쿼이아 복원 작업이 성공을 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이 나무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담양군청 자료에 따르면 메차세쿼이아 최초로 수입한 사람은 임목육종학자인 현신규 박사다. 1956년 첫 수입된 메타세쿼이아는 이후 조경수, 가로수로 활용되었다. 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빠른 속성수라는 점도 인기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메타세쿼이아가 담양의 명물이 된 결정적 역학을 한 사람은 1972년 당시 담양군수를 지낸 김기회 씨였다. 그는 담양군청에서 금성면 원율삼거리로 이어지는 5km 구간에 메타세쿼이아를 심은 것을 계기로 담양 주요 도로에 같은 나무를 꾸준히 식재, 담양이 메타세쿼이아 도시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1972년이면 한국의 경제 사정은 후진국 수준이었고, 하물며 지방의 소도시 재정이야 오죽했을까. 그러나 김기회 군수는 중앙 정부의 별도의 지원 없이 메타세쿼이아 식재에 힘을 쏟은 것이다.

당시 그의 목표와 계획 속에 21세기 푸른 담양의 그림이 있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을 이야기 하면 결코 김 군수의 집념이 어린 메타세쿼이아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단순한 가로수 길이 아니다. 길과 함께 역사와 지질, 생태를 보고 배울 수 있는 문과공간이 함께 하는 담양 생태의 허브이다. ‘메타세쿼이아 랜드’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가로수 길 북쪽으로는 호남기후변화체험관, 세계지질공원, 에코허브센터, 학동마을 친환경농산물 체험장 등 기후, 환경, 자연 관련 문화 공간들이 있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좋아하는 개구리 생태공원도 이곳에 있다. 그러나 북쪽으로 가지 않고 남쪽 어린이프로방스로 들어갔다. 그곳의 넓은 정원에는 공룡 모형들이 뜨문뜨문 서 있다. 스테고사우르스, 데이노니쿠스, 티라노사우르스 등 공룡들과 화석나무인 메타세쿼이아 숲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장면을 그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의 마음도 이렇게 즐겁게 해 주는 공룡들이라니, 어린이들에게는 얼마나 쫄깃한 순간들일까.

▶담양의 늘 푸른 빛 죽녹원

대나무가 먼저였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은 대나무 이후에 담양에 모였을 것이다. 담양은 기후와 지리적 여건이 대나무에 맞춰져 있다. 사람 사는 곳에 대나무가 있고, 대나무 있는 곳에 필히 마을이 생겨났다. 온통 대나무로 가득한 도시이다 보니 대나무를 피해 살 방법도 없었다. 대나무는 담양 사람들의 주거 환경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자원이 되어 담양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대나무로 만든 물건 중 기억나는 게 있으신가? 바구니, 소쿠리, 광주리, 부채, 방석, 조리, 삿갓, 빗자루, 죽부인, 의자, 테이블, 심지어 스키와 설화도 대나무로 만들었다. 음식으로써의 대나무는 죽순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대나무 통에 영양밥을 넣어 짓는 대통밥도 전국에서 맛볼 수 있는 인기 메뉴가 되어 있다. 대통밥에서 대나무는 단순한 그릇의 기능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의 향기와 영양이 대통밥의 중요한 식재 요소로 작용한다. 현재 바구니, 소쿠리, 광주리 등 전통적인 제품들은 일상 용품으로도 많이 남아 있지만 대나무는 오히려 부가가치 높은 명품급으로 제작되어 고가로 팔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제품들은 이제 담양 지역은 물론 많은 전문 브랜드에서 디자인되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담양 인구의 30%가 대나무 생활용품 제작, 죽공예, 대나무밭 관리 등을 하며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미미한 편이다. 이제 죽공예, 용품 시장보다 오히려 대나무, 대숲 자체가 전국을 아우르는 특화된 명품이 되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대숲은 담양군 정부에서 관리하고 인프라 구축 역시 담양군에서 기획하고 조성한다. 상인들은 지역에 적절한 상업 공간을 만들었고 관광객과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았다.
죽녹원은 천연 자연 대나무 군락지였다. 관리가 되기 전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지만,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거친 숲이기도 했다. 2005년 담양군은 이 깊고 넓고 높은 대나무숲에 ‘죽녹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체계적인 관리를 시작했다. 입장료를 받아 지방 정부의 재정 순환에 보탰고 산책로와 쉼터, 문화공간, 한옥 체험장 등을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산책과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책로는 운수대통길(420m, 15분), 사색의 길(80m, 2분), 죽마고우길(130m, 4분), 철학자의 길(440m, 15분), 선비의 길(360m, 10분) 등이다. 겨울철에 이 모든 코스를 걷기란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 눈보라가 몰아치지 않는 이상,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약 2.4m의 대숲길을, 그것도 한겨울에 피톤치드 향에 에워 쌓이는 경이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죽녹원 출입구 초입에 있는 이이남미술관은 대나무 도시 담양의 이야기와 풍경을 미디어아트로 전시해 놓은 곳으로 꼭 한번 들려 볼 만하다. 죽향정, 의향정, 불이정, 추월정 등 대나무 고을 담양과 잘 어울리는 정자들도 산책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죽녹원 후문 앞에 있는 추성관도 들러볼 만하다. 임진왜란 때 순창의 유팽로 의병장이 의병을 일으킨 후 담양의 고경명 등을 만나 호남의병연합군을 만들어 왜적에 대항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총의병장으로 추대된 고경명은 1592년 5월23일 유팽로, 양대박 등과 담양 추성관에 모여 ‘추성창의’를 합의, 5월29일에 의병을 일으켰다. 추성창의란 의로운 일을 위해 결기를 모은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옥체험관도 죽녹원은 물론 담양 일대에서 인기 있는 숙박 시설이다. 풍요로운 대나무숲 죽녹원을 배경으로 조성된 한옥체험관은 그 풍경이 주는 만족도가 높고, 시골 풍경과 고급스럽게 어우러지는 한옥에서의 하룻밤을 경험한다는 뿌듯함을 남길 수 있는 곳이다. 이용 요금(8만~22만 원)은 시기와 규모에 따라 다르다. 한옥은 화재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숙박 시 취사는 금지되고 예약은 오직 죽녹원 웹사이트에서만 가능하다.

