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바로잡으라 항의한 게 죄입니까?

2022. 1. 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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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비정규직 17명에 대한 검찰의 징역 21년 구형,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조현철 신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알린 것입니다.

검찰이 지난해 11월 30일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한 것을 비롯하여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총 21년의 징역형을 구형했습니다. 형량만 보면 대단한 범죄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고, 검찰이 21년을 구형하며 적시한 행위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서 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대기업 '불법 파견’ 문제라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형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나라 사법과 행정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의 영역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2004년과 2005년, 노동부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했습니다. 이후 법원이 15년에 걸쳐 32번의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치국가라면 정부의 판정과 법원의 판결에 따른 조치가 이어지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노동부는 회사에 '직접 고용’을 하라는 시정 명령을 하지 않았고 검찰에 기소 의견도 내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김수억 당시 지회장은 47일간의 단식으로 항의했습니다. 기업은 그렇다 치고 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등을 돌린 것입니다. 한국지엠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 이후 노동부는 불법파견 시정 명령을 두 번 내렸고 대법원도 두 번이나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기서 멈췄습니다. 16년이 흐른 오늘도 한국지엠 불법파견은 여전합니다.

▲ 2019년 9월 7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하며 법원 판결에 따른 고용노동부의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촉구하고 있는 노동자들. ⓒ프레시안(최형락)

노동자들은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라고 항의했을 뿐입니다. 노동부와 검찰이 할 일을 했다면 기소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검찰이 범죄라고 기소한 행동을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결과인 노동자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따지려면 그에 앞서 원인을 제공한 노동부와 검찰과 기업의 책임을 먼저 따져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정부 부처인 노동부와 검찰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절박한 처지의 노동자들이 법적 판결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합니다.

이번에 기소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들만의 문제를 넘어서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2018년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고, 이런 죽음을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여전히 한 해 평균 800명 넘는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고, 사망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입니다. 지난해 4월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한 청년은 아르바이트 일용직이었고, 11월 여주에서 홀로 전기 작업하다가 사망한 노동자, 12월 31일 인천 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 추락 사망한 노동자 모두 하청 업체 소속입니다. 신년 초 광주에서 외벽이 어이없게 무너진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실종된 6명도 모두 하청 노동자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비참한 현실이 일상이 된 상황을 바로잡으라는 이들의 요구는 정당합니다.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집회를 연 것도 정당합니다. 정부와 국회가 손을 놓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 나가는 참혹한 현실이 이들을 행동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사실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을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 것입니다.

검찰이 자신의 기소와 구형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모든 정황을 빼버릴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맥락을 뺀 채로 이들의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는 제쳐놓고, 과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은 이 물음에 이미 등을 돌렸고, 그렇게 자기가 누구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선고 공판을 앞둔 지금 재판부에 동정이 아니라 이 물음을 진지하게 고려해줄 것을 바랍니다. 이들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포함한 불이익을 각오하고 외쳤던 불법과 불의는 고발되었고 단죄되었는지 고려해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결, 나아가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결론이 나길 바랍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어떤 중대한 문제가 있는지 알렸습니다. 검찰이 형식적으로 법조문을 적용하여 이들의 몸을 가둘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노동을 존중하라는 목소리는 가둘 수 없습니다. 아니,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이윤만 생각하며 불법파견이 계속되고 일하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는 일이 계속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요구에 조금 더 귀 기울일 때, 그만큼 노동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가 가까이 올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이들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알린 것입니다.

[조현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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