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만물상] 여론조사

배성규 논설위원 입력 2022. 01. 15. 03:18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기원전 472년 그리스 아고라에서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해전 승리의 주역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도편(도자기 조각)추방 투표가 시작됐다. 그가 추방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정적과 선동가들은 그가 독재자처럼 군다고 일제히 비방했다. 실제로 6000표 이상이 나와 ‘10년 추방형’이 내려졌다. 그런데 도편에 쓰인 글씨체가 상당수 비슷했다. 여론 조작에 투표 조작까지 이뤄진 것이다.

▶KBS는 2007년 자체 여론조사에서 디지털 전환과 공익성 강화를 위해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면서 적정 액수부터 물었다. 그러곤 57%가 인상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 전교조는 신뢰도 조사에서 ‘참교육을 목표로 촌지 근절, 체벌 금지 활동을 해온 전교조를 신뢰하느냐’고 물었다. 2020년 한 방송사는 정부·야당 심판론을 물으며 ‘자기 반성 없이 정부의 발목만 잡는 야당’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답정너’ 여론조사였다.

▶여권 입맛에 맞춘 듯한 여론조사도 많다. 2019년 여당 대표는 한 업체를 겨냥해 “여 지지율이 야당보다 10~15%는 높아야 정상”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업체는 곧바로 여당이 13%포인트 높은 결과를 내놓았다. 친여 성향의 한 업체는 조국 장관 임명 반대 여론이 월등히 높다고 했다가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려 하자 바로 찬반이 비슷해졌다고 발표했다.

▶2012년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 후보 여론조사를 조작했다. 수백 대 임시 전화를 개설하고 착신 연결을 한 뒤 당원들에게 연령을 속여 답하게 했다. 2016년 한 여론조사 업체는 특정 후보에게 돈을 받고 원하는 수치의 여론조사를 냈다가 적발됐다. 의뢰인에게 “원하는 결과를 내줄 테니 맡겨 달라”고 제의하는 경우가 지금도 적지 않다. 작년 한 업체는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하고 응답 결과까지 조작했다. 덤핑을 하거나 공짜 조사를 해주는 업체들도 많다. 그래서 일부 대선 캠프에선 “차라리 수억원 들여 여론조사 회사를 하나 차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13일 코리아리서치는 3개 회사와의 공동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9%포인트 우세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같은 날 다른 조사에선 윤 후보가 6%포인트 앞섰다고 발표했다. 한 회사가 한날 발표한 조사 결과가 딴판이었다. 여론조사는 당내 후보 공천의 수단으로 정착돼 있다. 실제 표심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여론 조작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