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왜?
이번 블록딜을 통해 칼라일그룹은 정 회장과 노르웨이 해운그룹 빌 빌헴슨 아사의 자회사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에이에스'(11%)에 이어 현대글로비스 3대 주주로 올라섰다. 또한 칼라일그룹은 주주 간 계약에 따라 현대글로비스 이사 1인을 지명할 수 있게 됐다.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추가로 매각할 경우 동반매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태그얼롱·Tag-along)도 확보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태그얼롱 권리를 그룹 총수가 외국계 펀드에 부여한 것은 현대차그룹으로선 전례 없는 일"이라며 "정 회장과 칼라일그룹 간 신뢰가 돈독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칼라일그룹이 정 회장 우군(友軍)을 자처하는 이상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감소에 따른 지배력 축소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2019년 정 회장은 칼라일그룹이 서울에서 개최한 투자자콘퍼런스에 참석해 이규성 칼라일그룹 최고경영자(CEO)와 30분간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지금까지 우호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CEO는 운용자산 규모가 300조 원에 이르는 칼라일그룹의 한국계 CEO로, 2020년 단독 CEO로 임명된 이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공정거래법 규제 벗어나
앞서 2015년에도 정 회장 부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앞두고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한 바 있다. 당시에는 상장사 기준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일 경우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각각 322만2170주, 180만 주를 주당 23만500원에 매각했고, 두 사람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43.39%에서 29.99%로 줄어들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이 현대글로비스 주가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한다. 지분 매각 다음 날인 1월 6일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급등했다. 전날 대비 6.36% 오른 18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된 잠재적 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된 데다, 그동안 소액주주들이 우려했던 대주주 지분 매각 관련 오버행(잠재적인 과잉 물량 주식) 이슈가 완전히 해소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사모펀드가 지분을 인수했다는 것 자체가 현대글로비스의 장기 비전이 긍정적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시장에서는 이번 지분 매각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규제 부담을 해소하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 및 경영 승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이 그 준비 과정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정 회장은 공정위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 공식 총수로 올라섰지만 그룹을 장악하지 못했다. 순환출자가 발목을 잡으면서 지분 승계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질적 지주사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 필요
이 고리를 끊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2018년 3월 지주사 체제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를 핵심 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으로 분리한 뒤, 모듈·AS부품 사업을 정 회장 지분이 많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반대로 무산됐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당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 주식 총 1조 원가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9년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자신들이 뽑은 사외이사 후보 3명의 신규 선임을 제안하며 경영권까지 위협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정기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이겨 경영권을 방어했다. 2020년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그룹 3개 계열사 지분을 모두 팔고 철수했다.
현재 정 회장이 보유한 그룹 핵심 3사 지분율은 낮은 편이다. 따라서 이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자금으로 주요 계열사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회장은 현대차 2.62%, 기아 1.74%, 현대모비스 0.32%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기아 17.28%, 정 명예회장 7.15%로, 정 명예회장 지분을 모두 물려받아도 정 회장 지분은 7.47%에 불과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나스닥 상장 주목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안정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선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요하며, 이때 가장 필요한 건 승계 자금"이라면서 "그간 정 회장은 자산을 늘리고자 여러 일을 도모해왔고 보스턴다이내믹스 투자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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