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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김종분'의 외침 "노점상도 직업이다"

장창준 입력 2022. 01. 1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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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귀정 열사의 엄마'가 아닌 노점상 김종분씨를 만나다

[장창준 기자]

노점상과의 연대, 그 아련한 추억

90년대 대학생활을 했던 40~50대들은 기억할 것이다. 대동제 때면 교정에 노점상 하나 정도는 들어와 있었고, 대개 거기서 술 한잔 기울이곤 했다. 그 기억 때문에, 졸업 후에도 대동제가 되면 나도 모르게 퇴근 후 모교로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되었지만 그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노점상들과 대학생들은 '연대'라는 것을 하곤 했다.

시간이 30년 가까이 흘렀어도 대학생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던, 천대받는 노점상의 처지는 그대로 인 듯하다. 여전히 단속과 철거의 대상이 되고, 코로나 지원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언제쯤 노점상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답답하던 차 노점상들이 권리 찾기에 나섰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노점상을 직업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청원이 시작된 것이다. 자그마한 힘이 되고 싶었으나 일에 치어 이제야 시도해 본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7일 행당동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김종분씨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그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 기사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 뿐이다.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작성하면서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1월 20일로 종료되는 입법 청원 동의자가 이제 3만3000명을 넘었다(15일 기준). 5일 사이, 2만 명을 더 채울 수 있을까. 꼭 5만 명을 채웠으면 하는 간절함. 그래서 노점상들이 국회에 가 국회의원들에게 법을 제정하라고 목소리 높이는 모습을 꼭 보고싶다. 다음 링크를 클릭하면 입법청원에 동참할 수 있다. 

노점상 특별법 국민입법청원 동의하러 가기

가장 유명한 노점상을 만나다

"우리 귀정이가 과외공부 마치고 밤에 늦게 올 때 (과외집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그냥 와. 택시에서 내려서는 '엄마' 하고 불러. 택시비 갖고 오라는 거지. 엄마가 여기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돈도 없이 택시를 탔냐 하면 '우리 엄마는 매일 나오니까, 엄마는 결근을 안 하니까, 믿으니까 (돈 없어도 택시 타고) 왔지' 그래."

김귀정 열사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주노련(민주노점상연합회)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김종분씨를 면회하러 가는 길, 괜히 아픈 상처 드러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허를 찔렀다. 김종분씨는 이야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30여 년 전 딸을 떠올렸다. 

"그때 생각이 참 많이 나."

말을 멈춘다. 인터뷰도 멈춰진다. 자기 딸 또래의 사람을 만나면, 돈 없이 택시 타고 와서는 길 건너에 있는 엄마를 부르는 딸의 모습이 떠오르나 보다. 인터뷰 사전 준비 차 찾아봤던 많은 인터뷰 기사에 택시비 달라는 딸의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 김종분씨 김종분씨는 80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노점을 지킨다.
ⓒ 민주노련
 
화제를 돌린다. 장사하는 사람한테 던지는 화제는 뭐니 뭐니 해도 장사이야기일 터.

김종분씨의 노점엔 각종 야채와 된장 등 저녁거리는 기본이고, 삶은 옥수수 그리고 연탄불로 구운 노릇노릇한 떡 등 간식거리로 가득하다.

"장사는 잘되세요?"

"집에 있으면 아프기만 해. 자식들은 장사 그만하라고 하는데, 나오면 이렇게 좋아. 나와 있는 게 편해."

우문에 현답이다. 이런 속물근성이라니.

말씀하시는 표정이 편해 보인다. 인터뷰하다 멈추고 손님을 맞이하고, 거스름돈을 챙겨 주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누구는 지난번 외상값이라며 2만 원을 주고 가기도 한다. 눈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행인 한 명은 필자를 빤히 쳐다본다. 이번엔 어디서 하는 인터뷰냐고 묻듯이.

사실 김종분씨는 유명인사다. 행당동 시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유명하다. 1991년 시위 도중 경찰들의 강경진압에 압사한 성균관대 3학년 김귀정 열사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빽도 든든하다. 김종분씨는 몇몇 국회의원 이름을 아들 부르듯 한다. 91년 이후 김종분씨를 챙겨왔던 386 인사들인 듯하다.

최근엔 김종분씨와 그 딸 김귀정 열사를 다룬 영화 <왕십리 김종분>이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영화배우인 것이다. 그것도 주연배우.

고백하자면, 인터뷰 준비하면서 알았다. 얼른 영화를 찾아본다. 먹먹하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영화는 인간 김종분에게 초점을 맞췄다. 아직 보지 못한 독자들은 꼭 보시라. 어디서 보냐고? 검색하면 다 나온다.
 
▲ "왕십리 김종분" 영화 포스터 노점 옆에 포스터가 붙어있다
ⓒ 민주노련
 
"할머니가 자랑스럽대"

인터뷰 도중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랑삼아 이야기를 꺼낸다.

"손주가 다섯이야. 손주 딸하고 나하고 (찍은 영상이) 6시 내고향에 나왔어. 한 번 봐봐."

