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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경매 나온 국보가 北 '가짜 고구려 불상'의 원본이었다고?

유석재 기자 입력 2022. 01. 15. 10:00 수정 2022. 01. 1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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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한 불상 사진이 오늘 아침 신문 1면에 나왔다. 간송미술관 소장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이다.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중앙 본존불과 양 옆의 협시보살을 둔 높이 17.7㎝의 삼존불상으로, 서기 563년으로 보이는 ‘계미년’이라는 명문이 광배 뒷면에 새겨져 있다. 고구려·백제·신라 중 어느 나라의 작품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백제 불상으로 추정된다. 새로 발견된 것도 아닌 이 불상이 갑자기 신문에 나온 이유는, 재정난을 겪는 간송미술관 측이 경매에 내놨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보가 경매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1962년 국보로 지정돼 ‘국보 72호’(옛 국보 번호)로서 미술관에 잘 보관돼 있던 이 유물이 18년 전인 2004년 돌연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건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신간 연구서의 각주(脚註)에서 기삿거리가 나올 때도 있다. 저명한 미술사학자 가운데 장충식(1941~2005) 동국대 교수가 있었다. 동국대 박물관장을 지낸 불교미술의 전문가로, 단국대 이사장과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인물과는 동명이인이다. 동국대 장충식 교수는 2004년 연구서 ‘한국 불교미술 연구’(시공사)를 냈다. 기자가 그 책을 읽던 중 삼존불을 설명하는 부분의 각주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부분을 발견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당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작업인 동북공정이 물의를 빚던 시절이었다. 마침 남북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통일 운동 상설협의체인 한국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위원회(민화협)는 북한의 문화보존지도국과 함께 사업을 벌였다. 북한의 고구려 유물 227점을 서울에서 전시하는 ‘2004 남북 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이었다. 유명 박물관이나 전시장 섭외에는 실패했는지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상가 건물 컨벤션홀을 빌렸다. 북한에서 온 고구려 유물을 선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 단체 관람객을 포함해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대부분 북한 정부에서 보낸 유물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장 교수는 이 전시회의 대표적 유물 중 하나로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라고 소개된 ‘연가 7년명 금동 일광 삼존상(延嘉七年銘金銅日光三尊像)’에 대해 ‘뭔가 의심스럽다’는 언급을 그 책 각주에서 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의심스럽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가짜라는 건가? 북한 정부 기관인 문화보존지도국에서 보증한 유물이?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동국대 장충식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기자를 맞은 장 교수는 “참 잘 찾아내셨군…”이라 말한 뒤 “이런 가짜 유물을 버젓이 전시하는 일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이냐”고 반문했다.

“왜 그 북한 유물을 가짜라고 보시는 겁니까, 선생님?”

“자, 여기 두 사진을 잘 비교해 보세요.”

2004년 서울에서 전시된 북한의 고구려 유물 ‘연가 7년명 금동 일광 삼존상’<왼쪽>과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오른쪽>. 오른쪽 불상은 이번에 국보 최초로 경매에 나온 문화재다.

장 교수가 내민 사진은 서울에서 전시 중인 북한 유물 ‘연가 7년명 금동 일광 삼존상’<왼쪽>과 서울 간송미술관 소장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오른쪽>이었다.

“어떻습니까?”

세 부처의 형상과 자세, 의상, 옷 주름, 연꽃잎 모양의 광배(불상 뒤쪽에 만들어진 장식), 광배의 소용돌이 문양과 용 모양 장식, 받침대의 문양까지, 두 불상은 복사품인 듯 꼭 닮아 있었다. 다만 북한에서 온 왼쪽 작품이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였다.

“보시면 알겠지만 왼쪽 북한 불상은 오른쪽 간송 불상을 보고 만든 모조품이 분명합니다.”

기자가 말했다. “닮긴 닮았습니다만… 비슷한 양식이 서기 6세기 당시에 유행했을 수도 있잖습니까?”

