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경향신문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랍니다[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입력 2022. 01. 14. 20:43 수정 2022. 03. 04. 18:11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5)앞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달려갑니다

[경향신문]

‘장애인도 우리의 친구이다, 우리의 이웃이다’라는 말만으로는 공허하다. 우리의 시각과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바라보고 정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타자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라는 주체의 관점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우선할 건 소통이고, 이에 기반한 이해라고 나는 믿는다(상담 과정에서 심리검사를 담당한 김지아 실장에게 감사드린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상담 신청

사람들은 제가 앞 못보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안쓰럽게 여겨요. 하지만 안보이는 것으로 인해 힘든 건 5% 정도 밖에 안돼요. 제가 후천적인 시각장애가 아니라 선천적인 장애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사람들과의 관계예요. 사람들은 우리 시각장애인 공동체가 서로 아픔을 이해하니까 더불어 격려하고 지지하는 따듯한 공동체일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끼리 철저히 경쟁하는 구조예요. 제공되는 것들은 한정돼 있으니 결국 서로 경쟁하고 싸우게 되는 거죠. 안타까운 건 우리가 이 공동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에요. 다른 대안이 없으니 여기서 어떻게든지 버텨야 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제겐 힘든 존재예요. 두 분은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했어요. 동료들과의 관계도 힘들지만 제 슬픔의 근원은 가족이에요. 가난해도 좋고, 앞이 보이지 않아도 좋아요.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결국 자존감이 낮은 게 가장 힘든 문제 아닐까 싶어요. 인간관계가 힘든 것도 이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제가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은 성격이에요.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거나 오해가 생기면 잠도 잘 오지 않고 종일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워져요.

코로나라서 일이 적어져 제 방에 혼자 있을 때가 많은데, 그러다보니 더 부정적인 생각 속에 빠져들어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 대상이 없더라고요. 어렵사리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면 어느새 많은 이들에게 퍼져있어요. 이상한 오해가 더해져 결국 더 큰 상처로 돌아오니 이젠 말하기가 겁나요.

오히려 비장애인들을 만날 때 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그동안 교회분들, 안마원 고객들, 봉사자들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앞을 못보니까 사람들에게 주로 도움을 받게 되는 입장이지만 저도 봉사를 자주 해요. 교회나 동네 어르신들께 안마 봉사를 하기도 하고, 시각장애인 동료들에게 컴퓨터도 가르쳐주고요. 기쁘더라고요. 도움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모두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제게 가장 큰 기쁨은 노래하는 것이에요. 가끔 교회에서 찬양 봉사를 하면 다들 칭찬해 주고 좋아해 주더라고요. 기회가 있다면 자주 노래하고 싶어요. 선생님 유튜브 채널에서도 한 번 시켜주면 즐거운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박상희 소장과 희구씨가 상담 도중 마스크 너머로 환하게 웃고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상담 내용

희구씨. 먼저 사과하고 싶어요. 상담을 처음 의뢰받았을 때 제게 떠오른 선입견이 있었어요. 시각장애를 지닌 내담자의 심적 고통은 당연히 안보이는 것에서 오는 고난과 절망일 거라는 생각 말이에요. 그렇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희구씨는 앞이 보이지 않은 것이나 그것으로 인한 불편에 대해선 거의 얘기하지 않았어요.

희구씨의 고민은 제가 만난 많은 내담자들의 그것과 비슷했어요. 인간관계의 어려움, 가족으로부터의 상처, 그리고 자존감의 상실 문제였어요. 희구씨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내의 경쟁에 지쳤고, 상처만 주는 가족에 절망했어요. 또 여느 30대 청년과 마찬가지로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으로 잠못 이뤘고요.

희구씨와의 상담에서 제가 자주 떠올린 생각은 “아, 같구나”하는 것이었어요. 희구씨는 그냥 제 주변의 내담자, 동생, 이웃과 같았어요. 하지만 희구씨가 마주한 현실이 일반 사람들보다 힘든 것도 사실이었어요. 희구씨는 아무리 괴로워도 시각장애인 공동체에서 나올 수도 없었고, 안마 외에 다른 직업을 찾아볼 수도 없었고, 화가 나더라도 누군가와 치열하게 싸울 수도 없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러 다닐 수도 없었어요.

