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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칼럼] 돈만 좇는 P2E에 게임의 미래는 없다

박진우 기자 입력 2022. 01. 14. 14:12 수정 2022. 01. 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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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미국 애리조나 투손 사막에 인공 생태계 ‘바이오스피어2′가 들어섰다. 바이오스피어2는 외부와 완벽히 단절됐으며 초원과 습지대, 작은 바다, 열대 우림 등 7개의 지구 환경을 재현했다. 순환 생태계를 위해 미생물과 식물, 동물 등 4000여종의 생물이 바이오스피어2로 옮겨졌고, 연구자 8명도 2년 동안 살게 됐다.

독자 생태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란 애초의 기대와 달리 바이오스피어2 생태계의 균형은 가동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흙 속에 포함돼 있던 호기성(好氣性)미생물이 내부의 산소를 대량으로 흡수해 공기 중 산소 농도가 부족해졌고, 반대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내뿜으면서 식물이 이를 감당해 내지 못했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자 식물 번식을 위해 투입된 곤충은 싹 사라졌고, 그 자리를 바퀴벌레가 채웠다. 식량 수급도 원활하지 않아 연구자들은 만성 영양부족과 정신병 등에 시달렸다.

최근 게임사가 P2E(Play to Earn·돈을 버는 게임)를 ‘게임의 미래’라며 추켜세우고 있는 것을 보고 투손 사막의 바이오스피어2를 떠올렸다. 게임사들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순환식 게임 경제 생태계를 표방하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이것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태계는 언젠가 무너지게 돼 있다.

P2E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게임 내 재화를 현금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다만 지금까지의 P2E는 블록체인 기술이 거래 수단인 가상화폐에만 적용돼 있을 뿐, 게임 시스템에 직접 작용하고 있지 않다. 게임과 블록체인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고, 블록체인 기술이 없어도 P2E 게임 시스템은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P2E 개념이 나오기 한참 이전부터 엔씨소프트 리니지와 같은 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 등에서 아이템 거래가 불법적으로 이뤄졌던 사례로 입증됐다.

오히려 게임 내의 재화를 가상화폐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용자가 게임을 하는 목적이 바뀐다는 점이 P2E의 한계로 꼽힌다. P2E에 참여하는 절대 다수의 이용자가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하면 경제 생태계는 흔들리게 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P2E 게임 안에 환전 수익을 목표로 한 이용자가 급증하면 게임 내 통화량이 증가하는 동시에 재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환전수익은 줄어든다. 환전수익이 줄면 이를 목적으로 게임에 들어온 이용자는 게임을 이탈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가상화폐로 바꿀 수 있는 게임 내 재화를 독점하기 위해 권력 구조가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들은 남들보다 큰 힘을 빨리 갖기 위해 돈을 쓰게 될 것이고, 이는 곧 P2E가 아닌 ‘돈을 쓸수록 돈을 버는 게임이라는 의미’의 ‘페이투언(Pay to Earn)’으로 변질될 우려를 낳는다. 이런 욕망은 게임 시스템으로는 절대 통제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다.

가상화폐의 시세 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P2E가 가진 맹점이다. 가상화폐의 가치가 높을 때는 갈등이 불거질 여지가 적으나, 급락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상화폐 가치의 인위적인 조작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보통 P2E는 게임 개발사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가상화폐의 발행도 맡고 있는데, 보유 중인 가상화폐를 대량으로 매도한 뒤, 가치가 떨어진 가상화폐를 또다시 매입해 가치를 조절할 수 있다. 탈중앙화가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지만, 오히려 게임회사가 가상화폐의 가치를 중앙 통제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 이용자나 가상화폐 투자자는 게임회사의 수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최근 많은 게임회사가 P2E에 뛰어들면서 ‘게임 내 재화의 현금화’를 막고 있는 국내 규제(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런 주장은 산업과 기술 발전을 위해 타당해 보여도 P2E 허용으로 인한 부작용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지금 시점에서는 공염불일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게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번다’는 행위가 아닌 결국 ‘재미’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밤을 새워가며 ‘슈퍼마리오’, ‘젤다의 전설’,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퀘스트’와 같은 게임을 했던 건 결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맹목적으로 돈을 좇는 P2E에 게임의 미래가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바이오스피어2의 실패는 생태계의 어느 한 축이 무너지면 모든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진우 전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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