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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사랑이 이긴다..행복한 '할아버지 부부'가 될 것"

박고은 입력 2022. 01. 15. 20:06 수정 2022. 01. 1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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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 | 동성 부부 김용민·소성욱씨 인터뷰
'동성혼' 이유로 건보 혜택 뺏겨..법원도 "입법 문제"
"동성혼 아닌 사실혼 인정까지 항소해 싸울 것"
지난 12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만난 소성욱(왼쪽), 김용민씨. 두 사람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인정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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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사실혼 관계의 부부로 등록되어 산 기간. 한쪽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다른 한쪽은 그의 피부양자로 살았다. 일정 조건을 갖춘 사실혼 관계 부부면 누릴 수 있는 권리, 혜택이다. 여덟달이 지난 뒤 그들은 이 당연한 일상을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주어졌던 권리가 손안의 모래처럼 사라졌다. 부부간의 성별이 같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동성 부부인 김용민(31)·소성욱(30)씨는 2021년 2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 배우자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현행법 체계상 이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겨레>는 지난 12일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자택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신혼집을 채울 가구를 사 함께 조립했다. 웨딩 사진, 부케, 부모님 축사…. 2019년 5월, 남들 하는 건 다 한 결혼식을 300명이 넘는 하객들 앞에서 올리고, 평범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평범한 부부의 삶 무너뜨린 ‘제도’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장면인데 결혼식 하길 참 잘했다 싶었죠.”(성욱)

주말이면 여행을 떠나거나 데이트를 하고, 가사 때문에 가끔 다툰다. 매달 적금도 붓고 있다. 다른 부부와 같이 생활 공동체이자 경제 공동체다. 김씨는 “결혼하고 나서 달라진 건 호칭이다. 이제 누군가에게 성욱이를 소개할 때 남편이라고 한다. 지인들도 저를 만나면 ‘남편 잘 지내냐’며 부부의 안부를 같이 묻는다”고 했다. 소씨도 “명절 때면 양가 부모님 찾아뵙고, 몇십년 뒤 노후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이들 부부가 이성 부부와의 차이를 실감할 때가 있다. 사회 제도와 맞닥뜨렸을 때다. 둘은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제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신혼집은 청년 전세자금 대출제도를 활용해 구했다. 이 대출제도는 1인 가구 기준으로 맞춰져 있어 수도권 지역 한도 금액이 1억원이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한도(2억원)의 절반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니 둘은 가족관계증명서에도 이름을 같이 올리지 못한다. 김씨는 지병이 있는 소씨가 늘 걱정이다. 증세가 심할 때 소씨는 집 밖으로 아예 나가지 못하거나 쓰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김씨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 약을 대신 처방받으려면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

부부는 작은 것부터 시도해보기로 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등록이 그중 하나였다. 2020년 2월11일 ‘사실혼 관계면 가능하다’는 건보공단의 답변을 확인하고 김씨는 소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2월26일, 공단 누리집에서 확인해보니 김용민이란 이름 옆에는 ‘본인’, 소성욱 이름 옆에는 ‘배우자’라고 떡하니 쓰여 있었다. 김씨는 “공공기관으로부터 우리 둘의 관계를 인정받은 건 처음이었다. 너무 감격스러워 화면을 캡처하고, 동네방네 자랑했다”고 했다.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둘의 사연이 2020년 10월 <한겨레21> 보도로 알려지자 건보공단은 소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소했다. 공단 쪽은 “동성 배우자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없으며 지난번 등록 조처는 실수였다”고 했다. 부부가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유다.

“취소 통보 전화를 받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줬다 뺏는 게 제일 나쁜 거잖아요.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소송을 결정했어요.”(용민)

재판부는 “혼인이란 우리 법상 여전히 남녀의 결합”이라고 못박았다. 동성혼의 인정 여부는 “원칙적으로 입법의 문제”라고도 밝혔다. 재판 결과를 듣고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했다. 김씨와 소씨는 명료하게 거부당했다. 김씨는 “이것조차 안 된다고 하니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결혼반지 낀 손을 서로 포갠 소성욱, 김용민씨.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부부는 법과 재판부가 디딤돌이 되어주길 바랐지만 도리어 벽이었다. 부부는 재판부가 성소수자 권리 확대의 역할을 “입법의 영역”이라고 미룬 걸 강하게 비판했다. 소씨는 “재판 과정에서 우리가 주장했던 건 동성혼까지 인정해달라는 게 아니었다. 사실혼 관계로라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며 “사법부는 판결을 통해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재판부는 그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부는 판결 전에도 재판 과정에서 수차례 깊은 좌절을 느끼곤 했다. 재판부에 결혼식 사진, 하객 방명록, 같이 돈을 모으고 있는 통장 사본, 지인 인터뷰 등 둘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죄다 제출했다. 그랬는데도 건보공단 쪽 변호인단은 캐물었다. “(피부양자 등록) 안 될 거 알면서 소송한 거 아니냐” “왜 괜히 건보공단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거냐” 등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질문도 견뎌야 했다.

“그들은 계속 우리의 관계를 부정하기 위한 시도를 했어요.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는 그 시도 자체가 우리에게 좌절감을 줬죠. 한국에 사는 그 어떤 부부도 자신들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성욱)

물론 법정 다툼이 고단한 과정일 걸 알았다. 부부는 같은 문장을 말했다. “같이 행복하게 늙어가고 싶어서.” 고통과 모욕을 감내하기로 한 하나의 이유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선고 결과 발언 중인 두 사람.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동성커플들의 ‘슬픈 유언장’

소씨는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차별했어’라고 따져 묻는다. 하지만 당연히 누리는 그들의 권리가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고 했다.

유언장, 사전의료지시서, 임의후견인제도. 당연한 권리가 없기에 동성 커플이라면 미리 마련하는 슬픈 ‘3종 세트’다.

소씨는 “우리는 평생을 같이 살아도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 절차에 개입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유산 상속도 안 되고, 임차인 승계권도 없다. 모든 권한은 (법적) 원가족에 돌아간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성소수자 커플은 유언장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이들 부부도 유언장에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장례식에서 내가 사랑한 이 사람이 소외되지 않도록, 이 사람의 뜻이 최대한 존중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부부는 항소를 하기로 했다. 같은 결과라 해도 부부는 끝까지 싸우기로 했다. “우리는 평생 같이 살 거예요. 지금처럼 수많은 벽에 부딪히겠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불안에 떨면서 살 수만은 없잖아요. 젊을 때 열심히 싸워야 성욱이랑 더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용민) “결국에는 사랑이 이길 거라고 확신해요. 결국 이길 거니까 끝까지 싸울 거예요. 할아버지 부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이 사회에 보여주는 게 최종 목표예요.”(성욱)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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