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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는 것보다, 지는게 더 싫어..샤넬, 자꾸 값올리는 이유 [생생유통]

이영욱 입력 2022. 01. 15. 18:03 수정 2022. 01. 1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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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유통] 불안한 조짐은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맞아떨어졌습니다.

지난 목요일 많은 분이 기사를 보셨을 겁니다. 11일 샤넬이 코코핸들, 비즈니스 어피니티 등 인기 있는 주요 제품(핸드백)의 가격을 인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코코핸들 스몰은 560만원에서 690만원으로 11% 올랐고, 미디엄 사이즈는 610만원에서 677만원으로 역시 11% 가격이 뛰었습니다. 코코핸들의 경우 지난해 9월 한 차례 가격이 오른 적이 있으니 6개월이 채 안돼 가격이 오른 것이죠.

비즈니스 어피니티 스몰 사이즈는 494만원에서 576만원으로 17%, 미디엄 사이즈는 522만원에서 605만원으로 16%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비즈니스 어피니티의 경우 샤넬의 인기 품목 중 하나입니다. 클래식백, 보이백, 19백 등 기존 베스트셀러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샤넬 '입문백'이란 별명이 있는 제품이죠.

10일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명품관에 고객들이 개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한주형 기자>

인상이 아니고 '조정'입니다. 물론 우리만은 아니고요

"다른 주요 럭셔리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샤넬은 제작비와 원재료가(價) 변화 및 환율 변동 등을 고려해 가격을 정기적으로 조정합니다. 이번 조정은 샤넬의 조화로운 가격 정책에 의거해 진행되며, 이는 샤넬 브랜드가 운영되는 모든 마켓 간 현저한 가격 차이를 제한하기 위함입니다."

샤넬에 가격 인상 이유를 문의한 결과 받은 답변입니다. 샤넬은 지난해 가격 인상을 4번 단행했습니다. 물론 샤넬만 가격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루이비통은 5번, 프라다는 6번 가격을 올렸죠. 지난해 가격 인상 때도 이유를 물어봤습니다만, 답변은 대동소이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샤넬만이 아니라 루이비통, 구찌 등 다른 명품 브랜드들의 답변도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샤넬의 공식 답변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문장으로 이뤄진 샤넬의 답변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가격 인상)은 아니고(다른 주요 럭셔리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비용부담이 커져서(제작비와 원재료가 변화 및 환율 변동 등을 고려해) △가격 인상이 아니고 '조정'이며(~조정합니다) △한국만 올린 게 아닙니다(샤넬의 조화로운 가격 정책에 의거해) 입니다. 명품은 가격 인상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습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선 '인상'이 맞지만 적어도 명품 브랜드의 공식 입장은 조정입니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가격이 내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샤넬은 지난 2015년 제품 가격을 인하한 적이 있는데, 당시 고객센터에는 가격이 내릴 줄 모르고 비싸게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지난달 가격 인상을 단행한 롤렉스도 데이저스트 일부 모델은 가격을 낮췄습니다.

11일 샤넬이 올해 첫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소비자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명품 정보 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선 1월 중순께 샤넬이 보이백, WOC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올릴 것이란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로 인해 최근 일부 매장을 중심으로 문이 열리기 전 샤넬 제품을 구하기 위해 매장 앞 긴 줄이 늘어서는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샤넬 `코코 핸들` <사진제공=샤넬>

'에루샤'보단 '에샤·루'가 낫다?

그렇다면 샤넬은 왜 계속 가격을 올리는 것일까요. 최근 이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12월 샤넬이 2019년 말부터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클래식 핸드백 가격을 60%가량 인상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블룸버그가 샤넬에 문의한 결과 환율·생산비 변동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샤넬백 가격이 비슷하도록 유지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해명이죠. 업계 관계자들은 샤넬의 이 같은 가격 인상이 경쟁 명품업체를 따라잡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샤넬의 대표 제품인 클래식 플랩백의 경우 지난해 1000만원을 넘어서며 1000만원 샤넬백 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샤넬 클래식백 미듐은 지난해 12월 기준 7800유로였습니다. 같은 시점 에르메스 버킨백30 토고보다 겨우 100유로 저렴한 정도였죠. 일부 제품에 한정된 것이지만 샤넬과 에르메스의 제품 가격이 비슷한 수준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중고 명품을 다루는 리백의 찰스 고라 CEO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샤넬은 루이비통이나 구찌보단 에르메스와 같은 부류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명품 삼대장으로 에르메스·루이비통·사넬을 묶어 '에루샤'라고 부르는데, 샤넬은 루이비통보단 에르메스와 엮이고 싶다는 것이죠.

샤넬의 에르메스 따라잡기는 단순히 가격 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에르메스는 돈이 있어도 제품을 구경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죠. 소위 '실적템'이라는 제품들을 대거 구매해야 원하는 제품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에르메스의 버킨·켈리백 등을 구하기 위해선 실적템으로 불리는 다이어리, 담요, 그릇 등을 4000만~1억원가량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샤넬이 주목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샤넬 `클래식 플랩백` <사진제공=샤넬>

높은 가격 외에도 필요한 게 하나 더 있다

샤넬은 지난해 10월 타임리스 클래식 플랩백과 코코핸들 핸드백을 1인당 1개씩만 살 수 있는 '구매제한'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시장에 풀리는 공급 수량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품 가격을 올려도 꾸준히 오픈런이 벌어지는데 왜 구매 수량까지 제한할까요. 비싼 제품, 많이 팔면 좋을 것 같지만 샤넬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제품이 너무 흔해지면 명품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모두 에르메스의 버킨과 켈리백을 들고 다닌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만큼 버킨이나 켈리백의 가치가 클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희소성을 높이면 소비자들 사이에선 '더 가지고 싶은 브랜드'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명품이 가격을 올렸다는 기사엔 명품업체와 이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잇습니다만, 명품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선 비난과 욕설보단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의견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명품업체의 가격 인상이 누군가에겐 '허영심'의 상징으로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소유욕'에 불을 지르는 효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명품 가격은)오늘이 가장 저렴한 날'이기 때문이죠.

에르완 램버그 HSBC 소비자 및 소매 리서치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샤넬의 가격 인상이 브랜딩 측면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기업 입장에선 모든 사람들이 같은 핸드백을 들고 다니길 원치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사 제품을 들고 다닐수록 핸드백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가격 인상으로 인해 역풍을 맞은 기업도 있기 때문이죠. 시계 브랜드인 IWC가 대표적입니다. 리치몬트그룹이 시계 가격을 크게 올리면서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지자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저렴한 스틸 버전의 시계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죠.

이래저래 샤넬로서는 고민이 많은 상황입니다. 샤넬은 화장품과 선글라스 등은 온라인으로 판매하지만 핸드백이나 옷은 판매하지 않는 독특한 정책으로도 유명한데요. 경쟁업체들과 다른 이런 전략이 오히려 샤넬의 실적엔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샤넬은 최근 유니레버 출신의 인도계 여성 리나 나이르를 새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하며 쇄신에 나섰습니다. 2020년 매출 18%, 영업이익 41%가 감소한 샤넬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나이르 CEO는 실적 반등을 위한 묘수를 고안해 내야 할 상황이죠. 업계에선 샤넬이 타 브랜드와 실적 격차를 좁히는 방법 중 하나로 '가격(인상)'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샤넬의 에르메스 따라잡기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네요.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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