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멸공 논란'으로 값 떨어진 신세계 주식..저점 매수 기회였나

이윤주 입력 2022. 1. 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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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리스크 전후 기업 주가 추이 분석 
경영 외 오너 '애티튜드' 리스크는 영향 미미 
장기 불매운동으로 경영 타격이면 주가 하락 
전문가 "주식 매매..오너 말고 기업 펀더멘털 봐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발언이 계열사 불매운동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온라인에서 누리꾼들 사이에 공유된 불매 캠페인 시각물.

우리가 이렇게 멸치, 콩을 많이 먹는 민족이었나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쏘아올린 멸공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지면서 멸치, 콩 구매 인증샷이 줄줄이 이어졌는데요, 역풍으로 신세계 계열사 불매운동 조짐이 보이며 주식시장까지 들썩인 한 주였습니다. 덕분에 멸공만큼이나 사문화될 뻔한 한국형 일반명사 '오너 리스크'도 다시 회자되고 있죠.

그래서 알아봤습니다. 오너 리스크는 기업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구설로 끝난 오너 리스크라면, 오히려 주식 저점 매수 기회가 아니었을까.


①멸공 논란 일주일... 주가 -3.8%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연달아 올린 '공산당이 싫어요' 게시물. 정용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일단 신세계 주가 추이부터 살펴보죠. 정 부회장은 이미 지난해 11월 한 차례 구설에 올랐습니다. 11월 15일 정 부회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뭔가 공산당 느낌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라며 빨간색 카드 지갑, 잭슨 피자 박스를 들고 찍은 사진을 게재했죠. #난 공산당이 싫어요란 해시태그를 붙여서요.

정 부회장은 이틀 뒤 "난 콩이 싫다"면서 또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24일에는 북한의 주민 총살 기사를 올리며 "공산당이 싫다"고 강조했죠. 이 시기를 편의상 '반공 1차'라고 칩시다. 1차시기 신세계 주가는 24만2,000원(15일 종가 기준)에서 24일 22만9,000원으로 19일 하루 빼고 계속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소소하게 올라 12월 7일 1차 이전을 회복합니다(24만5,500원).

정 부회장 발언이 이념 논쟁으로 옮아간 건 이달 5일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 구호가 인스타그램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삭제되면서 부터입니다. 매일 #멸공 해시태그를 붙인 정성이 통했는지 8일 윤석열 대선후보를 비롯해 나경원 전 원내대표,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등 국민의힘 유력인사들이 이마트로 달려가 멸치, 콩을 사며 화답했죠. 이 시기를 '멸공 2차'라 칩시다.

1월 7일 25만 원인 신세계 주식은 멸공 인증 샷이 나간 후인 10일 6.8% 하락한 23만3,000원에 거래됐습니다. 평소 수백 건인 신세계 공매도는 이날 3만8,000여건에 달했더군요. 신세계 주가는 이후 사흘 연속 반등하다 14일 하락, 24만2,000원에 마감했습니다. 일주일 사이 3.8% 하락한 셈인데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0.4%), 롯데쇼핑(+2.1%)보다는 하락률이 높지만, 면세점과 중국시장 등 비슷한 이슈로 고전한 LG생활건강(-11.8%), 아모레퍼시픽(-5.3%)보다는 선방했네요. 7~14일 코스피는 1.12% 하락했습니다.


②오너 '애티튜드' 리스크, 주가 영향 단기적

2016년 10월 1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관에서 열린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기증식 및 공개회'에서 기증자인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왼쪽)과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수월관음도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너 리스크. 백과사전에는 '오너의 독단이 기업 경영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나와있네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사회에서도 오너 입김이 강해 해외에도 있는 CEO 리스크와는 다른 거"라고 설명해줍니다. 카카오 주가 하락을 오너 리스크로 한데 묶기에는 애매하단 말씀.

한국증권거래소에서 오너 리스크를 겪은 다른 기업들의 주가 추이를 찾아봤습니다. 갑질이나 실언 같은, 기업 구조와는 상관없는 오너 '애티튜드'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주가는 장기적으로 그리 영향 받지 않았더군요.

