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튀기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한겨레21 입력 2022. 1. 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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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웅의 여론 읽기]여론조사 부산물 '단일화'.. 1위 독식 선거제도가 낳은 괴물
후보단일화는 ‘1위’가 모든 권력을 독식하는 한국 선거제도의 부산물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단일화에 나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이정우 선임기자

후보단일화는 여론조사의 소산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아름다운 담판으로 결정짓거나 제비뽑기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론조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단일화가 큰 선거마다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거제도 영향도 있다. 결선투표제가 적용된다면 단일화 이슈는 사라진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위와 2위를 대상으로 재투표하는데 이는 사실상 자동으로 단일화되는 셈이다. 또 각 후보가 얻은 득표율만큼 권력을 배분받는다면 역시 단일화가 필요 없다. 그러나 1위를 하면 모든 것을 얻고, 1위가 아니면 0.1%포인트 차이로 지더라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특성이 있는 이상 1위를 위한 단일화 시도는 사라지기 어렵다.

독자적 1위 불가능… 단일화의 조건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선을 앞두고서도 단일화 이슈는 여지없이 등장하고 있다. 단일화 논의가 불거지면 선거 본연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없지 않다. 유권자는 짧은 선거 기간에 후보의 역량과 공약을 살피기에도 부족한데 다른 곳에 신경을 빼앗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종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가장 주목받는 이슈가 된다.

일단 단일화 논의에는 기본 조건이 있다. 지지율상 1위 후보가 있고, 2위와 3위는 독자적으로 1위를 할 수 없고, 2위와 3위가 단일화해 한 명만 본선에 나가 사실상 양자 구도를 만들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매우 특이한 경우처럼 보이지만 자연현상처럼 이런 환경은 쉽게 조성된다. 아무리 특정 후보에게 유리해 보이는 선거라고 해도 1위 후보가 50%를 훌쩍 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생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주변에 거대한 압력이 형성되며 외면할 경우 정상적인 선거 캠페인이 어려워진다. 공약 발표 자리에서도 기자들은 단일화에 대해 묻는다. 정작 발표한 공약에 대한 언론 보도는 없고 단일화에 대한 입장만 나온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후보들도 대부분 단일화를 현실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단일화 논의에는 크게 3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단일화 여론조사의 대상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다.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할지, 최종적으로 경쟁할 후보의 지지층을 제외하고 할지 정해야 한다. 누구에게 묻는지에 따라 응답 결과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만약 제1야당 후보라면 여당 후보 지지층은 여론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할 것이다. 무소속이거나 중도 성향의 후보라면 여당 후보 지지층까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역선택’ 논란(경쟁 정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의도적으로 조직적 투표를 함으로써 선거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이 뒤따른다.

둘째, 단일 문항 방식과 복수 문항 방식의 대립이다. 설문 하나로 단일화에 참여한 두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과, 두 문항으로 본선에서 경쟁할 후보와 각각 일대일 가상대결을 실시해 비교하는 방식이다. 정당 내부 경선에선 복수 문항 방식의 경우 후보 간 변별력이 크지 않으나 소속 정당이 다른 후보 간 단일화 조사에서는 제법 차이가 날 수 있다.

2021년 3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단일화를 위한 토론회에 앞서 악수하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공동취재사진

지지도냐 적합도냐, 무엇을 물을 것인가

셋째, 여론조사 설문 문구다. 주로 단일 문항으로 우열을 가릴 때 충돌하는 부분이다. 후보의 경쟁력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이 사용되는데, 각각의 용어에 따라 응답자 반응이 조금씩 다르다. 지지도, 선호도, 적합도 등이 우선 거론된다. 가령 ‘누구를 지지하는가’라고 물을 때는 정치 성향이 비교적 뚜렷한 후보가 유리하다. 또 ‘누가 후보가 되는 게 적합하다고 보는가’라고 물을 때는 해당 선출직에 맞는 경력을 보유하거나 흠결이 적은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

이 외에 본선에서 경쟁할 후보를 전제하고 ‘누가 이길 것 같은가’라고 묻는 방식도 자주 등장한다. 후보에 대한 응답자 개인의 지지나 선호가 아니라 후보들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를 묻는 것이다. 아예 ‘경쟁력’이란 표현을 넣어 ‘누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라고 묻기도 한다. 원래 여론조사는 응답자 개인이 어떤 인식을 갖는지 묻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유형은 응답자 개인이 본연적으로 지닌 생각보다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판단을 묻는 것으로 차이가 있다.

자신이 앞선다는 여론조사 정보가 확산된 후보는 경쟁력 평가로 단일화 조사가 진행되길 바란다. 2002년 제16대 대선 과정의 단일화에서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 쪽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어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한국팀의 4강 진출로 당시 정몽준 후보에 대한 폭넓은 인기가 있었고, 지지율이 급상승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면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 쪽에선 ‘어느 후보를 선호하느냐’ 또는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로 묻는 선호도·지지도 조사를 희망했다. 후보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긍정평가가 있었고 기본 지지층이 있는 주요 정당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후보로 노무현·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문항이 결정됐다.

비슷한 논의는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도 있었다. 시정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쪽은 ‘어느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쪽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이 모이지 않아 적합도와 경쟁력을 모두 묻는 방식으로 결정됐다.

단일화 조사에서 전화조사 방식과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의 차이가 있다. 표본 대표성이 ARS 방식보다 더 나은 전화조사 방식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재질문 여부도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질문에 답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은 누구인가’ 등으로 재차 질문할 수 있다. 보통 처음에 답하는 사람은 누군가에 대한 지지가 뚜렷하고, 응답을 주저하는 사람은 뚜렷한 지지가 없다. 재질문을 받으면 덜 싫은 사람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슈 불거진 순간 국면은 이미 시작된 것

단일화 대상으로 거론되는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작을수록 협상은 쉽지 않다. 작은 부분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단일화가 성사될지, 누가 될지 불확실하지만 단일화 이슈가 불거지면 이미 단일화 국면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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