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세계일보

[삶과문화] 범죄시계가 느리게 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입력 2022. 01. 1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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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마다 살인·2분마다 폭력
아동·동물학대 사건도 다반사
돈이 행복 척도.. 안전사고 낳아
베풀고 나누는 평화사회 염원

제자와 함께 짧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연천에 있는 종자와시인박물관에서 행사가 있어 같이 가는 도중에 시간이 좀 남아서 더 북으로 가 신탄리역과 대광리역 일대를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휴가병들이 주로 이용하던 이 두 역이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제자는 이곳이 자신이 군생활을 했던 곳이라고 했다. 포병이었지만 운전병이어서 이른바 ‘짬밥’이 아닌 ‘사제 밥’을 간혹 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말로 그때도 구타가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맞아보았지만 때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평화론자가 아니라 입대할 때 그렇게 마음을 먹었고, 실천했을 따름이라고 했다. 왕고참이 되었을 때 바로 밑의 후임이 내무반 군기가 빠졌다고 집합을 시키겠으니 허락해달라고 청을 하더란다. 안 된다고 했더니 계속 고집을 피워 뺨을 한 대 때렸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이 군복을 입고 휘두른 최초이자 마지막 폭력이었다고 말했다.

훈련소에서였다. 영하 10도 밑인데 한밤중에 팬티 바람에 집합하라는 명을 받고 막 잠들었다가 놀라 깨어나 연병장에 도열해 섰던 적이 있었다. 교관은 훈련병들의 가슴에 주전자 속의 찬물을 손에 부어 장난스럽게 뿌렸지만 그건 그래도 애교 있는 체벌이었다. 지금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따름, 분노의 감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였고, 그런 체벌을 다시 받지는 않았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그런데 아동학대에 대한 보도를 언론을 통해 접할 때면 분노가 치밀어올라 이를 깨문다. 입양한 아이를 학대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의붓어머니에 의한 학대 건도 꽤 많다. 친아버지가 자식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학교폭력은 코로나 사태 이후로는 좀 줄어든 것일까? 부부간 폭력사건도 꽤 있다고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한 몹쓸 학대가 언론에 보도될 때도 화가 나서 밥맛을 잃는다.

‘범죄시계’라는 것이 있다. 범죄의 종류별 발생 빈도를 시간 단위로 분석한 것으로, 그 범죄가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종류별 사건의 수를 시간으로 나눈 수치이다. 어느 해인가 우리나라 경찰청에서 통계를 내보았더니 9시간 4분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2분마다 폭력사건이 일어났다고 신문에 기사가 났다. 두 가지 다 일본보다는 높고 미국보다는 낮다고 한다. 미국은 총기 소유가 대다수 주에서 허용되기 때문에 폭력과 살인이 더욱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 폭력의 대상에 동물이 포함된다면 범죄시계는 2분이 아니라 몇 초마다 한 건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 가치의 척도가 행복, 사랑, 평화, 복지 같은 보편타당한 것이면 좋겠다. 돈이 있어야만 행복하다는 생각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후보들도 돈 돈 돈을 많이 얘기한다. 불교가 자비심과 보시를 주창하고 기독교가 연민의 정과 사랑을 설파한다고 해서 정부는 종교에 그런 덕목을 일임하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일어나는 안전사고도 돈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공사 입찰, 공기 단축, 원가 절감이 결국은 안전사고로 이어진다. 삶의 척도가 돈이 아니라 평화, 평등, 안전한 삶 같은 것이라면 사고는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예전 서당에서 공부한 ‘소학’ ‘동몽선습’ ‘명심보감’ 같은 책자에는 사람됨의 뜻이 담겨 있었다. 성경과 불경, 탈무드도 마찬가지다. 베풀고 나누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행복의 첩경이라고 적혀 있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구절은 없다.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즐겨 하는 컴퓨터게임에 남을 도와주면 내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다수 게임이 살인하고 파괴한다. 총을 쏘고 땅을 빼앗고 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레벨을 높이려면 더욱 더 폭력적이어야 한다. 폭력이 일상다반사가 된 사회, 행복의 척도가 오직 돈만이 된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된다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붓다와 예수가 한 종교의 창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폭력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범죄시계가 느리게 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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