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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중대재해법 시행 '법률 재해' 부른다

기자 입력 2022. 01. 14. 11:40 수정 2022. 01. 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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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를 예방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 이은 경기 이천 물류센터 건설 현장 화재 참사와 택배기사 과로사 등의 산업재해가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자 국회는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입법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강도 높은 형사처벌과 민사상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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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중대재해를 예방해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 이은 경기 이천 물류센터 건설 현장 화재 참사와 택배기사 과로사 등의 산업재해가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자 국회는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입법했다. 하지만 오는 27일 발효를 앞둔 이 법의 모호성과 중복·과잉 처벌 등으로 인해 실효성 없이 혼란과 공포만 조성해 재계에는 이 법이 재해(災害)가 될 위기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강도 높은 형사처벌과 민사상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시킨다. 현장 사고는 관리·감독에 문제가 없어도 안전시설 등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 법은 강력한 처벌을 피하려는 원청의 사업주나 본사의 경영 책임자가 나서서 현장의 안전시설과 관리 체계를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징벌이라는 수단에 의존하다 보니 본사나 원청이 책임져야 할 안전 및 보건 확보의 범위와 정도는 불분명하다.

기업은 모호한 산재 예방 의무 이행보다 산재 발생 시 처벌을 피하는 묘수 찾기에 나설지 모른다. 본사에 안전 전담 고위직을 신설해 책임과 징벌을 떠맡기고, 근로자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촬영 장비를 늘리며, 안전 강화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면 법 자체가 재해다. 잠재적 질환자를 배척하고, 공정 자동화 속도가 빨라지면 고용 참사도 빚어진다. 상시 처벌 가능성이 두려운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사업 기회를 포착한 법무법인만 신나는 형국이다.

며칠 전 광주에서 일어난 신축 중인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로 시행을 목전에 둔 이 법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리라는 기대에서다. 반면, 이 법으로는 원청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의 범위와 인과관계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아 처벌할 수 없으리란 전망도 있다. 이재명 후보가 재계 간담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입증하기 어려워 실제 적용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가 나중에 수습한 것도 이 법의 실효성이 없음을 자인한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책무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어 분명 문제가 있다.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의 범위와 정도를 느슨하게 적용하면 법은 유명무실해지고, 엄격하게 적용하면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나올 수 있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본사 또는 원청이 모든 사업장을 관리·감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한 후 안전 관리·감독과 관련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산업재해 예방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재계의 두려움만 키우는 이 법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서라도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 면책될 수 있는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의 범위와 정도를 구체화하는 개정 작업도 즉각 착수해야 한다. 그보다는 이 법을 폐기하고, 관련 법률을 제·개정해 처벌보다 산업안전 역량 강화에 역점을 두는 게 더 바람직하다. 산업이나 기업 여건을 고려해 현장 관련 기관이나 업체 등 전반에 걸쳐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함으로써 사업장 내 실질적인 안전관리 장치가 완비되고 안전 불감 문화 등이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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