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벌써 11주기, 박완서에게 승은 입은 꽃들

김민철 논설위원 2022. 1. 1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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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회>

오는 22일은 박완서 작가 11주기입니다. 작가는 2011년 1월 22일 담낭암으로 투병 중 향년 80세로 별세했습니다. 박완서 소설에는 꽃이 많이 나올뿐 아니라 꽃에 대한 묘사, 특히 꽃을 주인공 성격이나 감정에 이입하는 방식이 탁월합니다. 11주기를 맞아 작가의 소설에서 꽃이 인상적으로 나오는 장면들을 골랐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꽃은 역시 ‘아주 오래된 농담’에 나오는 능소화 같습니다. 능소화는 이 소설 여주인공 현금처럼 ‘팜므파탈’ 이미지를 갖는 꽃입니다. 현금은 이층집에 살았는데, 여름이면 이층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능소화가 극성맞게 기어올라가 난간을 온통 노을 빛깔로 뒤덮었습니다.

<그 무렵 그(영빈)는 곧잘 능소화를 타고 이층집 베란다로 기어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 속의 창문은 검고 깊은 심연이었다. 꿈 속에서도 그는 심연에 다다르지 못했다. 흐드러진 능소화가 무수한 분홍빛 혀가 되어 그의 몸 도처에 사정없이 끈끈한 도장을 찍으면 그는 그만 전신이 뿌리채 흔들리는 야릇한 쾌감으로 줄기를 놓치고 밑으로 추락하면서 깨어났다.>

능소화.

현금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능소화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았어. 발 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 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

능소화를 ‘분홍빛 혀’, ‘장작더미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비유하는 등 화려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능소화에 주제까지 담았습니다. 고(故) 서울대 김윤식 교수는 이 소설 평을 쓰면서 “능소화를 인간으로 바꾸어 이름을 현금이라 한 것은 소설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능소화는 현금이고 돈이고 자본주의에 더도 덜도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친절한 복희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소설만큼 박태기나무꽃의 특징을 잘 잡아내 묘사한 소설을 찾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주인공 할머니는 결혼 전 가게에서 식모처럼 일할 때, 가게 군식구 중 한 명인 대학생이 자신의 거친 손등을 보고 글리세린을 발라줄 때 느낀 떨림의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내 몸이 한 그루의 박태기나무가 된 것 같았다. 봄날 느닷없이 딱딱한 가장귀에서 꽃자루도 없이 직접 진홍색 요요한 꽃을 뿜어내는 박태기나무. 내 얼굴은 이미 박태기꽃 빛깔이 되어 있을 거였다. 나는 내 몸에 그런 황홀한 감각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박태기나무꽃.

버스 차장을 목표로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가 처음 이성에 대해 느낀 떨림을 박태기꽃에 비유해 그린 것입니다. 작가의 이 표현으로, 박태기나무꽃은 화단에 흔하디 흔한 꽃에서 ‘황홀한 감각’을 숨긴 꽃으로 변신했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2002년 한 독자모임과 만남에서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분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많은 꽃 중에서 왜 분꽃을 가장 좋아하는지 궁금하지만 이제 작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작가는 산문집 ‘두부’에서 구리 노란집으로 이사한 해 늦은봄, 심지도 않았는데 분꽃이 여봐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반가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 잊고 지냈지만 분꽃은 나하고 가장 친하던 내 유년의 꽃”이라고 했습니다.

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 이 분꽃이 나옵니다. 이 소설은 이혼녀 문경이 상처(喪妻)한 대학 동창 혁주를 만나 사랑하다가 헤어져 싱글맘으로 겪는 이야기입니다. 문경이 아이를 낳고 나름 안정을 찾아갈 즈음, 혁주 가족이 아이에 눈독을 들이며 찾아옵니다. 이 대목에 분꽃이 나옵니다.

<큰엄마가 이렇게 푸념하면서 서로 뒤엉킨 모자를 노려보았다. 어떻게든 빼앗아 가지고 싶은 호시탐탐한 눈빛이었다. (중략) 그 여자가 어렸을 적 저녁 나절이면 한꺼번에 피어나는 분꽃이 신기해서 어떻게 오므렸던 게 벌어지나 그 신비를 잡으려고 꽃봉오리 하나를 지목해서 지키고 있으면 딴 꽃은 다 피는데 지키고 있는 꽃만 안 필 적이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었다.

“그건 꽃을 예뻐하는 게 아니란다. 눈독이지. 꽃은 눈독 손독을 싫어하니까 네가 꽃을 정말 예뻐하려거든 잠시 눈을 떼고 딴 데를 보렴.”

어머니 말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그동안에 꽃이 활짝 벌어졌던 기억이 왜 그렇게 생생한지….>

분꽃.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과 남편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안 혁주의 아내가 아이에게 눈독을 들이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나오는 싱아입니다. 작가는 여덟살때 교육열에 불타는 엄마 손에 이끌려 상경합니다. 고향에서 마음껏 뛰놀던 소녀가 갑자기 서울 현저동 산동네에 틀어박혀 살아야하니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덟살 소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하는 것이 싱아입니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끊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충남 예산의 한 산에 싱아 꽃이 피어 있다.

작가는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책 중에 싱아란 소리는 네 번 밖에 안 나오는데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싱아가 중요한 건 아니다. 싱아는 내가 시골의 산야에서 스스로 먹을 수 있었던 풍부한 먹거리 중의 하나였을 뿐 산딸기나 칡뿌리, 새금풀(괭이밥)로 바꿔 놓아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 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내 어린 날의 가장 큰 사건이었던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에서 거스르고 투쟁하는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받은 문화적인 충격이랄까 이질감에 대해서다. 나는 아직도 그런 이질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움을 위하여’에 나오는 복사꽃입니다. 2001년 발표한 그리 길지 않은 단편입니다. 비교적 부유한 ‘나’는 어렸을 때 한 집에서 자란 사촌동생을 ‘파출부처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촌동생이 여름 피서를 갔다가 몇 주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더니 뒤늦게 점잖은 선주(船主)와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며 화자가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명랑하게 조잘대는 시냇물 위로 점점이 떠내려오는 복사꽃잎을 떠올렸다. 다음날 물메기 말린 걸 한보따리 들고 내 앞에 나타난 동생을 보자 그저 반갑기만 해서 허둥대며 맞아들였다. 석 달 만에 만난 동생은 어찌나 생기가 넘치는지, 첫 근친 온 딸자식이라 해도 그만하면 시집 잘 갔구나 마음을 놓고 말 것 같았다.>

복사꽃.

‘조잘대는 시냇물 위로 점점이 떠내려오는 복사꽃잎’이라 했습니다. 복사꽃잎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화사한 복사꽃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얼마나 보석같은지 알 것입니다. 이 단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현란한 문장, 사태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 그리고 꽃을 양념처럼 살짝 얹는 솜씨 등 박완서 글쓰기의 특징을 골고루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능소화, 박태기나무, 싱아는 물론 흔하디 흔한 분꽃·복사꽃까지도 박완서 손길이 스치자, 승은을 입은 궁녀처럼 더 이상 그냥 꽃이 아닙니다. 박완서가 소설에 끌어들여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문학적인 상징까지 불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천의무봉의 작가, 탁월한 이야기꾼, 한국 문학의 축복, 영원한 현역 작가 등 박완서를 수식하는 말은 많습니다. 다 작가의 수식어로 손색이 없지만, 필자는 꽃을 사랑하고 꽃에 대한 묘사도 탁월했던 작가에게 ‘꽃의 작가’라는 수식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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