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몸속에 저장된 자연주의 출산의 기억

김현정 입력 2022. 1. 14. 11:00 수정 2022. 1. 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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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0)


명상을 할 때였다. 살아왔던 삶을 떠올려서 그 당시에 생각과 마음을 비워내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명상 방법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그 당시의 마음을 마주하고 비워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반 친구들의 번호와 이름이 생각이 나는 것이다. 친했던 친구들의 이름도 가물거리는데, 마음속 깊이 마주하고 있자니 반 친구 한 명, 한 명 이름과 번호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명상이 끝났을 때는 다시 친구의 이름과 번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면도 이와 비슷한 방식이겠구나 그랬다.
출산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서 출산과 육아 관련 책을 찾아보다가 자연주의 출산에 관심이 생겼다. 차가운 수술대에서 아이를 낳기 싫었던 나는 수중분만을 계획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강렬한 기억이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많이 묻어있는 기억들은 몸속 어딘가에 숨겨 놓기도 하고, 기억을 비틀어 저장하기도 했다.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기억들을 마주하면서 놀랐던 순간들이 많았다. 생존의 본능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없애거나 그 기억을 다르게 생각하고 조작한다. 그러나 몸속 어딘가에는 그 순간의 기억이 있는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기억을 마주하고 기억에 있는 묻은 생각과 감정, 느낌을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진짜 나’라고 믿고, 알고 있는 생각을 깨부순다. 그 순간에 자기 속에 갇힌 마음에서 벗어나 원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다. 출산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서 출산과 육아 관련 책을 찾아봤다. 그러다 『즐거운 출산 이야기』라는 자연주의 출산을 한 부부의 책을 발견하게 됐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아이 낳는 것이 싫었던 나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공부를 했다. 다큐멘터리도 찾아서 보고, 자연주의 병원도 알아봤다. 자연주의 병원 대다수가 강남에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포기하려는 찰나 은평구에 수중분만을 하는 병원이 있었다. 수중분만을 할 계획으로 그 병원에 다녔다. (물론, 동네에 산부인과가 없어서 어차피 다른 구에서 출산을 해야 했다.) 예정일 새벽, 몇 분 간격으로 가진통이 오기 시작하고 남편과 나는 입원을 준비했다. 어차피 무통주사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통 간격이 짧아지고, 강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후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진통이 강해질 때부터가 문제였다. 아이는 나올 준비를 하고 자궁 아래로 내려왔는데 자궁이 조금도 벌어지지 않아 시작된 진통의 강도가 강해도 너무 강해서 위험한 상태였던 것이다. 수중분만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도 아이도 위급한 상태였다. 간호사는 상태를 지속해서 살피면서도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그렇게 12시간을 진통하고 다음 날 새벽 수중분만으로 아이를 낳긴 낳았다. 낳는 순간에는 남편도 나도 감격을 해서 아이를 힘껏 안아줬다. 신기하게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쪽쪽 빨고 있었다. 그 장면까지 기억이 나고, 그 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이다. 하혈을 많이 해서 호흡기를 꽂고 수혈도 여러 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산부인과에서는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나 의논을 했다고 한다. 수술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모든 사람의 출산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출산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자연주의 출산도 좋지만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사진 pixabay]


제왕절개 한 산모들보다 더 오래 입원을 하고 조리원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는 소변 줄을 꽂고 누워 있어서 아이를 안지도 못했다. 그 후, 한 달 정도는 온몸이 부어서 제대로 걷지 못했던 것 같다. 담당 간호사도 의사도 “굉장히 위험했다”라고 여러 번 말을 했다. 조리원에서 이렇게 후유증이 오래 남은 산모는 처음 봤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몇 달은 출산의 강한 진통이 몸에 남아 잠에 들면 진통과 똑같은 통증으로 몸을 흔들었다. 잠을 자지 못했다. 몸이 진통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때때로 마음이 힘들 때면 출산의 고통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출산 통증의 고통까지는 아니지만, 강한 진통의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 그때의 마음이 떠오른다.

모든 사람의 출산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출산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 출산 자체가 어떻게 되는 일인지 모르는구나. 어르신들이 옛날에 아이를 낳으러 방에 들어갈 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자연주의 출산도 좋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무통주사를 맞고 진통의 강도를 적게 느꼈다며 출산 후 고생을 덜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나와 같은 기간에 임신한 동생이 몇 달 뒤 출산을 하게 됐다. 출산을 앞둔 동생에게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무통주사도 맞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되도록 덜 고통스럽게 출산하라”고 조언했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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