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거점 공공병원의 꿈, 팬데믹에 발묶여 '머나먼 길'

김기성 2022. 1.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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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 의료공백 해소 위해
시민운동 17년만에 문 열었지만
개원 직후 '코로나 전담' 지정돼
인력난에 양질 의료서비스 차질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성남시의료원으로 코로나19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전국 최초 주민발의 조례로 탄생해 운영 3년째를 맞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이 그 역할과 위상, 운영방식에 있어서 혼란을 겪고 있다. 시민이 주도해 탄생시킨 ‘공공의료 거점’으로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지만, 예기치 않았던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면서 감염병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계획했던 지역거점 공공의료기관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대책 마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17년 만에 탄생한 지역 공공의료 거점

성남시의료원은 오랜 시민운동의 산물이다. 출발은 2003년 6월 경기도 성남시 옛 시가지(수정·중원구)에 있던 성남병원과 인하병원의 폐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영난 끝에 두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 34만여명인 신시가지(분당구)에는 대형 종합병원 3곳이 있었지만, 인구가 두배 가까이 많은 옛 시가지에는 종합병원이 하나도 없게 됐다.

상대적으로 서민층이 많은 옛 시가지 지역 주민들이 의료공백 상태에 놓이게 되자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뭉쳤다. 이들이 꾸린 ‘성남시립병원설립 범시민추진위원회’는 2만명 가까운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시립병원을 지어달라는 조례를 주민발의했다. 하지만 2004년 3월 성남시의회는 ‘타당성이 없다’며 이를 부결시켰다. 반발한 시민들은 시의회 점거와 시위·집회 등을 이어갔다.(당시 주민발의 조례안 부결은 추진위 공동대표였던 이재명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정치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러 노력 끝에 2년 뒤인 2006년 3월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관련 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했고, 성남시는 이듬해 11월 의료원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 11월 수정구 태평동 옛 성남시청사 터 2만4711㎡에 지하 4층, 지상 10층, 연면적 8만5684㎡ 규모(사업비 1691억여원)의 성남시의료원 건립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시공사의 법정관리 등으로 공사가 지연됐고, 2019년 12월에야 시범진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듬해 3월 정식 개원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지다가 2020년 7월28일 성남시의료원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시민운동 시작 17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었다.

정식 개원 1년 반이 지난 현재, 성남시의료원에는 80명가량의 의사와 400명가량의 간호사 등이 일하며 24개 진료과 447병상을 가동 중이다. 하지만 병원 운영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아 보인다. 개원 이후 2021년 12월31일 현재까지 환자로 등록해 진료와 치료를 한 인원은 7만833명이다. 하루평균 외래환자 수는 701명 정도다. 비슷한 규모 인근 민간종합병원의 최근 하루 외래환자 수가 1500여명인 점과 사뭇 비교된다.

성남시의료원 전경.

“일반진료 차질 우려… 모든 의사 코로나19 동원”

성남시의료원도 할 말은 있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성남시의료원은 2020년 12월28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그에 따라 코로나19 환자 병상을 의무적으로 배정하고 환자도 받아야 했다. 전체 병상 가운데 20%인 90병상이 코로나19 병상으로 차출됐다. 규모가 비슷한 민간 종합병원 10~30병상보다 3~9배가량 많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일반 시민들의 발길은 더욱 줄었다.

송아무개(48·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씨는 “바로 집 근처에 시의료원이 있지만, 코로나 환자가 많이 다니는 병원이어서 감염 우려 때문에 연세가 많으신 아버지의 정형외과 진료를 위해 분당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통원하고 있다”며 “다른 주민들도 아마 비슷한 공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소외 계층을 위한 응급센터를 운영하며 저렴한 진료비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을 향한 꿈이,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또 다른 임무인 감염병 대응 때문에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공공의료가 공공의료와 충돌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은 안과 밖이 사뭇 다르다. 외부에서는 ‘공공병원인 만큼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은 당연한 것 아니냐’, ‘병상 비율(20%)만큼 코로나19 대응에 쓰고 나머지는 일반진료를 강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겠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는 얘기다.

지난 6일까지 성남시의료원을 거쳐 간 코로나19 환자는 4443명이다. 또 같은 날 입원 중인 코로나19 환자는 74명이었다. 병원 규모에 비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이들 치료에 전체 병원이 매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채윤태 성남시의료원 감염내과 전문의는 “모든 의사가 코로나 당직은 물론 재택치료 환자 진료·상담, 생활치료센터, 선별진료소, 백신센터 예진까지도 하다 보니 일반진료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1년 반 동안 코로나19 응급실 파트장으로 일했다는 나진선 간호사도 “코로나 환자를 집중적으로 받다 보니 간호인력은 부족한데 수급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이직이나 퇴직이 많다”며 “의료진에게 지역 공공의료서비스라는 말은 크게 와닿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체 간호사의 절반 가까이가 코로나19 대응 쪽에 배치돼 있다고 한다.

대책 마련 쉽지 않아…“지속성 담보 노력을”

결국 설립 취지와는 동떨어져 운영이 이뤄지면서 보통의 시민들 사이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딱히 대안을 얘기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례 없는 감염증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초대 성남시의료원장을 지낸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대한의학회가 지난해 12월 발행한 ‘이(E)-뉴스레터’ 기고에서 “지역 공공병원의 작은 규모와 부족한 시설, 그리고 인력은 아무리 애를 써도 중증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에 역부족이었다”며 “이제는 의료기관 간 연계·협력, 시설 투자, 수련·임상교육 환경 개선 등을 통해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공익적 기능과 역량을 강화하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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