▶다양한 수종의 관방제림

곡창지대 전라도는 예로부터 치수 사업이 잘 이뤄지곤 했다. 관방제림은 1648년에 조성된 수해 방지 시설이다. 담양 일대가 홍수 때마다 물바다를 이루자 담양을 관통하는 영산상을 정비하고 둑을 쌓았으며 방죽길 주변에 나무를 심어 제방의 근육을 단단히 만들었다. 관방제림이 처음 조성된 것은 조선 인조 때의 일이지만, 더욱 튼튼해진 것은 철종 때(1854년)였다. 그는 제방을 더욱 높였고 아예 주변에 숲을 조성해버렸다. 관방제림이 오늘날 담양 여행의 명물이 된 이유는 다양한 수종 덕분이다. 보통 방죽길 나무 하면 단일 수종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관방제림에는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음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들을 심었다. 나무들의 사이즈도 각각이라 어떤 나무는 둘레가 5m가 넘어가고, 일부 나무는 1m남짓하다. 이런 다양성 때문에 관방제림은 더없이 아름다운 산책로로 사랑받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 낙엽이 떨어져 푸른 길을 걸을 수는 없지만, 최고 300년에서 수백 년에 이르는 177주의 조선 시대 나목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계절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일이다.

관방제림 입구 주소 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98

▶면발민족을 위한 국수거리

관방제림 국수거리는 담양의 또 다른 명물이다. 죽녹원 앞에는 영산강이 흐르고 향교교를 건너면 관방제림과 담양의 중심가가 나온다. 전통 담양의 모습이 남아 있으며 현지인들의 일상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다. 구시가지인 만큼 오래된 집, 건물, 나무 등의 풍경이 깔려 있고, 나홀로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 작은 로컬 식당들, 커피숍 등도 쉽게 볼 수 있다. 관방제림 방죽길로 접어들면 국수거리가 등장한다. 국수집들이 거의 줄줄이 있지만 대표 메뉴는 역시 잔치국수. 그리고 식당에 따라 열무비빔국수, 죽순비빔국수, 파전, 멸치국물국수, 돼지고기육전, 닭발, 도토리묵, 1인분 떡갈비, 죽순우렁무침, 죽순회무침 등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밀을 사용하는 국수집도 있어서 반가웠다. 필자는 닭국수집을 찾았다. 이곳에선 멸치국수, 죽순 닭국수, 비빔닭국수, 초계국수, 해물파전 등을 우리밀을 반죽해 제공한다. 관방제림 국수거리는 이상하게도 배가 부르든 고프든 한 그릇 먹게 되는 거리인데, 아마도 영산강 풍경과 관방제림의 친근한 분위기, 그리고 워낙에 국수를 좋아하는 면발민족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국수거리 위치 담양군 담양읍 객사3길 일대

