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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핵연료 다시 쓰는 연금술..원전 폐기장 숨통 트이나 [Science]

이새봄 입력 2022. 01. 14. 17:03 수정 2022. 01. 1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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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구 재개한 '파이로 프로세싱'
우라늄 93%나 남아있는 폐연료봉
650도서 전기분해..잔여물질 회수
부피는 기존 5%, 독성은 0.1%로 감소
폐기물처리장 규모도 1%로 축소
플루토늄은 별도 회수 안해
핵무기 전용 우려도 없어
고리원전 저장시설 83.8% 포화
15년내 기술검증땐 돌파구 기대
한국은 수년간 탈(脫)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원자력은 '탄소중립'의 해결사로 불리는 대표 에너지원 중 하나다. 탄소를 활용하지 않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발전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은 현존하는 전력 생산 에너지원 중 효율성과 경제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늘 원전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흔히 핵폐기물로 불리는 '사용후 핵연료'다. 원자력발전을 하고 남은 사용후 핵연료는 고선량의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일반 폐기물처럼 간단히 처리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사용후 핵연료 대부분은 원전 밖으로 옮겨지지 않고 모두 원전 내 습식·건식 저장시설에 임시 보관한다. 저장공간이 다 차면 원전 가동도 멈추고 만다.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파이로)'은 사용후 핵연료, 즉 폐연료봉을 다시 원자력발전에 쓰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른 기존 원전들에 숨통이 트인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기후변화의 게임 체인저'로 꼽으며, 직접 투자에 뛰어든 4세대 원전, 소듐냉각고속로(SFR)를 통하면 파이로 기술로 회수된 핵물질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원자력계에서는 사실상 꿈의 기술인 셈이다.

1997년 첫발을 뗀 뒤 20여 년간 연구가 진행됐지만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일부 시민단체 반발 등으로 잇달아 연구가 중단될 위기를 겪었던 파이로 연구가 올해 다시 재개된다.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은 "약 15년 내에는 파이로 기술을 실증시설을 통해 검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처음 파이로 연구가 발목을 잡힌 것은 2017년 말이다. 당시 정부는 사업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연구 중단 여부를 논의했으나 3개월간 논의 끝에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론을 냈다.

하지만 지난해 한미 공동 연구진이 파이로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경제성이 있다는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 가운데에서도 정부는 적정성검토위원회를 구성해 또다시 연구 진행 여부를 논의했다. 적정성검토위는 지난해 12월 24일 "파이로 공정 연구개발사업을 지속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정부는 같은 달 27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어 '제6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확정하고 실증·상용화 전 단계까지 기초·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 지원 계획을 밝혔다.

'파이로(pyro)'는 '불'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기원된 용어다. 사용후 핵연료를 500~650도의 고온에서 전기분해해 이 안에 있는 다양한 핵물질을 특성별로 분리·회수한다. 파이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연료와 폐연료봉의 구성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전은 핵연료에 포함된 우라늄(U)의 원자핵이 중성자와 부딪히며 쪼개지는 반응인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 특히 우라늄 중에서도 우라늄235가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 반응을 일으킬 때 에너지가 나온다. 천연 우라늄은 불안정해 핵분열이 쉽게 일어나는 U235 0.7%와 핵분열을 하지 않는 안정적 원소인 U238 99.3%로 이뤄져 있어 핵분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안정상태를 유지한다. 원전에 사용하는 핵연료는 핵분열이 잘 일어나는 U235 비중을 약 2%에서 4.5%까지 높인 '농축 우라늄'을 쓴다.

이 농축 우라늄으로 만든 핵연료가 원자로에서 3년 정도 타고 나면 연료로서 기능을 잃은 폐연료봉, 즉 사용후 핵연료가 되는데 사용후 핵연료에는 여전히 우라늄(U235, U238)이 93%나 남아 있다. 사실상 핵연료 대부분이 타지 않고 남아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분열 과정에서 생긴 플루토늄(1.2%), 방사선을 많이 내면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반감기가 수만 년에 이르는 넵투늄, 아메리슘, 큐리움 등 핵물질도 0.2% 존재한다. 이들은 우라늄보다 무게가 무거워 '초우라늄(TRU)'이라고 부른다.

파이로는 먼저 사용후 핵연료를 둘러싸고 있는 집합체를 해체하고 연료봉을 인출·절단해 '원료물질'을 만드는 전처리 과정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얻게 된 원료물질은 마치 쇳덩어리를 제련하고 정련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먼저 원료물질을 고온의 용융염에 넣고 녹여 전기분해를 가해 우라늄(U235, U238)을 추출한다. 이를 '전해정련'이라고 한다. 이후 전압을 더 높여 용융염 안에 남아 있는 잔여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포함한 초우라늄을 동시에 회수한다. 순수한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재처리가 금지돼 있지만, 파이로에서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기타 초우라늄이 동시에 회수되기 때문에 핵무기 전용의 우려가 없다. 이렇게 회수한 물질로 다시 핵연료를 만들고, 이들을 원자로에서 태우면 사용후 핵연료 안에 존재하는, 독성이 오래가는 초우라늄 원소가 소각된다. 이 때문에 파이로를 거치면 폐연료봉 부피는 약 20분의 1, 방사성 독성은 1000분의 1로 줄어든다. 따라서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규모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판단한다.

현재 한국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용지를 확보조차 못하고 있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원전 운영을 가정할 때 전체 원전 설계수명 만료 시까지 사용후 핵연료 총 누적 발생량은 3만8400t으로 예상된다. 2020년 말 기준 누적량은 1만7800t이다. 고리원전은 이미 저장시설이 83.8%까지 찼고, 2031년이면 포화가 된다. 파이로 기술을 응용하면 500m 지하 심지층에 동굴을 굴착해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심부처분과 달리 석유 시추처럼 지하 5㎞에 시추공을 뚫어 폐기물을 처분하는 방식으로도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할 수 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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