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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토번·티베트.. 볼수록 감동, 고원 왕국의 포탈라궁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기행]

입력 2022. 01.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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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티베트 ① 라싸 포탈라궁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세계문화유산 포탈라궁(2007년 7월). Ⓒ최종명

티베트는 시짱짱족자치구(西藏藏族自治區)이며 민족은 짱족이라 한다. 티베트 문화권은 자치구 바깥인 중국의 윈난·간쑤·쓰촨·칭하이는 물론이고 네팔과 부탄, 인도의 시킴 및 라다크 등 광범위한 지역을 포괄한다. 자치구 수도 라싸의 포탈라궁과 조캉, 자낭의 사원과 궁전, 시까쩨의 따시휜뽀, 해발 4,000m가 넘는 얌드록초와 남초까지 모두 4편에 걸쳐 발품 기행을 떠난다. 인명과 지명은 동국대 ‘티벳장경연구소’의 한글 표기를 따랐으나 굳어진 말은 그대로 썼다. 현지 발음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와일리(Wylie) 방식의 문자 표기를 병기했다.

티베트 라싸 일대 발품 기행 동선. Ⓒ최종명

해발 3,650m 고원에 위치한 궁가(貢嘎) 공항에 착륙했다. 구름을 뚫고 미끄럼틀 타듯 활주로에 내렸다. 구름이 눈높이에 있다. 날씨는 쾌청하고 공기는 하늘이 하사한 선물 같다. 2007년 7월, 티베트에 처음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1시간이 걸려 라싸(拉薩·Lhasa)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모두 네 번 갔는데 늘 짜릿한 걱정이 앞선다. 코앞이 바다인 곳에서 살았으니 당연하다.


라싸에 도착했다, 흥분 뒤에 두통이 몰려왔다

라싸 포탈라궁 광장의 베이징중로. 2007년 7월 풍경이다. Ⓒ최종명
라싸 시내 게스트하우스인 둥춰 마당. Ⓒ최종명

흥분을 멈출 수 없었다. 23㎏ 배낭을 메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었다. 포탈라궁(布達拉宮·Potala) 광장을 무작정 걸었다. 왕복으로 1km가 넘었다. 길 이름이 왜 베이징중로(北京中路)다. 전국의 유명 도시를 도로 이름으로 짓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여러 도시가 그렇게 한다. ‘아! 여기도 중국 땅이었구나’ 생각하며 하늘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

금방 1시간이 지났다. 곧바로 탈이 났다. 숨이 차오르더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박동이 빨라졌다. 배낭여행가의 쉼터인 둥춰(東措)에 독방을 잡았다. 두통이 시작됐다. 수저 들 기운조차 사라지고 온몸은 무기력했다. 심한 몸살과 비슷했다. 밤새 뜬눈으로 침대에 누워 물만 마셨다. 고산에 대한 응분의 반응이었다. 비몽사몽에도 꼬리를 무는 의문 하나. ‘왜 티베트(Tibet)라 부르지?’

멀리 광장에서 바라본 라싸의 포탈라궁. Ⓒ최종명

포탈라궁은 정말 웅장하다. 라싸를 네 번이나 갔지만 감동 불변이다. 산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꼭대기까지 뒤덮고 허리를 감싸고 있다. 하늘과 잇닿은 듯 솟구쳐 있다. 역대 왕조가 중건했으며 1990년에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처음 건축한 시기는 7세기 중엽이다. 최초로 통일 왕조를 이룩한 쏭짼감뽀(松贊干布·Srong Tsan sGam Po)의 궁전이었다.

포탈라는 ‘보타(普陀)’의 음역으로 관음보살의 성지라는 뜻이다. 당시는 토번(吐蕃)이었다. ‘신당서’ 등에 등장하는데 ‘투보(tubo)’라 읽는다. '자칭 봇(bod)이라 불렀다’는 사료가 많다. 평지이며 농토를 뜻한다. 높다는 말인 ‘투(tu)’가 말머리에 붙었다. 당나라를 '대당(大唐)’이라 했듯 ‘고원’이 나라와 민족 이름이었다는 이야기다. ‘티베트’의 기원과 관련이 있을까?

