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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주름 잡던 중년 옷, 크로커다일·인디안의 몰락

김은영 기자 입력 2022. 01. 18. 11:19 수정 2022. 01. 2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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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플랫폼 고속 성장에..한때 '1조 클럽' 가두점 브랜드 부진
대리점 살리려다 디지털 전환 놓쳐
2세 경영 시험대.. "대리점과 나누는 온라인 상생 전략 필요"

얼마 전만 해도 TV 드라마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은 의류 대리점 사장이었다. 화려한 옷차림의 사장은 매장을 동네 사랑방 삼아 주인공의 변신을 도우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모습이 점점 보이지 않는다. 의류 대리점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해 드라마 협찬이나 간접광고(PPL)를 줄이고 있어서다.

가두점 중심으로 사세를 키워온 중견 패션기업 형지와 세정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중년을 상대로 한 중저가 의류 브랜드로 전국 대리점을 장악하며 ‘1조 클럽’까지 갔으나, 온라인 쇼핑의 부상과 가두점의 몰락으로 날개가 꺾였다.

그래픽=손민균

◇패션 대리점 ‘양대 산맥’ 형지·세정의 몰락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크로커다일레이디·샤트렌·올리비아하슬러 등을 운영하는 패션그룹형지는 2020년 연결 매출이 전년 대비 27% 줄어든 3052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25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적자 전환했다.

2011년만 해도 크로커다일레이디 단일 브랜드로 연매출 3500억원을 거두며 전체 매출이 1조원에 달했으나, 현재는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남성복 예작, 본 등을 운영하는 계열사 형지I&C도 2020년 연결 매출이 2671억원으로 전년 대비 34%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675억원을 기록해 적자가 계속됐다. 골프복 사업을 하는 까스텔바작(308100)도 매출이 전년 대비 17% 떨어졌다. 종합 유통기업을 꿈꾸며 2013년 문을 열었던 아트몰링 장안점은 누적된 적자로 지난해 말 중단했다.

인디안, 올리비아로렌 등을 운영하는 세정도 지난해 매출이 2963억원으로 25% 줄었다. 2011년만 해도 매출이 6895억원 수준이었지만, 10년 새 외형이 3분의 1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영업손실은 407억원으로 적자가 계속됐다. 캐주얼, 주얼리 등의 사업을 전개하는 세정과미래도 같은 기간 매출이 3% 줄었다.

◇맨손으로 패션 대리점 사업 일궜으나, 온라인 대응 못 해

두 회사는 전국 가두상권에 대리점을 내고 중년층 대상으로 중저가 의류를 팔아 성장했다. 창업주 모두 맨손으로 회사를 일군 스토리가 유명하다. 최병오 형지 회장은 동대문 한 평 짜리 가게로 출발해 기업을 일궜고, 박순호 세정 회장은 마산의 의류 도매상점에서 일하다 창업해 부산을 기반으로 전국구 기업으로 성장했다. 박 회장은 2005년 방영된 드라마 ‘패션 70s’의 주인공 이요원(더미 역)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래픽=손민균

하지만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패션 소비가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추세에도 대리점 사업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LF(093050), 삼성물산(028260),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 등 패션사들이 자체 플랫폼 구축에 열을 올릴 때도 오프라인 사업에 매진했다.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열게 되면 대리점주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전략은 실패했다. ‘K-뷰티’라 불리던 로드숍 화장품이 무너졌듯, 패션 로드숍 역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기점으로 의류 판매가 줄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설상가상 대리점 갑질 논란도 이어졌다. 형지는 최근 대리점에 운송비를 부당하게 떠넘긴 혐의로 1억12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문어발식으로 불린 사업도 성장에 발목을 잡았다. 형지는 여성복 대리점 사업이 번창하자 종합 패션 유통회사가 되겠다며 남성 정장 및 셔츠 업체 우성I&C(현 형지I&C), 백화점 여성복 스테파넬, 캐리스노트, 제화업체 에스콰이아(현 형지에스콰이아), 엘리트 학생복(현 형지엘리트), 장안동 쇼핑몰 바우하우스(현 아트몰링)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하지만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일부는 사업을 중단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애초 남성 정장과 가죽 구두 등은 오피스 룩이 캐주얼로 바뀌면서 부진이 예상되는 분야였다”라며 “내실을 다지기 보다 덩치 키우기에 집중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2세 앞세워 계열사부터 디지털 전환... 성과는 미미

가족 경영을 고수한 것도 몰락의 이유로 지목된다. 두 업체는 자녀들에게 계열사 운영을 맡기며 경영에 끌여들였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 온라인이나 해외 진출 등 신사업에 대한 고민 없이 부모 세대의 경영방식을 답습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최병오 형지 회장의 장녀 최혜원 형지I&C 대표와 장남 최준호 까스텔바작 대표, 박순호 세정 회장의 삼녀 박이라 세정과미래 대표(왼쪽부터). /각 사

최병호 회장의 장남 최준호 대표가 운영하는 까스텔바작은 코로나19 여파로 골프 시장의 호황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 79% 줄었다. 장녀인 최혜원 대표가 운영 중인 형지I&C도 같은 기간 적자가 계속됐다.

세정의 삼녀 박이라 대표가 2019년부터 운영 중인 계열사 세정과미래는 매출 부진으로 지난해 캐주얼 브랜드 엔아이아이(NII)를 매물로 내놓았다. 라이프스타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18년 용인에서 선보인 복합문화공간 ‘동춘175′도 4년 만에 중단했다.

이들은 뒤늦게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며 성장동력을 키우고 있다. 까스텔바작은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기 위해 패션 플랫폼 1위 업체인 무신사와 공동으로 골프복 브랜드 육성에 나섰다. 새로운 골프 라인을 구축해 성장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형지I&C는 아마존 일본과 미국에 입점해 글로벌 판매를 시작했다. 세정과미래는 주얼리 브랜드 디디에두보와 라이프스타일브랜드 동춘상회를 중심으로 온라인 채널 고도화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패션업체 한 관계자는 “대리점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계열사를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맹 브랜드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본사와 대리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온라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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