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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년만에 찾아온 우리 땅.. 인천 사람들이 해냈다

글 정경숙 입력 2022. 01. 15. 18:00 수정 2022. 04. 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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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에 비친 인천] 캠프마켓

'인천, 그림이 되다.' 낡은가 하면 새롭고, 평범한가 싶으면서도 특별한. 골목길만 지나도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인천. 추억이 그리움으로, 때론 일상으로 흐르는 공간이 작가의 화폭에 담겼다. 그 따뜻하고 섬세한 붓 터치를 따라 인천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간다. 이번 호에는 80여 년을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땅 '캠프마켓'. 담 너머 닿을 수 없던 그곳을 긴 시간 지켜본 이승희 화백이 그렸다. 아픔을 딛고 솟아나는 새 희망을 담아. <기자말>

[글 정경숙, 사진 임학현]

▲ 캠프마켓(350x270mm, Canvas, Gouache, Acrylic_2021) 80여 년을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땅, 캠프마켓. 아픔이 켜켜이 쌓인 언 땅을 딛고, 새 희망이 돋아나 자라고 있다.
ⓒ 그림 이승희
벽이 허물어진 그날

"육, 오, 사, 삼, 이, 일... 영!" 높다란 콘크리트 벽이 허물어지고 가시 돋친 철조망이 잘려 나갔다. 캠프마켓 B구역이 인천시민에게 품을 더 활짝 연, 2021년 11월 25일. 그날은 인천 청년 박보민(33)씨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수많은 인천시민이 한마음으로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함성 속에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그제야 '캠프마켓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우리 땅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는 캠프마켓 서포터스인 '캠프파이어' 2기 회원이다. 캠프마켓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닫힌 공간 속 기억의 파편을 그러모아, 오늘 역사의 앨범에 가지런히 꽂아두었다.

처음부터 높다란 담장 너머 세상에 관심을 둔 건 아니다. 인천의 많은 청춘이 그러하듯, 그 역시 생애 가장 빛나던 시절을 부평 한복판에서 보냈다. 당시 친구들과 한참을 어울려 놀다 해 질 무렵 그 앞을 지날 때면 스산하고 낯선 기운과 맞닥뜨리곤 했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저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여 있을까'.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시간이 흐르는, 도심 속 외딴섬. 그렇다고 담 너머 세상을 더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일제강점기 무기와 탄약을 쏟아내던 조병창이 있고,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오래도록 미군이 머물던 자리.

훗날 그 안에 서린 역사를 어렴풋이 알게 됐을 때야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도 지나온 시간에 관심을 두지 않은 자신을 깨우치는 순간이었다. 이후 "역사를 잊으면 미래도 없다",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자"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늘, 캠프마켓 안에서 세상 밖을 바라보는 박보민.
ⓒ 임학현 포토디렉터
 
 시민의 함성 속에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캠프마켓은 온전한 우리 땅이 되었다.
ⓒ 임학현 포토디렉터
 
우리 땅, '그들만의 세상'

'한국 안의 작은 미국', 우리 땅에 뿌리내린 그들만의 거대한 도시였다. 1945년, 미 제24군수지원 사령부가 부평 한복판에 미군 기지 '애스컴 시티(ASCOM City)'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인천육군조병창이 있던 아픈 역사의 땅이었다. 일본이 떠난 후에는 다시 미국의 차지가 됐다.

오늘날 부평구 산곡동과 부평동 일대를 아우르던 그들만의 세상. 맞닿은 곳에서 우리네 삶도 계속됐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 배고프던 시절, 그 안에서 새어 나오던 불빛을 따라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미제 물건이 양키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클럽에선 대중음악이 울려 퍼졌다. '남과 다른' 삶을 운명처럼 짊어진 파란눈,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우리 어머니들은 냉대 속에서도 악착같이 자식을 길러내고 삶을 살아냈다.

그 질곡의 세월을 지나 1973년, 애스컴 시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남겨진 캠프마켓. 사람들이 떠난 빈자리엔 아픈 역사와 고된 삶이 엮어낸 거미줄이 얽히고 먼지가 자욱이 쌓여갔다. 가까이 아파트 숲이 들어서고 새로운 삶이 깃들었지만, 담장 너머는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땅이었다. 두 공간 사이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캠프마켓 B구역 내 1595번 건물. 1987년에 지은 공연장으로, 새 단장 후 '음악 창작소'로 문을 연다.
ⓒ 임학현 포토디렉터
 
▲ 적막한 함성(242x333mm, Canvas, Gouache, Acrylic_2022) 시민에게 일부 개방한 캠프마켓 B구역. 운동장 안의 낡은 전광판이, 그 옛날 홈런을 날리던 시절의 기억을 붙잡고 있다.
ⓒ 그림 이승희
 
시민 힘으로 이룬, 오늘

그리고 2019년 12월, 오랜 기다림과 노력 끝에 드디어 '그날'이 왔다. 캠프마켓 A·B구역 반환이 결정돼 인천시민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올 하반기면 남은 D구역까지 인천 사람들 품에 온전히 안긴다.

