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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빌리브..어설픈 동정론 전략이 부른 부메랑

한겨레 입력 2022. 01. 15. 19:06 수정 2022. 01. 1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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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 조롱과 풍자 리스크
악수가 된 정치인 부인의 사과에 풍자 섞은 '밈' 잇따라
조롱차단에 언론 전략적 개입도..풍자의 맥락 중요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한 시민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허위 이력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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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사과하고 해명해야 할 대목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짧은 사과문에 ‘남편’이라는 말만 열세차례 언급하며 남편 윤석열을 처음 만났을 때 인상 등을 이야기하자 여론의 반응은 대국민 사과라기보다는 남편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 가까웠다는 조소 섞인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감정에 호소하여 동정론을 유발하려는 전략은 리스크가 매우 크다. 조금이라도 허술함을 보이면 대중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비웃음과 조롱을 받게 된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두려움이나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타격이 훨씬 클 수 있다. 대응이라도 하려고 하면 옹졸한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더해지는 역효과를 야기한다. 가만히 놔두면 조롱의 전파 속도와 수위는 점점 더 올라간다. 정치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음껏 비웃을 수 있는 대상이 생기면 기꺼이 조롱의 대열에 가세한다.

조롱거리 된 ‘동정론 유발’ 전략

조롱과 풍자의 유희를 즐기는 젊은 누리꾼들이 김건희씨의 저 어설픈 사과 발표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반문·반민주당 정서가 지배적이지만 동시에 반윤석열 여론도 강세인 인터넷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의 한 이용자는 김건희씨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1분 안쪽으로 편집하고 가수 신승훈씨의 노래 ‘아이 빌리브’(I believe)를 삽입한 영상을 올렸다. 김건희씨의 사과문 발표가 매우 어설프게 감정에만 호소하다 우스꽝스럽게 실패했음을 풍자한 것으로, 영상을 본 사람들은 ‘어이없다’ ‘대선은 기울었다’며 윤 후보와 김씨를 비판하는가 하면, ‘눈물 나는 짠한 러브스토리’ ‘너무 보기 좋은 부부의 모습이네요’라며 김씨의 호소에 감정이입이라도 한 것처럼 풍자에 풍자를 얹었다. 해당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 100만을 넘겼고, 여러 유튜브 채널과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로 공유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영상을 본 실제 사람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 빌리브’ 영상의 유행을 계기로 윤 후보와 김씨에 대한 조롱의 기류가 더욱 거세지던 가운데 모 언론이 총대를 메고 진화에 나섰다. 해당 언론은 앞서 말한 노래에 대한 누리꾼의 두가지 반응(비난과 비아냥)을 대결(‘vs’) 구도에 넣어서 보도했다. 마치 영상을 두고 누리꾼들끼리 의견이 갈린 것처럼, “일부 누리꾼은 ‘음악과 영상의 싱크로율에 감탄했다’고 댓글을 단 반면, ‘방송 사연 읽냐’며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다”는 식으로 서술한 것이다.

누리꾼들은 “이게 조롱인지도 모르냐, 독해력 참담하다”며 기자를 비웃었다. 하지만 언론사 기자가 그렇게까지 눈치가 없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론 분위기를 전혀 못 읽는 척하면서 획책한 바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해당 영상은 조롱과 풍자를 의도하여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한 누리꾼이 ‘여기에 신승훈 노래를 입히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든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적어도 이수정 국민의힘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눈물 쏟을 대목이 많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감상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옹호 논리의 물질적인 근거처럼 보이게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조롱을 조롱이 아닌 것으로 만들려 했던 전략적 효과는 물론 미미했다. 하지만 전후 사정에 대한 이해 없이 해당 기사만 접한 사람들은 ‘아이 빌리브’ 영상과 그에 대한 반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극소수나마 이런 사람이 있기만 하다면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듯 조롱과 풍자에는 항상 리스크가 따른다. 맥락에서 떼어놓고 보면 조롱으로 이해되지 않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화자의 제스처와 표정 등 언어 외적인 지표를 확인할 수 없는 활자상의 풍자는 오해와 오독의 위험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최근 트위터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콘셉트 계정’(컨셉계)으로 ‘스타트업 김대표’라는 계정이 있다. 해당 계정은 수익 모델은 불분명한데 말만 번지르르하고 임금과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 하면서 열정만 강조하는 젊은 꼰대 대표인 척 글을 올린다. 이 계정을 접한 사람들은 으레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 하는 말이랑 똑같다’며 웃기면서 슬프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개중 사용자의 입장에서 이 컨셉계의 트위트에 진지하게 공감을 표하는 사람이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컨셉계인 것도 모르냐’며 핀잔과 조롱을 달게 받는다. 그러면 이 사람은 ‘나도 컨셉에 맞게 맞장구치는 척한 거다’라며 민망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어설픈 풍자가 불러온 인생 파국

어설픈 풍자는 피차 민망해지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위험도 있다. 2013년, 저스틴 사코라는 이름의 한 미국인 여성은 친척 방문차 남아프리카공화국행 비행기를 탔다. 100여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던 그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트위터에 농담을 한마디 올린 뒤 휴대전화를 끄고 11시간을 비행했다. 그 농담은, “아프리카로 가요. 에이즈가 걱정되지 않냐고요? 괜찮아요, 전 백인이니까요!”였다. 세상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미국 백인들의 무식함을 풍자한 것으로, 그를 조금이라도 알고 지냈던 팔로어와 지인들은 당연히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연히 그것을 접한 황색저널 기자가 그의 트위트를 보도하면서 일이 커져버렸다. 수많은 누리꾼이 해당 트위트를 농담이 아니라 끔찍한 인종차별주의자의 망언으로 해석했고 그를 공격했다. 비행 시간 동안 저스틴은 해명할 수 없었고, 공격 수위는 강간살해 위협으로까지 높아졌으며 그가 다니던 회사에도 불똥이 튀었다. 결국 11시간 만에 휴대전화를 켠 그는 꼼짝없이 공공의 적이자 무직자 신세로 전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스틴을 파멸로 몰아넣은 기사의 제목이 ‘IAC(그가 다녔던 회사) 직원의 재밌는 농담’이었다는 것이다. 거짓은 전혀 없이 팩트만 제시한 기사였지만, 누리꾼들은 액면 그대로 읽어야 할 것은 반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풍자로 읽어야 할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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