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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는 중년 남자] 살림은 아주 잘해야 80점 삼식이는 그걸 모른다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2. 01.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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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친구 중에 깔끔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감인 사람이 있다. 그 집에 놀러가서 밥을 먹는데, 빈 그릇이 나올 때마다 설거지를 해서 마른 행주로 닦아 찬장에 넣었다. 그러니까 그 집 그릇은 찬장에 있거나 밥상에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개수대 안에 두는 적이 없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하시라고 했더니 그냥 놔두란다. 식탁과 싱크대 왔다 갔다 하면서도 할 얘기 다 한다며. 빈 그릇 쌓인 꼴을 못 견디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병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살림은 잘하려고 노력해 봐야 80점이다. 100점 맞는 사람은 대개 강박증 환자다. 살림의 달인들 블로그를 보면 집 안에 나와있는 물건이라곤 거의 없다. 다 어디 선반이나 서랍에 들어가 있는데 그 안에서도 크기별로, 모양별로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이런 사람은 수박도 사오자마자 정육면체로 잘라 네모 통 안에 보도블록 깔듯 넣어두고 시장에서 받아 온 비닐봉지도 호텔 가운 개듯 개 놓는다. 다릴 수 있다면 다려서 갤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하려면 일단 회사부터 그만둬야 한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오로지 집 안 정리만 해야 한다. 현관에는 단 한순간도 한 켤레의 신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욕실 거울은 물론 세면대에도 물방울 하나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지갑 속 지폐들도 다 한쪽 면 방향으로 정렬돼 있다.

사실 살림 점수 80점도 매우 어려운 경지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한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퇴근 후 저녁 7시에 귀가한다고 치자. 된장찌개만 끓여도 아무리 빨라야 한 시간이다. 된장 풀어 감자·양파 넣고 끓이면 되는 것 아냐? 하겠지만 감자·양파는 껍질 벗고 썰어져서 기다리고 있다더냐. 게다가 고기도 넣고 버섯도 넣고 두부도 넣어야 한다. 간신히 식탁에 올리는 시각이 8시다. TV 보다가 와서 한술 뜨면서 한다는 말, 우리도 된장찌개에 건새우 좀 넣지? 확 저 조동이를 그냥. 레드페퍼 페이스트를 곁들인 스팀드 포테이토(찐 감자와 고추장)를 해줄 걸 그랬나.

남자가 살림을 함께 하면 속도와 효율만 좋아지는 게 아니다. 살림을 알게 되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살림을 모르니 냉장고와 빨래통과 다용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살림이란 된장국 하나 끓였을 뿐인데 왜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이는지, 밥상 물리면 드러누울 사람이 밥 먹은 사람인지 밥 차린 사람인지 깨닫는 일이다. 그걸 전혀 모르고 아침부터 찌개 찾으니 삼식이 소리를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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