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마법사가 되어야 하는 김기동

황민국 기자 2022. 1. 1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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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포항 김기동 감독이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 축구공원에서 진행된 훈련에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에서 흔한 애칭은 선수나 지도자의 정체성을 알리는 하나의 도구다.

예컨대 포항 스틸러스 김기동 감독(51)은 현역시절 ‘철인’으로 불렸다. 그가 마흔 살을 넘긴 나이에 K리그 첫 필드 플레이어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니 이보다 어울리는 표현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친정팀에서 지도자로 변신한 철인이 이제 마법사로 불린다는 것은 흥미로운 변화다. 모기업 포스코의 지원금으로는 빠듯하게 운영되고 있는 포항에서 매년 기적 같은 결과를 이끌어낸 덕이다. 김 감독은 부임한 첫해인 2019년 4위로 시즌을 마치더니 이듬해에는 3위 그리고 지난해에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냈다.

포항 전지훈련지인 제주 서귀포시에서 최근 기자와 만난 김 감독은 “내가 마법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평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오면서 날 마법사로 불러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새 별명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1973년 창단해 K리그 최고의 명가로 불리는 포항은 단촐한 살림살이에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20년 K리그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던 ‘1588’(일류첸코·오닐·팔로세비치·팔라시오스)이 지난해 해체돼 잇몸 격인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에 의지했던 터. 새해에는 수비의 주춧돌 노릇을 했던 권완규가 자유계약선수(FA)로 떠나고, 유일한 국가대표 강상우조차 전북 현대 이적이 유력하다. 차·포를 다 뗀 상황에서 제 아무리 명장인 김 감독이라도 호성적을 장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은 “포항 사령탑을 맡고 있는 이상 주축 선수들의 이적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구단의 사정과 살림살이도 봐야 한다. 내 욕심만 차릴 수가 없더라. 남은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의 각오는 새빨갛게 충혈된 눈가에서도 잘 읽혔다. 하루에 두 차례 훈련을 소화하는 일정 사이 사이에 그는 외국인 선수 타쉬와 크베시치가 이탈한 빈 자리를 메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을 한 차례 훑었던 스카우트가 떠나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더욱 곤혹스럽다. 김 감독은 “원래 데려오려던 선수들은 조건이 맞지 않았다. 새롭게 영입 리스트에 올린 선수 5명의 영상을 오늘 밤에 전부 확인해야 한다. 더 늦지 않게 데려와야 올해 시즌을 정상적으로 치른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 감독을 든든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지지하는 유능한 코칭스태프들과의 분업이다. 브라질 출신의 주닝요 피지컬 코치가 선수들의 몸 상태를 책임진다면, 이규용 코치와 이창주 분석관은 드론 등 첨단 기술로 훈련 효율을 높여주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회춘에 성공한 베테랑 임상협과 신진호, 경험 속에 성장한 이승모 등이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펼친다면 올해도 마법을 기대해도 좋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감독은 “솔직히 팬들의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새해는 팬들이 바라는 1등을 해보고 싶다. 정규리그는 힘들 수 있겠지만, 단판 승부인 대한축구협회(FA)컵에선 우승해 내년 ACL에서 팬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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