라싸에서 동쪽 자마향의 쏭짼감뽀 출생지.Ⓒ최종명

라싸에서 동쪽으로 80㎞ 떨어진 곳에 자마향(甲瑪鄉)이 있다. 쏭짼감뽀의 출생지로 알려졌다. 자그마한 마을인데 대문이 아주 크다. 쏭짼감뽀는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 시대인 617년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부족의 짼뽀(贊普·BtsanPo)였다. ‘영특하고 용감하다’는 뜻이다. 중원의 ‘왕’이고 고조선의 ‘단군’이며 몽골의 ‘칸’이자 흉노의 ‘선우’였다. 고대의 최고 지도자다.

주변 부족과의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아버지가 암살당했다. 13살의 쏭짼감뽀가 승계해 33대(32대라는 기록도 있음) 짼뽀가 됐다. 지도자는 타고나야 한다. 재빨리 복수하고 탁월한 정복 능력을 발휘해 힘을 키웠다. 물산이 풍부한 농토 지대인 라싸로 옮겼다. 경쟁하던 부족을 복속시키고 북방 유목민족의 남하를 저지했다. 통일 왕조를 이룩했다. 자칭 ‘봇’이라 불리던 고원의 왕국이 역사에 등장했다. 라싸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이 됐다.

라싸 동쪽 보미의 토번 1대 짼뽀인 냐티 출생지 비석. Ⓒ최종명

쏭짼감뽀의 부족은 어디서 왔을까? 라싸 동쪽 린즈(林芝)에 보미(波密) 현이 있다. 자마향에서 500㎞ 거리다. 318번 국도 옆 치안 대대에 '고향(古鄉)' 비석이 있다. 고향(故鄉)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1대 짼뽀인 냐티(聶赤)가 출생했다는 기념이며 지명이다. 20세기에 출토된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린즈 일대에 인류가 거주한 흔적과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됐다. 원주민이 있었다는 말이다. 중국이나 유럽에서 강족(羌族)의 조상이 남하했거나 인도에서 샤카족(Śākya)이 북상했다는 민족 기원은 거짓에 가깝다. 꼬리 잡고 몸통이라 우기는 일이다.

라싸에서 동쪽 보미의 장왕고리. Ⓒ최종명
318번 국도 고향 구간의 고산과 하늘. Ⓒ최종명

냐티짼뽀는 건국 신화다. 곰 토템의 단군신화처럼 원숭이의 후예다. 박물관이나 사원 벽화에 자주 등장한다. 근처에 장왕고리(藏王故里)가 있다. 신화는 드러나지 않고 그저 고원의 기운이 펄럭인다. 씨족이 부족으로, 연맹이 왕국으로 발전했다. 그러면서 점차 서쪽으로 진출했다.

고향 구간을 지나는 길에 찬사가 많다. ‘티베트의 스위스’라 한다. 마음만큼은 확실히 그렇다. 도로는 양호하지 않으나 산 능선과 하늘로 보내는 시선은 신선놀음이다. ‘빙하의 고향’이자 ‘설역(雪域)의 강남’이라 한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대도(大道)’라 한다. 그럴 만하다.

칭하이성 시닝 일월산에 있는 문성공주 기념관. Ⓒ최종명

토번은 통일을 이루자 강력해졌다. 칭하이 시닝(西寧) 일월산 근처에 당번고도(唐蕃古道) 표지판이 있다. 토번과 당나라의 경계를 상징한다. 당나라 태종 시기다. 토번이 군대를 이끌고 중원 가까이 진군했다. 당나라는 변방에 대해 강경과 온건, 양면전술을 취했다. 토번과 화친을 추진했다.