대표 사례가 화장품 주문자개발생산기업 한국콜마입니다. 2019년 8월 6~7일 윤동한 전 회장이 월례조회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 대응을 설명하며 극우 유튜버 영상을 튼 게 화근이었죠. 해당 영상에서 유튜버는 "아베는 문재인 면상을 주먹으로 치지 않은 것만 해도 너무나 대단한 지도자" 등 실언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회사가 해명에 나섰지만 납품받은 화장품 회사들의 불매운동으로 번지면서 나흘 만인 11일 윤 전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기로 했죠.

주가를 볼까요. 8월 6일 4만9,800원에서 이튿날 4만8,150원(-3.31%)으로 빠지는 등 꾸준히 하락세를 보입니다. 10월 4일 3만9,250원으로 저점을 찍고 윤 전 회장 사퇴 다섯 달 만인 이듬해 1월 13일(5만3,000원) 회복했습니다. 윤 전 회장, 지난해 11월 15일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했는데 사퇴 당시보다 주가는 더 떨어졌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수출‧면세점 납품 등 판로가 막히면서 11월 15일 4만2,550원을 기록했습니다. 오너 리스크보다 코로나19가 주가에는 더 결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죠.


③오너 리스크 나비효과가 관건

조현민(오른쪽) 한진 사장이 물컵 갑질 파문이 확산된 2016년 12월 15일 새벽 해외에서 급거 귀국했다. 2014년 조현아(왼쪽)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함께한 모습. 연합뉴스

한진가(家)도 짧지 않은 오너 리스크 역사를 가지고 있죠. 애초에는 오너의 기행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검찰 수사, 국토교통부 제재 같은 나비효과로 이어지며 '차원이 다른' 리스크로 발전했습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기내 소란이 국내에 알려진 건 2014년 12월 8일입니다. 11일 비행기 후진을 두고 수사가 시작됐고, 16일 국토부가 조 전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했죠. 대한항공 주가는 12월 3일 3만7,300원에서 11일 5만 원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이듬해 2월 말까지 4만5,000원선을 오르내리죠. 한데 당시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항공업계가 호황을 누리던 때였습니다. 같은 기간 아시아나 주가가 5,820원(2014년 12월 8일)에서 9,180원(2015년 2월 24일)으로 '날았'던 것과 대조적이네요. 요컨대 물 들어올 때 배 못 저었다는 거죠.

조현민 한진 사장의 물컵 갑질이 폭로된 건 2018년 4월 12일입니다. 이후 조 사장의 항공법 위반이 확인되며 국토부가 진에어의 항공기 면허취소를 검토하는 나비효과가 또 한번 작동하죠. 8월 17일 면허 취소 대신 신규 취항 등을 제재하는 선에서 끝났습니다만, 20일 다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실시됩니다.

2017년 12월 상장한 진에어 주가는 꾸준히 올라 물컵 갑질 보도 전날인 4월 11일 3만2,550원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하락해 국토부 발표 전인 8월 14일에는 2만1,600원으로 상장 후 최저를 기록하죠. '장기 우하향'하던 주가가 반등을 맞은 건 국토부의 진에어 제재가 깜짝 해제된 2020년 3월 31일입니다. 전일 대비 14.79%, 3월 23일 대비 2배 급등한 1만1,100원에 마감했죠. 기업도 할 말이 있습니다. 주가 우하향의 본질은 오너 리스크가 아니라 저가항공 출혈 경쟁, 코로나19라는 거죠. 일리는 있어요. 2018년 4월 11일 4만7,950원이었던 제주항공 주가도 등락을 반복하다 8월 16일 3만9,450원으로 떨어지거든요. 하락률만 보면 진에어에 못지않죠.


④장기 불매로 펀더멘털 영향 주면 주가 하락

지난해 5월 4일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이 서울 논현동 본사 3층 대강당에서 '불가리스' 코로나19 억제 효과 논란에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회장직 사퇴를 밝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너 리스크의 나비효과가 기업의 기초체력을 흔든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양유업이죠. 경쟁사 비방 댓글, 회장 외조카의 마약사건,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등으로 국내 소비자 불매운동 기업의 상징이 된 남양유업은 지난 9년간 주가가 60% 이상 폭락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 남양유업은 황금주였습니다. 밀어내기 논란 직전인 2013년 4월 30일 남양유업 주가는 116만5,000원까지 오르기도 했었죠. 1월 25일 공정위가 남양유업 밀어내기를 접수하고 관련 집회도 열렸지만 여파는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5월 4일 대리점주 막말 녹취록이 공개된 후 7일 하루 만에 8.59%, 일주일 만인 13일 15% 급락하며 100만 원 고지에서 내려갑니다. 6월 27일에는 남양유업 여직원이 결혼하면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임금을 깎고 각종 수당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2015~16년 주가는 75만 원 내외, 2019년에는 60만 원 내외로 꾸준히 하락세를 보입니다.