1996년 불을 지핀 시민운동이 그 시작이었다. 부평 주민 스스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맨몸으로 맞섰다. 미군 기지 앞에서 한목소리로 부르짖고, 두 손을 맞잡고 나아갔다. 그 시간은 부평 사람들에게 가슴속 응어리를 도려내고 불굴의 의지로 일궈낸 자부심이기도 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간 띠를 이루어 캠프마켓을 둘러싸던 때가 기억나요. 약 2000명이 함께했는데, 대부분 부평 주민이었죠. 그렇게 모두의 힘으로 부평 미군 기지 반환을 이룬 2002년 3월 29일,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부평미군기지공원화추진시민협의회 곽경전(60) 집행위원장은 25년간 시민운동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캠프마켓 문지기'를 자처하며 오래전 지어진 작은 초소를 지켜왔다. 그 안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캠프마켓의 오늘을 기록해왔다.

"물론 캠프마켓은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곳이에요.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가까이에 넓은 운동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합니다." 며칠 전엔 눈이 내려 동네 아이들이 한참 눈싸움을 하다 갔다. 그 풍경을 뷰파인더 너머로 보다 찰칵, 마음에 새기었다. 그는 곧 이 자리를 떠나지만, 그가 남긴 오늘 우리의 모습은, 내일을 살아갈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1595번 건물, 역사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캠프마켓 문지기 곽경전.
ⓒ 임학현 포토디렉터
 
아픈 역사 딛고, 내일로

자그마치 80여 년이다. 캠프마켓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 2002년 3월, 캠프마켓 반환이 결정된 후에도 18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주민들에겐 길고 긴 시간이었다.

"참 오래 기다렸지. 공원이 된다, 된다, 하는 사이 지쳐서 떠난 이웃도 많아. 그래도 지금껏 함께한 주민들은 '꿈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서로를 다독여. 하루빨리 숲이 우거진 공원이 생기면 좋겠어."

매일 집 앞 공원을 거니는 평범한 일상이, 캠프마켓 너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간절히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오래전 품은 그 소망은 오늘 현실로 다가왔다.

문부(77) 어르신은 캠프마켓환경정화민관협의회의 주민 대표다. 캠프마켓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만 1,031㎥에 이르는 대규모 다이옥신 오염토를 완전히 정화 했다. 캠프마켓환경정화민관협의회는 지난해 9월 30일 A구역 토양을 채취해 다이옥신 오염도를 분석한 결과, 목표치인 100(pg-TEQ /g)보다 훨씬 낮은 2.18pg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100pg은 독일 등 유럽에서 놀이터에 사용하는 흙에 적용하는 기준. 그만큼 안전하게, 마음 놓고 땅을 밟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하늘을 자주 올려보며 살면 좋겠어." 네온사인이 휘황한 휘청거리는 밤거리, 그의 유년 시절을 지배하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겐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숲이 펼쳐진 풍경으로 기억되길, 그는 바란다.

캠프마켓은 지금 토양오염 정화 작업과 공사가 한창이다. 80여 년, 간절한 기다림 끝에 다시 찾은 땅. 시민 품에 온전히 안기는 그날이 오면, 긴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의 상처도 희미해져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이제 다시 봄, 아픔이 켜켜이 쌓인 언 땅을 딛고 새 희망이 돋아나 자라고 있다.

캠프마켓 오늘&내일 : 안내소와 전시시설을 갖춘 시민 소통 공간으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월요일은 휴무. 요청 시 문화 관광해설사로부터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문의 : 032-512-4522)

▶취재영상 보기(https://youtu.be/DVAV9-SXnxw)
 
 옆 아파트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캠프마켓. 하늘 아래 푸른 숲을 품은 마을, 꿈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임학현 포토디렉터
 
 캠프마켓환경정화민관협의회 문부 주민 대표.
ⓒ 임학현 포토디렉터
  
 이승희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인천에 머물러왔다. 현재 인천미술협회와 부평구예술인협회 소속. 부평 캠프마켓 높다란 담장 너머에서 살아온 지는 30년이 됐다. 그간 우리 땅이면서도 다가설 수 없던, 세상과 단절된 그곳을 오랜 시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오늘, 오래 기다린 끝에 다시 찾은 캠프마켓을 화폭에 담는다.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희망을 담아, 밝은 내일을 기다리며.
ⓒ 이승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2022년 1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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