당 태종은 사촌 이도종의 딸을 불렀다. 문성공주(文成公主)로 봉하고 8,000리 멀리 시집을 보냈다. 공주는 국경 부근에 한동안 머물렀다.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신이 됐다. 사당은 기념관이 됐다. 신랑이 마중을 나왔다. 신부와 혼례를 올리고 귀환했다. 당나라 부마의 위상을 세우고 싶었을까. 산 위에 왕궁을 건축했다. 이미 네팔의 브리쿠니공주(尺尊公主)를 부인으로 맞은 터였다. 토번 출신 부인도 꽤 많았다.


글자 없는 비석은 티베트의 침묵인가

라싸 포탈라궁 티켓 예매처(2007년). Ⓒ최종명
라싸 포탈라궁 단체 티켓 (2017년). Ⓒ최종명

고산 반응으로 고생한 후 정신을 차리고 포탈라궁으로 들어가려 했다. 예매처가 따로 있다. 외국인이 꽤 많았다. 티베트 민족 문제로 민감한 시기였다. 은근슬쩍 두 명의 티베트 청년이 접근하더니 영어로 ‘티베트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서 순간 혼돈이었던 기억이 난다.

당일 티켓 구입이 불가능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인은 별도의 입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렵게 왔는데 난처했다. 하루 입장객도 제한한다. 다른 일정이 생겨 들어가지 못했다. 꼭 다시 오리라 다짐했고, 이후 세 번이나 관람했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 단체 티켓을 준비하니 편하다. 티켓에 쓰인 시간보다 미리 가서 줄을 선다.

라싸 포탈라궁 뒤로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최종명

가까이 다가가면 수직으로 올려다보게 된다. 고원이라 아주 덥지 않아서 다소 위안이다. 광장에서 정면의 창문을 헤아리면 13층인데 실제는 9층 건물이다. 거의 200m가 넘는다. 가운데 홍궁(紅宮)에는 달라이라마의 영탑(靈塔)이 보존돼 있다. 백궁(白宮)은 달라이라마의 주거 및 업무 공간이다. 눈치 빠르면 알 수 있다. 달라이라마는 16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생긴 칭호다. 7세기의 왕궁은 9세기에 토번이 해체된 후 쇠락했다.

라싸 포탈라궁 입구 무자비. 아무런 글자가 없는 비석이다. Ⓒ최종명

참관 시간 30분 전에 무자비(無字碑)를 통과하라고 안내한다. 돌계단을 오르기 전에 비석이 있으니 누구든 한 번은 힐끗 쳐다본다. 아무런 글자가 없어서 그냥 지나칠 뿐이다. 몽골 칸의 군사 지원으로 달라이라마 5세가 정권을 잡고 1648년에 왕궁을 중건했다. 달라이라마 6세 시절인 1693년에는 홍궁을 낙성했다. 건물 구분을 색깔로 한 셈이다. 이때 세운 비석이다.

비석에 글자 하나 없다니 이상하다. 별다른 자료가 없으나 사정이 있어 보인다. 해석이 분분하다. 궁전 짓는데 사람들 고생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거나, 공덕이 무량(無量)하다는 뜻이라 했다고 덧붙인다. 아전인수이자 자화자찬이다. 갈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도 쓰고 싶었다. 달라이라마 6세의 슬픈 운명과 어떤 인연일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라싸 포탈라궁 광장의 기념탑. Ⓒ최종명

아래를 내려다본다. 광장에 우뚝 솟은 기념탑이 있다. 2016년에 갔을 때는 비가 내렸다. 비가 드문 땅이라 그런지 좀 우울했다. 멀리 보이는 탑은 허핑제팡(和平解放) 기념비다. ‘평화로운 해방’을 위한 선언이다. 2001년 당시 후진타오 부주석이 제막식에 참여했다. 친필로 글자도 썼다. 1988년부터 4년간 시짱자치구의 당 서기를 역임했다. 티베트 독립을 주장하는 시위가 열리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발포했다. 글자 없는 비석의 묵언에 역사를 반추해본다. 청나라 식민지 시대였다. 달라이라마 6세는 베이징으로 오라는 소환을 받고 칭하이를 지나던 중 행방이 사라졌다.

