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38살 고 김다운, 끝내 끼지 못한 39만원짜리 절연장갑

김건휘 2022. 1. 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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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만 2천 볼트 고압전류에 타버렸다‥38살 예비신랑 김다운 씨의 비극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29618_35744.html

"왜 기사가 나오지 않았나요?"‥철저하게 잊혀진 죽음

2만2천9백볼트 특고압에 감전돼 서른 여덟의 나이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김다운 씨. 다운 씨의 소식을 유가족들로부터 처음 들은 건 지난해 말. 그런데, 이미 세상을 떠난지 한 달이나 흐른 뒤였습니다.

"상견례를 2주 앞둔 예비신랑이 머리에 불이 붙어 까맣게 타들어 간채 전신주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병원에서 19일을 버티다 끝내 숨졌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전화 너머로 듣는데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런 죽음이라면 분명 이슈가 됐을 게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듣는 소식이었습니다. 검색을 해봤지만,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다운 씨의 죽음은 신문 어느 한 귀퉁이에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TV 뉴스에 두세 줄짜리 단신조차 나가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잊혀진 죽음이었습니다.

취재진은 다운 씨가 사고를 당한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신축 오피스텔 건물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작업하던 전봇대였습니다. 거의 두 달전에 일어난 사고였지만, 주민들은 당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기자에게 '왜 기사가 나오지 않았냐'고 되물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담당 조사관도, '분명 기자들 취재가 많이 들어올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문의가 없어 의아했다'고 말했습니다.

38살 김다운, '60대 무명남'으로 기록‥"알아볼 수 없었어요"

사고 당일, 가족들은 '다운이가 감전당해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로 실려갔다'는 이야기만 듣고 급하게 달려갔습니다. 소식을 전한 건 다운 씨의 예전 직장 동료였습니다. 하청업체도, 한국전력도, 어느 한 곳에서도 먼저 연락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가족들은 다운 씨를 금방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38살 김다운이라는 남성 환자가 닥터헬기로 조금전 이송된 걸로 알고 왔다'고 해도, 병원에서는 '그런 기록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의료진이 특고압 전류에 까맣게 타버린 다운 씨를, '60대 무명남'으로 기록했던 겁니다.

가족들이 만난 다운 씨는 온몸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습니다. 전신의 40%가 감전으로 인해 3도 화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의식은 없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다운 씨의 친누나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당시 다운 씨가 어땠는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렵게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38년 동안 지켜본 동생이었지만, 친누나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처참한 상태로 돌아온 다운 씨. 화상 치료전문 병원에서 화상 입은 피부를 다 긁어내가면서 수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신장 투석을 하며 버티던 다운씨는 패혈증 쇼크로 사고 19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38번째 생일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올 봄 결혼을 앞두고 바로 전 주에 잡아놨던 상견례는 영원히 갈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사랑한다'는 메시지와 "일 끝나고 얼른 집에 가겠다"는 통화가 약혼녀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김다운의 죽음을 세상에서 지우려 했던 사람들

다운 씨가 근무하던 한국전력 하청업체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사고"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고의 경위를 캐묻자,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하청업체가 지켰어야 할 안전관련 지침을 제시하며 하나하나 재질문을 하자,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청업체 대표는 "이미 끝나가는 일"이라며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2개월 지난 거잖아요 다 발인도 했고‥다 이제 종식돼가는데 이걸 다시 불을 지피셔가지고 그거하신다 는 건 저는 좀 그거한데‥" - 하청업체 대표와의 통화 中-

무관심하고 무책임했던 한국전력, 이해하기 힘든 답변만 반복

유족들은 사고 이후 연락처를 직접 수소문하고서야 간신히 한전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원청업체로의 책임이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하청업체가 자신들의 사전 승인 없이 작업을 했다'며 피해가기 바빴습니다.

