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그 대학, 그 학과 가면 '삼성전자 취업 보장'..교육의 현실

남승모 기자 2022. 1. 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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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 개편 과정에서 목표와 원칙이 분명해야 합니다. 제가 제시하고 싶은 대입제도 개편 목표는 대입제도가 공교육 정상화, 특히 고교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입제도를 위해 학교 교육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18년 7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정부의 수능 정시 확대에 반대하며 발표한 입장문 가운데 일부입니다. 조 교육감은 당시 "본질은 학교 교육활동의 정상적 운영이다. 대입제도 논의 과정에서 이 목표는 항상 강조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분명 공교육은 입시만을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공교육은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요?

우리 공교육의 목표


교육 문제가 언급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아이들 줄 세우기는 안 된다', '공교육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그토록 정상화시켜해야 한다는 공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다룬 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너무 뻔해서 일까요?
공식적인 답은 초중등교육법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 초중등교육법
제38조(목적) 초등학교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41조(목적) 중학교는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45조(목적)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요즘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입시로 몸살을 앓는다고 하지만 핵심은 역시 고등학교입니다. 우리 법이 정한 고등학교 교육의 목표는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입니다. 분명 고교 교육 목적에 대학 입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목적에도 없는 대학 입시가 목적이 된 이유는 뭘까요?
혹시나 대학 교육 목적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이번엔 고등교육법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격 도야와 국가, 인류사회 이바지함을 위해 그토록 공부를 하는 건 아닐 것 같습니다.
● 고등교육법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해답은 전혀 다른 분야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우수 대학에 계약학과를 잇달아 신설하면서 인재 선점에 나서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고려대, 채용연계 '차세대통신학과' 신설 (사진=삼성전자 제공, 연합뉴스)

입시 → 대학 → 취업…교육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


삼성전자는 17일 고려대와 함께 차세대 통신 기술을 전공하는 삼성전자 채용연계형 계약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매년 30명을 차세대통신학과에서 선발해 통신 분야 이론과 실습이 연계된 실무 맞춤형 교육을 하고 졸업 후에는 삼성전자 취업이 보장되는 형식입니다. 삼성전자는 앞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KAIST 반도체시스템공학과 등의 계약학과를 만들었습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과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도 이런 방식으로 인재 확보에 나섰습니다.
요즘은 대학생활도 낭만을 말하기 어려울 만큼 입학과 동시에 치열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입시 전쟁에 이은 취업 전쟁입니다. 물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거나 자격증,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 취업 전쟁 속에서 그 대학, 그 학과에 가면 취업이 보장되는 겁니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문과생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늘 구멍 같은 대학 입시를 통과했지만 속칭 명문대생이라도 취업 문을 통과하기 힘든 문과생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대학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줄 서지 마라'가 아닌 '줄 안 서도 되는' 대안을


공교육은 전인 교육을 지향합니다. 앞서 살펴본 법적 목적도 그런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현실적인 목적, 법적 목적에도 포함돼 있는 '먹고 살 길을 찾을 수 있는 직업 교육'의 성격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육 목적에 있는 <기초적인 전문교육>, 대학 교육 목적에 있는 <응용 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이 그런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문구가 추상적이라 이게 맞는지 교육부에 자문을 구한 결과, 해당 조항이 직업 교육과도 관련된 내용이란 답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청년들이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첫 단추입니다. 대학이 단순히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지만 이것이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학생들을 줄 세우기 하지 마라', '공교육을 정상화 시켜라' 아무리 외쳐봐야 무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꿔도 큰 효과가 없는 건 근본적으로 대학에 가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수요 공급의 원칙입니다. 가려는 사람이 많은데 제도를 아무리 바꿔봐야 경쟁의 형태만 달라질 뿐 경쟁 자체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자칫 경쟁의 양상만 복잡하게 만들어 사교육 문제를 더 꼬이게 할 뿐입니다. 안타까운 건 우리 정치권과 교육계가 공교육의 당위론 역설에는 힘쓰면서도 정작 사람들이 왜 좋은 대학으로만 몰리는지는 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이런 똑같은 모습을 정부 스스로 실패했다고 인정한 부동산 문제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정부가 내세운 부동산 문제의 정의는 '집은 주거를 위한 공간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였습니다. 공급도 충분하다며 집값 상승은 투기 수요 때문이라도 했습니다. 정의로운 판단이었을 지는 몰라도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교육은 입시를 위한 게 아니라는,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하지만 당위론을 앞세운 교육 제도 개편만으로는 입시 지옥을 풀어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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