라싸 포탈라궁 입구로 가는 계단. Ⓒ최종명
라싸 포탈라궁 외벽 담장. Ⓒ최종명

외벽 담장이 하얗고 붉다. 이 세상의 색깔은 두 가지만 있는 듯하다. 말린 풀을 석회와 섞어 지었다. 홍장(紅牆)이나 백장 모두 깔끔하고 고르다. 1년에 한 번 11월 초에 주민이 참여해 도색 작업을 한다.

달콤한 사실이 있다. 붉은 빛깔을 내려고 ‘향신료의 여왕’이라 불리는 샤프란을 사용한다. 티베트는 장홍화(藏紅花)라 하는데 어마어마하게 비싼 편이다. 저렴한 것도 있다. 우유 설탕 벌꿀도 첨가한다. 점성이 높아 부착이 쉽다. 부식 방지와 벌레 예방에 효과가 탁월하다. 계단을 오르며 혹시라도 달달하다고 입을 날름거리지는 마시라. 내용물을 모르면 냄새조차 맡기 힘들다.

포탈라궁 백궁 동쪽의 더양사. Ⓒ최종명

동쪽 끝에 더양사(德央廈)가 있다. ‘동쪽에 위치한 유쾌한 광장’이란 뜻의 건물이다. 승려를 육성하는 학교다. 양쪽으로는 승방이 있다. 달라이라마가 집정할 때 가무공연이나 종교행사가 펼쳐졌다. 귀족이나 승려가 참가해 구경하느라 인산인해였다. 달라이라마는 백궁의 7층 창문을 통해 공연을 관람했다고 한다. 포탈라궁에서 유일하게 활기 넘치던 장소였고 주민과 호흡하는 공간이었다. 여기를 통해 관람을 시작한다.

포탈라궁 입구로 들어가는 곳. Ⓒ최종명

내부는 완벽하게 촬영 금지다. 핸드폰으로 보살의 손톱이라도 찍으면 10초 만에 승려가 나타나 지우라 한다. 모든 동선을 실시간 감시한다. 궁전에 머무는 시간도 1시간으로 제한한다. 세심하게 보기가 좀 어렵다. 질문과 설명을 주고받으려 해도 좁은 동선에 인원도 많아 힘들다. 묵묵히 수행하듯 그저 따라다닐 뿐이다.

쏭짼감뽀의 궁전은 훨씬 작은 규모였다. 법치를 세우고 문자를 창제했다. 샤머니즘이 강한 전통 신앙인 뵌교(苯教)가 뿌리박고 있는 상태에서 인도와 중국에서 전래한 불교가 공존했다. 인도로부터 밀교가 유입되자 티베트만의 불교가 생겨났다. 종교 분쟁도 발발했다. 정파보다 무서운 종파 경쟁은 곧 부패였다. 14세기에 이르러 겔룩빠가 개혁을 실현하고 점차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겔룩빠(Dgelugspa)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포탈라궁의 주인이 됐다. 거주 공간인 백궁을 지나 홍궁으로 이동한다.

라싸 포탈라궁 홍궁. Ⓒ최종명

현재 인도로 도피한 달라이라마는 14세다. 영탑은 8개뿐이다. 전각 안에 세운 사리탑이다. 달라이라마 5세 영탑이 가장 화려하고 장중하다. 14.85m로 가장 높고 5층 규모다. 양쪽 벽에 작은 규모로 10세와 12세 영탑이 동거 중이다. 약 1.2m의 나무 칸막이로 막았고 전체는 유리를 세웠다. 금 3,721㎏을 사용해 찬란한 자태를 드러낸다. 꼭대기까지 보기 힘들어도 전체 윤곽이 그려진다. 위세가 등등하다. 홍궁이 생기기 전의 1세부터 4세까지의 영탑은 없다. 6세는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14세는 현존한다.