“이렇게까지 똑 같은 경우는 좀처럼 찾을 수 없지요. 또 하나, 북한 불상 뒷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국보 119호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에 새겨진 명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겁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은 남한에 있는 문화재 중에선 보기 드문 고구려 유물이다. ‘연가’란 현존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고구려의 독자적인 연호로, 이 유물이 발견된 뒤에야 알려지게 됐다. 1967년 박물관에서 도둑맞은 적이 있었는데, 범인이 문화재관리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강철교 제3교각 16번과 17번 침목 받침대 사이 밑 모래밭에 묻었으니 찾아가시오’라고 한 뒤 경찰이 그곳을 뒤져 간신히 되찾았던 기이한 사건도 있었다.

장 교수가 말했다. “한마디로 남한에 있는 국보 불상 두 점을 앞뒤로 하나씩 그대로 베낀 모조품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남한의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이 언제 발견된 것인지 압니까?”

“1963년 경남 의령에서 발견된 것 아닙니까.”

이 말을 해 놓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연가 7년명 금동 일광 삼존상’이 모작이라면, 아무리 빨라도 그것은 1963년 이후에 제작됐다는 얘기가 된다.

장 교수는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당초 남한 학계에서는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 명문의 한 부분을 ‘제입구회 현세불(第卄九回現歲佛)’로 판독했었다. ‘스물아홉 번째 현세의 부처’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부분은 훗날 ‘제입구 인현의불(第卄九因現義佛·스물아홉 번째 인현의불)로 읽어야 맞는 것으로 수정됐다. 그런데 북한 불상은 이걸 처음 판독대로 ‘제입구회 현세불’이라고 적었다. 당초 틀리게 판독한 부분까지 그대로 베낀 결과라는 것이다. 문서를 베껴쓸 때 원본 문서의 오타까지 베낀 게 결정적인 흔적으로 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건 혹시 장충식 교수 혼자만의 주장은 아닌 걸까. 다른 불교미술 전문가에게도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미술사의 권위자 중 한 명인 강우방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장충식(왼쪽) 교수와 강우방 교수.

질문을 듣자마자 강 교수는 “아~ 그거요?”라며 웃었다.

“가짜 맞아요. 똑 같은 명문이 서로 다른 두 유물에 새겨졌다는 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얘기예요.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미 그게 위작이라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당사자 입장을 듣기 위해 민화협 측에 전화를 했더니 답변이 이랬다. “그 명문이 후대에 새겨졌다는 의견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유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뒷면의 명문이 가짜라는 것만큼은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는 셈이었다. 이제 기사를 쓸 수 있게 됐다.

기사는 2004년 5월 4일자 조선일보 A21면(문화면)에 실렸다.

조선일보 2004년 5월 4일자에 실린 '북한 가짜 불상' 기사.

그러나 기사를 쓰면서도 의문은 계속됐다. 장충식 교수와 강우방 교수의 말이 맞는다면, 북한은 도대체 어떤 나라기에 공식적으로 전시를 위해 국외 반출하는 유물조차 가짜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 북한 당국도 사기꾼 위작업자에게 속았던 것일까, 아니면 북한 정부에서 일부러 가짜 유물을 만들어 진짜인 양 사람들을 속였던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기사가 나간 뒤 혹 통일부나 민화협, 또는 북한 측에서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항의 전화가 왔다. 기사가 신문에 난 날 저녁, 민화협과 그 전시를 공동 주최하고 있던 A일간지의 B기자가 전화해 “그 기사를 왜 쓴 거냐, 우리 주최인 줄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기사를 쓸 수 있느냐”고 따졌다. 전화를 끊은 뒤 인간적으로 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언론계 선배인 B와는 그 뒤로 여러 취재 현장에서 만나면서 친해졌지만, 양쪽 모두 다시는 그 불상 얘기를 대화 주제로 꺼내지 않았다.

장충식 교수는 기사가 난 이듬해인 2005년 정년을 1년 앞두고 별세했다. “허 참,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이런 짓을…”이라며 분노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17년이 지나 이젠 북한 ‘가짜 고구려 불상’의 원본으로 지목됐던 간송미술관의 그 불상 ‘계미명 금동 삼존불 입상’이 경매에 나와 새 주인을 찾게 됐다. 기나긴 역사를 겪은 유물의 입장에서 보면 찰나를 사는 인간들의 행동이란 때론 무척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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