▶복합문화공간, 해동문화예술촌

담양문화재단에서 만든 문화 공간이다. 전국 어느 도시에 가든 구도심의 문화유산급 근대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해동문화예술촌 역시 담양 지역에서 오랜 세월 막걸리를 생산해 온 해동막걸리 주조장과 구읍교회, 구담양의원 건축물들을 리모델링, 문화 역사적 흔적은 살리고, 기능적 부분은 새롭게 설치해서 조성했다. 순전히 담양과 호남 문화 예술을 표현하고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담양 여행을 생각한다면 코스에 꼭 넣어볼 만한 곳이다. 전시장에서는 회화, 포스터 등이 전시되어 있고, 시민이 참여하는 기획전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여행자가 이곳에 가야 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담양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담양, 담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것도 지역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도시에서 찾아간 사람이라면 결코 쉽게 만나기 어려운 공장 형태의 건축물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해동막걸리라는 호남 막걸리의 역사와 흔적, 그리고 관련된 디테일 정보까지 볼 수 있다는 점도 즐거운 일이다. 해동문화예술촌을 구경하면서 특히 뿌듯했던 것은 이런 문화 예술 공간에서 쉴 새 없이 전시와 행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과 함께, 담양문화재단이라는, 결국 시민의 힘으로 설립된 공공 단체에서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작품들을 시민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수의 치적을 쌓기 위해, 생색용으로 만들기도 했던 과거의 행태와 완전히 다른, 담양 사람의 자부심을 높일 만큼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벽돌 건물과 양철 지붕, 방문객이 그려낸 즉석 작품들, 한 잔 생각나게 하는 막걸리 이야기 등 한 시간여를 돌고 나니 메타세쿼이아, 대나무, 고목이 있는 방죽길에서 잔뜩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말았다.

위치 담양군 담양읍 지침1길 6

운영시간 10:00~18:00 *월요일 휴무

▶촉으로 승리, 담양의 맛 떡갈비 ‘남도예담’

순창에서 담양으로 넘어가면서 식당 검색에 집중했다. 믿는 건 인터넷 밖에 없지만, 사실 백프로 믿을 수만도 없는 게 또한 인터넷 아니던가. 남도예담은 그렇게 고민 검색 끝에 순전히 촉 하나로 결정한 식당이었다. 담양에는 죽순정식과 대통밥, 그리고 떡갈비가 유명한데, 메뉴의 주제는 떡갈비로 했다. 압축 끝에 확정한 남도예담은 한옥 스타일의 외관에 대나무를 주제로 디자인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메뉴는 떡갈비와 대통밥이 나오는 한우떡갈비정식(3만2000원), 반반떡갈비정식(한우·한돈·대통밥·2만7000원), 한돈떡갈비정식(한돈떡갈비와 공기밥, 1만9000원)와 골뱅이죽순초무침(2만5000원)이 전부였다. 샐러드, 파래김밥, 간장게장, 죽순무침, 잡채, 김치 등 반찬들은 정갈했다. 떡갈비 맛은 부드럽고 신선했는데, 초벌조차 하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굽기 시작하기 때문에 가능한 맛이라고 했다. 대통밥은 짭쌀, 흑미, 대추, 밤 등을 대나무통에 넣어 40분 동안 압력솥에 쪄낸 밥이다. 물론 대나무통은 재활용되지 않는다. 손님이 가져가도 된다고 했는데, 집에 가져가 깨끗이 씻어서 책상 연필통으로 쓰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깜빡 잊고 나와 버렸다. 계산대 근처에서 전시 판매하는 토마토장아찌, 파래김, 함초소금, 죽공예 다기 등 담양 특산물을 구입할 수도 있다.

위치 전남 담양군 월산면 담장로 143

운영 시간 11:00~21:00, 라스트오더 20:00

[글 이영근 사진 안동수 참고자료 담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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