힘든 마음, 간절한 소망은 비장애인들과 같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합한 방법을 찾거나 실현하기 어려우니, 결국 희구씨 마음 속으로만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어요. 하지만 희구씨는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한 내담자예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희구씨는 삶에 대한 노력을 포기하거나 쉬지 않았어요. 그 누구보다 자기 인생을 힘차게 만들어온 삶의 개척자예요.

우선 희구씨의 진취성과 추진력은 대단한 것이었어요. TV에서 제 토론을 듣고 상담을 신청하신 것도 남다른데, 제가 어려우니까 다른 상담 선생님을 연결해 드리면 어떻냐는 간사에게 희구씨는 “안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죠. 그렇게 시작된 상담에서 우리는 다채롭고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희구씨가 선택했던 심리검사도 비장애인들도 힘들어하는, 567문항으로 이뤄진 MMPI-2(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였어요. 어려운 MMPI-2 검사를 그렇게 잘해 왔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 외에 또 어땠나요? 희구씨는 제가 출연하는 방송에 사연을 보내 채택됐고, 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노래까지 했어요. 요즘 희구씨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비장애인 친구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희구씨의 적극성이 만들어낸 열매라고 저는 생각해요.

희구씨는 컴퓨터에도 능하고 아는 것도 많아요. 처음에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게 머쓱해질 정도로 우리는 온라인, 문자, 카톡으로 전혀 어려움 없이 소통했고 다양한 주제들을 얘기했어요. 힘든 상황이지만 희구씨는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희구씨와 상담할 때 더러 저는 눈을 감고 한 적이 있었어요. 희구씨 마음에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을까 해서 그런 것이었는데, 정말 그 마음이 느껴져서 이후에도 종종 그렇게 했어요. 상담 중 희구씨가 이런 말을 한 것 기억하나요? “시각장애가 있어도 박사도 될 수 있다!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은 저를 위로한답시고 이런 응원을 하는데 저는 싫어요.”

눈을 감고 경청하던 저는 희구씨가 듣고 싶던 말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가족과 친구를 대신해서 오늘은 제가 희구씨에게 답할 게요. “그동안 정말 잘해 왔어요. 수고했어요. 훌륭해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하리라 믿어요. 무엇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희구씨 생각이 좋았어요.”

희구씨에게 상담사로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희구씨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 생각을 줄일 필요가 있어요. 생각이 많으면 걱정이 많아지고 걱정이 지나치게 커지면 결국 자존감이 더욱 낮아지게 돼요. 감히 드리는 말이지만, 자기를 존중해 주세요. 이제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 잘 살아갈 거라고 저는 믿어요.

희구씨를 만나고 저는 많은 것을 배웠어요. 상담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내담자의 세계를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능력이에요. 그런데 이 공감과 이해의 능력도 상담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에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경험이 필요해요.

희구씨는 제게 시각장애인의 삶과 마음을 이해할 기회를 줬어요. 저는 이제 장애인들을 한결 잘 상담할 것 같아요. 맞아요. 희구씨가 말한대로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에요. 우리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랍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제 유튜브 채널을 방문해 들려준 노래는 제게는 정말 큰 힐링이 됐어요. 마음도 치유해 주고, 생각도 넓혀 준 희구씨, 이쯤되면 당신이 제게 상담사였습니다.

■후기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소통과 이해이지 않을까. 장애인들의 삶을 개선시킨다는 명목으로 소통과 이해 없이 만들어진 제도가 물질적 여유를 제공했더라도 그들의 공동체를 경쟁의 장으로 만들고, 그들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키는 것을 지켜봐 왔다. ‘장애인도 우리의 친구이다, 우리의 이웃이다’ 라는 말만으로는 공허하다. 우리의 시각과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바라보고 정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타자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라는 주체의 관점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우선할 건 소통이고, 이에 기반한 이해라고 나는 믿는다(상담 과정에서 심리검사를 담당한 김지아실장에게 감사한다).

박상희 소장은

분노·죄책감에 연민까지 감내하느라 고생했어요, 이젠 자기 자신도 용서해주세요
이화여대에서 목회상담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 위의 사례는 유튜브채널(박상희의 심리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무료심리상담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에서 3월7일부터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무료심리상담 신청 sharonewha@hanmail.net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