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색한 책임 경영'..총수 일가 이사 등재 5년째 뒷걸음

2022. 1. 18.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등기 임원 재직은 176건 달해
법적 책임 없이 책임 경영 회피 우려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

[스페셜 리포트] 2022 지배구조 랭킹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 총수나 그 일가의 이사 등재 비율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고 이사로 등재하지 않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총수 일가가 상당수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여전히 권한과 이익은 누리면서도 책임은 회피하는 것으로 나타나 책임 경영 측면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중흥건설, 문어발 겸직왕 등극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2021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 일가가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한 경우는 총 176건이었다. 공정위가 총수 일가의 미등기 임원 재직 현황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등기 임원은 등기 임원과 달리 법인 등기부등본에 등록되지 않고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임원을 말한다. 명예회장·회장·부회장·사장·부사장·대표·부대표·전무·상무·이사 등 기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해 업무를 집행하는 사람이다.

특히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15.5%)와 사각지대 회사(8.9%)에 재직하는 비율이 비규제 대상 회사 재직 비율보다 높았다. 총수 본인은 1인당 평균 2.6개 회사의 미등기 임원을 맡고 있었다.

중흥건설(11개), 유진(6개), CJ(5개), 하이트진로(5개) 등 4개 집단은 총수 1명이 5개 이상의 계열사에 재직했다. 총수 2·3세는 1인당 평균 1.7개의 회사에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했다. 중흥건설은 총수 1명과 총수 2세 1명이 각 11개 계열사의 미등기 임원으로 겸직하고 있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책임 없는 미등기 임원 선호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상장사 등기 임원의 보수 공시가 의무화됐고 2018년 사업 보고서부터는 미등기 임원을 포함한 보수 총액 5억원 이상의 상위 5명에 대한 보수도 공시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업집단의 사업 보고서를 기준으로 미등기 임원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총수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주)CJ·CJ ENM·CJ제일제당·CJ대한통운·CJ CGV 등 5곳에서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이 회장은 (주)CJ(67억1700만원), CJ ENM(28억6200만원), CJ제일제당(28억원) 등 계열사의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석하지 않고 총 123억7900만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았다.

2위는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5개 회사에서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며 53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았다.

총수가 있는 54개 기업집단의 2100개 계열 회사 중 총수 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5.2%(319개사)였다.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최근 5년간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 현황을 살펴보면 2017년 17.3%에서 2018년 21.8%로 일시적으로 증가했다가 다시 2019년 17.8%, 2020년 16.4% 등 감소 추세다. 특히 삼성·신세계·CJ·미래에셋·네이버·코오롱‧이랜드‧태광·삼천리·동국제강은 총수 본인의 이사 등재 계열사가 한 곳도 없었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가 등기 임원으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미등기 임원으로 다수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책임 경영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며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 재직해 권한과 이익을 누리면서도 그에 수반되는 책임은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사외이사=거수기’ 99.6% 원안 가결

대기업 이사회는 여전히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전체 이사회 안건 6898건 중 99.62%(6872건)가 원안대로 가결됐다.

전체 안건 대비 비율로 보면 총수 없는 기업집단(1.34%)이 총수 있는 기업집단(0.30%)보다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의 비율이 1.04%포인트 높았다. 삼성전자·현대차·한화·신세계·두산·현대백화점·영풍 등 오너 기업의 이사회 원안 가결률은 대부분 100%였다.

274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비율이 51.0%, 이사회 참석률이 97.9%에 달하며 법적 기준을 훌쩍 넘었지만 이사회 최종 의사 결정 때는 정작 실질적인 구실을 하지 못하고 경영진(지배 주주)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회 및 위원회 안건 총 6898건 중 특수 관계인을 상대방으로 하는 대규모 내부 거래(상품·용역 거래 한정) 관련 안건 341건은 모두 원안대로 가결됐다.

대규모 내부 거래 대부분이 수의 계약으로 이뤄졌고 해당 내부 거래 중 340건이 수의 계약으로 이뤄졌음에도 이사회 안건에 수의 계약 사유조차 기재하지 않은 경우가 72.4%에 달했다. 시장 가격 검토, 대안 비교 및 법적 쟁점 등 거래 관련 검토 사항이 별도로 기재되지 않은 안건도 72.7%나 됐다. 대규모 내부 거래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사회 안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0.38%(26건)에 불과했다.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 26건 중 부결된 안건은 △SK(주)의 이사회 및 위원회 규정 개정 △롯데케미칼의 대산공장 사회공헌 사업 협약서 체결(안) 승인의 건 △미래에셋증권의 고난도 금융 투자 상품 제조 및 판매에 관한 표준 영업 행위 시행세칙 제정(안) △교보증권의 지배구조 내부 규범 개정의 건 △ 영진약품의 경영 임원급 이상 단위 부서의 조직 변경 △대우건설의 이사회 규정 개정의 건 등 6건이다.

이사회 내 5개 위원회(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ESG위원회)에 상정된 안건(2411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모두 14건이었다.

이 중 삼성 내부위원회(삼성증권의 삼성SDS와의 IT 아웃소싱 거래 승인의 건), 롯데 내부위원회(롯데케미칼의 데크항공과의 금전 소비대차 계약 변경(안) 승인의 건), 하이트진로 감사위원회(회사의 이사에 대한 소 제기 여부 결정의 건) 안건 등 3건이 부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