라싸 포탈라궁 출구. Ⓒ최종명

입궁을 세 번이나 했으나 지금도 내부는 어렴풋하게 겨우 이해한다. 동선이 까다롭고 폭도 좁다. 위로 오르기도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니 분간이 매우 어렵다. 다소 어둡기도 하다.

자료에 따르면 신화나 전설을 그린 탕카(唐卡)도 많다. 부처를 비롯해 수많은 보살상과 불경도 건성으로 살펴보는 정도다.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보물 궁전이란 말이 무색하게 나올 때마다 아쉬운 한숨이다. 그래도 비싼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은 없다. 처음 가면 그냥 꼬부랑길을 헤맬 뿐이니 각오가 좀 필요하다. 티베트 역사와 불교 정보를 공부하고 가길 추천한다.

포탈라공 서쪽 백궁 뒤편 풍경. Ⓒ최종명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티베트, 부활할 수 있을까

후문으로 나와 절벽처럼 가파른 백궁을 바라다본다. 산을 내려가며 티베트를 다시 생각한다. 통일 왕조 토번은 200년 조금 넘기고 842년 해체된다. 종교 문제로 내분이 발생했다. 마지막 짼뽀 랑다르마(朗達瑪)는 피살당했다. 계파에 따라 영토가 뿔뿔이 쪼개졌다. 민족이 분열하자 외세 침입으로 속박의 세월을 보낸다. 칭기즈칸으로 성장한 몽골 세력에 굴종한 이후 토번은 잊혔다. 800년 넘게 민족문화의 자율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서도 강대국 입맛에 따라 별의별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을 따름이다.

둔황 막고굴 112굴 남벽 동쪽의 ‘무량수경변’ 중 반탄비파 악무. 둔황연구원 화보집
둔황 막고굴 159굴 동벽 남쪽 ‘토번 짼뽀 예불도’. 둔황연구원 화보집

토번은 786년부터 분열될 때까지 약 60년 동안 둔황을 비롯해 실크로드 일대를 지배했다. 당연히 상권을 장악했다. 둔황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석굴을 55개나 새로 세웠다고 한다. 국력이 약하면 가능하지 않다.

159굴 동벽 남쪽에 토번 짠뽀(왕)가 예불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붉은 모자를 쓰고 긴 도포에 검은 가죽신 신고, 허리에는 비수를 찬 모습이 의기양양하다. 시녀와 신하가 줄지어 뒤따르고 있다. 112굴 남벽 동쪽 무량수경변도(無量壽經變圖)에는 반탄비파(反彈琵琶) 악무가 등장한다. 등 뒤로 비파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경변이란 ‘불경을 구현한 예술’이며 무량수불, 즉 아미타불에 대한 찬양이다. 둔황의 상징으로 토번 시대 걸작품 중 하나다.

포탈라궁 야경. Ⓒ최종명

한때 당나라 수도를 점령하고 실크로드를 장악한 토번의 후예다. 당나라는 세계 무역과 문화의 중심이었다. 토번의 존재는 소그드 상인의 낙타를 타고 아라비아를 거쳐 서양에 전달됐다. 9세기에 한 아라비아 상인이 여행기를 썼다. 토번을 아라비아 언어로 ‘Tibbat’라 기록했고 자연스레 ‘Tibet’로 변화했다는 주장이 있다. ‘코도 있고 눈도 있다’는 말처럼 그럴듯하다. ‘봇’은 티베트가 됐다. 오체투지로 빌고 또 빌면 과거의 영화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어둠 속에서 홍궁이 붉게 빛나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영혼은 여전히 잠자는 듯하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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