거리에서 하는 인터뷰라 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말씀이 생각보다 빠르다. 6시 내고향? 거기에 왜? 되묻고 싶었지만 넘어갔다.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6시 내고향'이 맞다. 바로 검색 들어가시고.

"6시 내고향, 김종분"을 검색하니 정유인이라는 수영선수 이름이 함께 나온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400m 계영 4위,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400m 계영 한국신기록, 2020년 전국수영대회에서 3관왕(금은동 각 1개)을 차지했으니 나름 스포츠 스타라고 할만하다.

최근 연예 기획사에 들어가 방송활동을 시작한 것 같다. 6시 내고향에서 전통시장 상인들을 찾아가 건강체조를 함께 하는 코너를 맡았다. 정유인 선수가 바로 김종분씨의 외손녀이다.
 
▲ 6시 내고향 유튜브 채널 캡쳐 손녀 정유인이 할머니를 자랑스레 소개한다.
ⓒ 6시 내고향 제작진
의자에 함께 앉아 다리 운동을 하는데, 할머니도, 손녀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내 정신봐라. 이분 영화배우시지. 

"우리 손주 딸들이 그래. 내가 자랑스럽다고. 할머니가 자랑스럽대."

함박 웃음을 지으신다. 인터뷰 도중 가장 환한 웃음이다. 김귀정 열사를 떠올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좀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필자도 행복해진다. 따뜻해진다. 주제넘지만 다섯 손주들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애들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내고, 이걸로 다했지"

이젠 부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다.

"노점상으로 살기 힘들지 않았어요?"

"많이 힘들었지. 낮에는 워낙 철거를 많이 하니까. 낮에는 쉬고, 주로 저녁에 장사했어. (단속 공무원이) 퇴근(한) 시간 후로, 그러니까 밤에. 구청에 가서 싸움도 많이 했지. 서울대 가서 밤도 많이 세우고."

그러니까 김종분씨는 김귀정 어머니로서의 투쟁만이 아니라 노점상으로서의 투쟁에서도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활동을 못 하지만 한 때 전노련(전국노점상연합회) 회원이기도 했다.

"맨날 뺏기면, 이거 한번 할려면 돈이 얼마야. 맨날 서럽고 그랬어. 박원순 시장님은 우리를 도와주어서 좋았는데, 오세훈 시장 되고 나서 겁나 죽겠어. 언제 또 쫓겨날지 모르니까."

'유명인사'인 김종분씨는 다행히 최근엔 철거를 당하지 않는다. 그 덕에 주변 노점상들도 편하다. 그러나 지금도 곳곳에서 철거를 당하는 노점상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맞아, 맞아" 연발하신다. 노점상을 직업으로 인정하라는 입법 청원을 그렇게 반가워하신다.

"나도 그 얘기를 계속한다고. 노점상도 직업으로 인정해야지. 내가 그만두면, 그냥 물러나는 거잖아. 그렇지 않게 만들어야지. (입법청원 이야기 들으니) 너무 좋다. 찬성이야. 나도 좀 거들어줄게."

노점상도 직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렇게 포기하고 물러날 수는 없다고, 노점상이 철거와 단속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며 흥분하신다.

"애들 가르치고 시집 장가 보내고. 이걸로 다했지.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밥은 먹여 살렸지. 결혼도 시키고, 손주도 보고."

김종분씨에게 노점은 직장이었다. 김종분씨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여 밤 늦게 '퇴근'했다. 김귀정 열사의 말마따나, 김종분씨는 결근 한 번 하지 않은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노점상은 구청에 벌금 내는 '특수 자영업자'

여전히 노점상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이다. 거리를 불법 점유하여 장사한다는 '불법노점' 딱지가 붙는다. 단속과 철거는 당연하고 불가피하다는 통념이 사회를 지배한다.

"이 자리가 공짜는 아니잖아. 벌금을 무니까."

몇 십 년 노점 경력인 김종분씨의 논리는 명쾌하다. 노점상은 구청에 벌금으로 '임대료'를 내는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아니 정확하다.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내야만 자영업자인가. 지방자치단체에 '임대료'를 내는 특수 자영업자가 존재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노점상은 특수 자영업자. 김종분의 결론이다. 
 
▲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 김종분씨가 특별법 제정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민주노련
 
<인터뷰 후기>

1. 김귀정 열사가 했다는 "엄마는 결근을 안 하니까"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이전 인터뷰 기사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거기서도 똑같이 '결근'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김귀정 열사가 한 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듯싶다. 김귀정 열사에게 노점은 엄마가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이었던 셈이다. 

2. 어머니, 어머님으로 표기했다가 김종분씨로 수정했다. 30년 넘게 한 곳에서 노점을 지키고 있는 김종분씨를 통해 노점상의 직업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김종분씨'라는 표현은 내내 걸렸다. 혹 어머님께 혼나지는 않겠지?

3. 김귀정 열사를 기억하는 모든 분께 요청드린다. 노점상을 직업으로! 노점상 생계보장 특별법 입법청원에 동참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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