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산재 인정 받았지만 서울대의 반응은..

주하은 기자 2022. 1. 18.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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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은 공방 끝에 산재로 판정되었다. 업무시간만으로 산정되지 않는 '청소 노동 자체'가 주요했다. 산재 판정 이후에도 서울대는 공식적인 사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7일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건의 본질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2일, 서울대 청소노동자였던 이 아무개씨(60)의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그가 담당했던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 925동 휴게실에서 그해 6월26일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지 약 6개월 만이었다. 이씨의 죽음은 지난해 7월7일 고인의 남편인 이홍구씨(60)가 기자회견을 열며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중간관리자였던 배 아무개씨가 청소노동자들에게 ‘건물 이름을 영어로 쓰시오’ 등 업무와 상관없는 시험을 보게 해 모욕감을 줬다는 사실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등 정치권도 서울대를 비판하며 파장은 점차 커졌다.

이씨는 원래 남편 이홍구씨와 함께 14년간 종교 단체의 봉사단원으로 해외를 누비던 사람이었다. 그가 한국에 귀국한 것은 2017년. 함께 활동하던 한국인 봉사단원의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단체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이씨 부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일자리였다. 10년 넘게 경력이 단절된 중년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마땅치 않았다. 이씨는 과거 〈한국경제신문〉에서 조사부 기자로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년간 일한 경력이 있었지만, 다시 그런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었다.

2018년 1월, 이씨는 구립도서관의 기간제 사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로부터 1년9개월 뒤, 이씨는 서울대 청소노동자로 이직을 결정했다. 이직을 권유한 것은 남편 이홍구씨였다. 서울대의 청소노동자는 고령 친화 직종으로 분류돼,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셋째 아이를 생각했을 때, 이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다고 느껴졌다. 도서관에서의 마지막 근무일, 이씨는 일기에 “노후, 정년 이후에도 할 일을 찾으려면 지금 움직이는 게 맞는 것 같아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라고 적었다.

청소 노동을 시작한 지 1년 반가량이 된 지난해 6월, 이씨가 업무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일이 잦아졌다. 마찬가지로 서울대에서 시설관리직으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길에서였다. 이씨는 군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던 둘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땀 흘려 노동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어”(6월10일)라며 아들을 안심시키다가도, “예전보다 많이 피곤한 것 같구나”(6월23일에 보낸 편지)라며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로부터 사흘 뒤, 이 아무개씨는 과로로 사망했다.

지난해 9월30일, 이홍구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하며 본격적인 산재 인정 절차가 시작됐다.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이었지만, 산재 인정 여부는 불투명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 기준으로 삼는 고용노동부 고시(2017-117호)에 비춰봤을 때, 이씨의 노동조건이 산재에 정확히 부합하진 않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만성적인 과로’ 여부는 근로시간이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해야 업무와 질병 간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씨의 평균 근로시간은 44시간55분이었다.

산재 여부를 둘러싸고 공방이 지속되던 중, 실마리를 던져준 것은 동료 청소노동자였다. 동료 노동자들을 면담하던 유족 대리인 권동희 노무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에게 한 노동자가 “언론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전부 헛소리”라고 말했다. 제일 힘든 업무는 샤워실 곰팡이를 청소하는 건데, 언론들은 직장 내 갑질이나 쓰레기봉투 개수에 집착한다는 얘기였다. 3차례에 걸친 현장 답사까지 마친 이후, 권 노무사는 동료 노동자의 말이 옳다는 것을 확신했다. “여러 업무가 있었겠지만, 결국 제일 힘들었던 업무는 청소 업무 그 자체였다. 6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생긴 샤워실 곰팡이를 천장까지 일일이 제거하는 업무가 만성적인 과로를 유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재 신청으로부터 약 3개월 뒤, 근로복지공단 산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고인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판정했다. 과로한 업무에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스트레스가 가중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얽매이지 않은 이례적인 판정이 내려진 주요인은 동료 노동자의 말처럼 ‘청소 노동 자체’였다. 질판위는 “환기가 잘 안 되어 곰팡이가 잘 생기는 샤워실의 곰팡이를 씻어야 하는 등 강한 육체적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 업무시간만으로 산정되지 않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을 지속했다고 판정된다”라고 명시했다.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직접 행동하겠다”

지난해 사망한 청소노동자 이 아무개씨의 남편 이홍구씨는 서울대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한다. ⓒ시사IN 이명익

산재 판정 이후에도, 서울대는 공식적인 사과를 내놓지 않았다. 공식적인 사과 표명 계획이 있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서울대 관계자는 1월4일 “현재로선 그럴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유족의 사정이 딱하더라도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 수는 없다”라던 서울대 구민교 교수(행정대학원)는 사과할 계획이 있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조사 결과에 따라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을 한 쪽은 반드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글이 여전히 구민교 교수의 페이스북에 남아 있다.

산재 판정 이틀 뒤,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남편 이홍구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씨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오 총장이 이씨에게 “우리가 협조를 해서 산재 처리가 된 것 같다”라는, 사실과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산재 조사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이씨의 사망이 산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직장 내 갑질 부분에 대해 서울대는 중간관리자 배 아무개씨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심지어 서울대 인권센터가 ‘인권침해’로 결론을 내린 ‘필기시험’ ‘드레스 코드’ 두 항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관악고용노동지청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서 서울대는 ‘업무와 무관한 필기 시험’에 대해 “필기 시험은 교육훈련의 일환”이었으며 ‘영어로 건물 이름 쓰기’ 문제는 “외국인의 질문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소양교육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두 주장 모두 배씨가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에서 한 진술과 일치한다.

이홍구씨는 서울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다. 산재 판정은 이 아무개씨의 죽음이 ‘업무상 요인에 따른 사망’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일 뿐이다. ‘서울대의 관리부실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민사소송이 필요하다고 이홍구씨는 말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없다. 학교 관리자들이 이번 일을 교훈 삼지 않겠다면,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직접 행동하겠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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