MBC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도 한전은 사고 책임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질문을 해도 답변을 받으려면 5~6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항상 뉴스 시간이 닥쳐와서야 이메일로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나마도 전기 관련 업무를 하는 전문가들이나 알 법한 전문용어로 가득해,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습니다. 결국 MBC 취재진이 한전 나주본사까지 찾아가고 나서야, '설명이 불친절했다'는 인정과 함께 수수께끼같은 답변의 풀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청업체 측이 작성을 도운 다운 씨의 산업재해 신청서에는, 한전 여주지사 직원이 '사고 목격자'로 적혀 있었습니다. MBC는 취재 초기부터 이 직원이 당시 왜 현장에 있었고,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계속 물어봤습니다.

해당 직원은 사고 뒤 유족을 만났을 때, "'펑' 소리가 나는 걸 듣고 사고 지점으로 달려갔다"고 말했습니다. 한전도 "해당 직원이 사고 당시, 다른 지점에서 다운씨의 작업과는 별개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알고보니 한전 직원은 사고 현장에서 다운씨를 만나 2~3분간 대화를 나눴고,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보고를 받은 뒤, 전봇대 밑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한전측은 취재진이 본사를 찾아갔을 때, 장시간 해명을 하면서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저희가 KTX 기차역 플랫폼에서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던 저녁 시간에 뒤늦게 전화로 실토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한전은 자신들이 '발주처'라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현행법상 하청업체를 직접 관리하는 원청업체는 사망 사고가 나면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작업에 관여하지 않는 '발주처'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전력은 지난주 일요일, 사고 발생 66일, MBC 보도 6일 만에 사고에 대해 사장이 공식 사과했습니다. 사과 기자회견에 나선 정승일 한전 사장에게 '보도가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넘어가려고 했던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계속 준비하고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글쎄요, 유족들은 한전으로부터 두 달 가까이 사고 경위조차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전이 '깜짝 이벤트'라도 하려고 했던 걸까요? 참으로 믿기 어려운 대답이었습니다.

"13만5천원짜리 단순 공사"‥지켜지지 않은 규정들

다운씨 유족들은 처음 MBC에 제보를 할 당시 '고민이 많이 된다'고 했습니다. 다운 씨의 죽음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그 파장을 남겨진 자들이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들은 다운 씨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라고 허락하면서, 이 안타까운 죽음이 결코 망자의 책임이 아님을 밝혀 달라고 거듭 부탁했습니다.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죽음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봤습니다. '작업자가 조금더 신경쓰고 조심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가 아니었냐'는 의문도 일부 있었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다운 씨는 절연이 되는 '활선차'를 타지 못했습니다. 일반 트럭을 혼자서 직접 몰고 현장에 갔습니다. 안전줄을 몸에 걸고, 전봇대에 박힌 침을 하나하나 밞아가며 작업 위치까지 올라갔습니다.

2인 1조 작업이 원칙이지만 혼자였습니다. 애초에 사고가 난 작업구역이, 다운 씨 담당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하청업체가 했어야 할 일을 퇴근 직전, 소장의 지시로 혼자 떠맡았던 것이었습니다.

안전관리자도 물론 없었습니다. "13만 5천원짜리 단순 공사"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결제하지 못하고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남은 절연장갑

다운 씨의 유족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못다한 말이 있는지 듣고 싶었습니다. 다운 씨의 휴대전화에서 뒤늦게 발견한 사진 한 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운 씨는 사고를 당하기 얼마 전, 약혼녀에게 "절연장갑을 사야겠다"고 말했답니다. 그의 인터넷 쇼핑몰 계정에는 미처 사지 못한 절연장갑 두 쌍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운 씨가 속했던 하청업체에서 따로 지급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정가 39만원짜리 절연장갑을 다운 씨는 그렇게 한 번도 끼어보지 못했습니다.

다운 씨의 죽음은 결코 부주의에서 비롯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지켜내기 위한 시스템에 빈틈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그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을 따르는 사람들도 안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다시는 없어야 할 비극이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취재: 고재민 jmin@mbc.co.kr · 김건휘 gunning@mbc.co.kr · 임명찬 chan2@mbc.co.kr / 영상취재: 김희건, 윤병순, 이상용, 강재훈, 김우람, 최인규 )

(김건휘gunning@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33101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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