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탄압' 아프간서 나타나는 남장 소녀들

김동현 기자 2022. 1. 1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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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사는 사남은 여자로 태어나 남자처럼 살고 있는 ‘바차포쉬’(Bacha Posh·남장 소녀)다. 아직 8살이 되지 않은 그는 어두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전통 남성복을 입고, 남자와 같은 이름을 쓴다. 또래 남자 아이들과 자유롭게 스포츠를 즐기고, 어린 나이에도 가족을 위해 경제 활동에 나선다.

아프간에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자 아이들이 남자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바차포쉬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는 오래가지 못한다. 사춘기가 지나 2차 성징이 오기 전 다시 여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년 8월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아프간에서의 여성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 탈레반은 과거 1차 집권기(1996~2001년)와 달리 “여성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지만, 교육과 경제 등 일상생활에서 여성들의 자유가 빼앗기고 있다.

작년 11월 여성의 드라마 출연을 금지하는 미디어 지침이 발표됐고, 한 달 뒤 12월 친척 남성 동행 없이 여성의 72㎞ 이상 장거리 여행을 제한하는 조치가 나왔다. 경제난과 함께 심각해진 식량난 탓에 생후 20일 된 여자 갓난아기를 돈을 받고 팔아버리는 사례도 나왔다. 거리 시위 등 반발에 나선 여성들은 무장 세력에 의해 제압당했다.

16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 시위대가 여성 인권을 촉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아프간 집권 세력 탈레반은 이날 '여성의 인권', '자유, 교육·취업 권리'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여성들에게 최루액을 뿌렸다.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액을 맞은 일부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AFP 연합뉴스

아프간 전문 미 보스턴대학 인류학과의 토마스 바필드 교수는 16일(현지 시각) VOA(미국의소리)와 인터뷰에서 “바차포쉬는 생활 영역이 가족 내부에 국한되고, 또 영구적인 지위가 아닌 만큼 탈레반의 여성 탄압이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바차포쉬 문화가 언제 어디서,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다. 바필드 교수는 “바차포쉬는 겉으론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정치·사회적인 큰 문제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차포쉬는 주로 아들이 없는 가정에서 나타난다. 일부 가족은 바차포쉬가 다음 아이가 남자로 태어날 행운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다고 한다. 반면 바차포쉬로 자라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사례도 있다. VOA는 사남이 그런 사례 중 하나라고 전했다.

사남은 아프간을 휩쓴 경제난에 배관공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를 따라 길거리에서 방역 마스크를 파는 일을 하려 바차포쉬가 됐다고 한다. 그는 1남4녀 중 하나인데, 11살 된 아들은 손을 다쳐 일할 수 없는 상태라고 VOA는 전했다. 사남의 어머니는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딸이 바차포쉬가 될 수밖에 없었다”며 “그가 10대가 될 때까지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남은 남자로 사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VOA와 인터뷰에서 “나중에 크면 의사나 군인이 되거나,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지에가 바차포쉬(Bacha Posh·남장소녀)로 살던 어린 시절 찍었던 사진/AP

일곱 자매 중 하나로, 어릴 적 바차포쉬로 자란 34세 나지에는 “아프간에서는 남자 아이가 더 가치 있다. 그들에겐 억압도, 한계도 없다”며 “여자 아이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받는 등 삶이 다르다. 여자 아이의 옷을 입으면, 마치 감옥에 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나지에는 탈레반 재집권 이후 직업을 잃었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교사로 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여자가 아닌 남자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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