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노력해도 여자는 '하우스 오브 구찌'가 될 수 없었다[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2. 1. 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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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5년 3월27일, 구찌 회장 마우리치오 구찌가 자신의 사무실 계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를 죽인 장본인은 이혼한 아내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다. 헤어진 지 4년째 되던 해, 파트리치아는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해 마우리치오를 살해한다. 그는 징역 29년을 선고받고 18년의 형을 산다.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구찌 가문과 파트리치아의 실화를 다뤘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허영심과 의부증 때문에 재벌 남편을 살해해 ‘세기의 악녀’로 여겨졌던 파트리치아를 폐쇄적인 가문 문화와 여성 차별에 좌절당해 몰락한 천재로 그려냈다.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감독 리들리 스콧은 허영심과 의부증 때문에 재벌 남편을 살해해 ‘세기의 악녀’로 여겨졌던 파트리치아를 폐쇄적인 가문 문화와 여성 차별에 좌절당해 몰락한 천재로 그려냈다.유니버설 픽처스·영화사 하늘 제공

영화는 한 남자를 비추며 시작한다. 수수한 얼굴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리에 둘러진 구찌 벨트가 보인다. 그는 구찌 창립자 구찌오 구찌의 손자이자 구찌 회장인 마우리치오(애덤 드라이버)다. 영화는 20여년 전으로 돌아간다. 마우리치오는 아직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다. 파티장에서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레이디 가가)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만난다. 마우리치오가 자신을 ‘구찌’라고 소개하자 눈이 반짝인다. 평범한 집안의 딸인 파트리치아는 그를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마우리치오는 집안의 반대에도 이 여성과 결혼한다. 아버지 로돌프(제레미 아이언스)와 삼촌 알도(알 파치노)가 운영하는 구찌 사업에 관심이 없던 마우리치오는 결혼 후 파트리치아의 지속적인 요구에 못 이기는 척 기업 경영에 발을 들인다.

파트리치아는 욕망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구찌를 두르고, 구찌를 위한 아이디어를 낸다. 구찌 집안 남성들 중 파트리치아만큼 경영에 적합한 인재는 없다. 시삼촌 알도는 짝퉁이 판치게 내버려둬 브랜드 명성을 땅에 떨어뜨린다. 알도의 아들 파올로는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실패한 디자이너다. 남편 마우리치오는 욕심이 없고 대범하지 못하다. 야망과 능력을 갖춘 파트리치아의 제안은 무시당한다. 구찌 혈통의 남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업 조언을 하는 파트리치아에게 마우리치오는 “구찌는 당신이 아닌, 내 이름”이라고 선을 긋는다. 알도는 “이건 여자(girls)가 아닌, 우리(us)의 게임”이라고 파트리치아에게 역정을 낸다.

마우리치오와 결혼한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는 남편을 조종해 구찌 기업 경영에 간섭한다. 유니버설 픽처스·영화사 하늘 제공

구찌 집안의 진정한 일원이 되기를 원했던 파트리치아는 결국 패배한다. 구찌 혈통 남성에게는 당연한 구찌 경영에 대한 발언권, 능력에 따른 평가는 그의 몫이 아니다. 이러한 권리를 마우리치오는 날 때부터 획득했지만 파트리치아는 평생에 걸쳐 노력해도 얻지 못한다. 감독은 일면 극성스럽고 집착적으로 보이는 그의 욕망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파트리치아 구찌’가 아니라 ‘마우리치오의 아내’에 불과한 그는 항상 남편을 구슬러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우리치오는 파트리치아에게 “남자가 되고 싶어?”라고 묻고 돌아선다. 파트리치아를 내쫓은 구찌 집안은 볼품없이 실패한다. 훗날 가족 기업 구찌는 전문 경영인 손에 넘어간다.

구찌 집안의 진정한 일원이 되기를 원했던 파트리치아는 결국 패배한다. 구찌 혈통 남성에게는 당연한 구찌 경영에 대한 발언권, 능력에 따른 평가는 그의 몫이 아니다. 이러한 권리를 마우리치오는 날 때부터 획득했지만 파트리치아는 평생에 걸쳐 노력해도 얻지 못한다. 유니버설 픽처스·영화사 하늘 제공

파트리치아는 죄인이지만 악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레이디 가가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다 파국을 맞는 파트리치아를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애덤 드라이버는 구찌의 적자이지만 어딘지 구찌가 어울리지 않는 묘한 마우리치오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자레드 레토,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등 할리우드 명배우들이 출연한다. 상영시간 158분. 15세 이상 관람가.


오경민 기자 5k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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