2019년 4월 1일에는 황 회장의 조카 황하나씨가 마약 범죄 사건에 연루됐죠. 2020년 5월 6일에는 회장 지시로 경쟁사인 매일유업에 비방 댓글을 작성해 논란이 됐습니다. 5월 6일 31만9,500원이던 주식은 6월 15일 27만8,000원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지난해 4, 5월에는 불가리스 사태를 맞습니다. 불가리스에 코로나 바이러스 활성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발표가 난 4월 13일 하루 만에 8.57% 오른 38만 원을 기록했지만 다음날 식약처 입장이 나오며 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하게 되죠. 오너 일가가 주식 지분을 팔기로 하면서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했었죠. 하지만 새 이사회 구성이 난항을 겪으면서 다시 하락합니다. 2022년 1월 14일 종가 기준, 주가는 40만3,500원. 2013년의 34.6%에 불과하죠.

오너 리스크가 주가에 반영되는 건 남양유업 8년의 역사를 보더라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예컨대 황하나씨 마약 보도 때는 영향이 없었거든요. 황씨 보도가 나온 2019년 4월 1일 61만1,000원이었던 주가는 이후에도 꾸준히 60만 원대에 거래됐습니다.

이보다는 오너 리스크로 불거진 꾸준한 불매운동, 그로 인한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가 주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타당해보입니다. 남양유업 매출은 밀어내기 폭로 전인 2012년 1조3,650억 원에서 2020년 9,489억 원으로 30.5%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37억 원 흑자에서 771억 원 적자로, 순이익은 610억 원 흑자에서 535억 원 적자로 전락했죠.


⑤투자는 오너 말고 산업 구조‧기업 가치 봐야

최근 3개월간 신세계 주가 추이. 한국거래소 캡처

결론입니다. 오너 리스크는 기업에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미칩니다. 장기적 영향은 '정성적 부분'이 많아 본격적인 연구가 많지 않고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임현일 부연구위원이 오너 갑질 논란을 겪은 8개 기업, 31개 상장계열사의 갑질 발생 후 20일간 주가 변화를 분석한 결과 "다수 표본 기업에서 음의 비정상 누적수익률(-2.951%)이 관찰"됐습니다('오너 리스크가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 2017). 구체적으로 "사건 발생 후 5거래일까지 유의미한 비정상 누적수익률이 관찰되지 않지만, 5거래일 이후부터 주가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15거래일 이후부터 유의미한 주가 하락이 관찰된다"는 겁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도 "10일 코스피 하락 지수가 1%에 그친 것과 비교해 신세계 주가가 5% 이상 추가 하락한 점은 분명 오너 리스크가 계기가 됐을 것"이라면서도 "일시적 이벤트라 '단기 주가'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본다"고 말했습니다.

멸공 논란이 단기 이벤트에 그칠지,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두고는 투자자마다 이견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너 리스크가 큰 기업은 세무조사 가능성이 높아 조세회피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는 국내 연구도 있으니까요(주자운 외 3인 '오너리스크가 기업의 조세회피에 미치는 영향' 2020). 이럴 경우 전화위복으로 회사 재무제표는 더 건전해지겠죠.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오너 리스크가 발생한 기업들은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BtoC 기업들"이라며 "주가가 불매운동 등 기업 실적을 선반영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너 리스크가 불매운동이나 행정제재, 검찰 수사로 이어지지 않고 구설에 그친다면, 오히려 주식 저점 매수 기회로 봐야 할까요?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투자할 때는 기업의 펀더멘털(경영지표)을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최근 신세계 주가 하락은 면세점 운영 등 코로나19 불안 요인, 온라인마켓 같은 산업변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에 (멸공 논란을) 저점 매수(기회)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고태봉 센터장도 비슷한 조언을 덧붙였습니다. 오너의 사회적 존경 여부와 주가 변동은 '별개'라고요. "현대차 오너가 1조 원에 달하는 세금을 제대로 내겠다며 순환출자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을 때 주가는 하락했다"는 겁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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