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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밤나무 자손들' 70년 쌓인 恨..언제쯤 풀 수 있을까요?

정재훈 입력 2022. 01. 19. 11:35 수정 2022. 01. 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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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시신을 영영 찾지 못 허니까, 글쎄 집안 큰 어른이 밤나무를 베어다가 나무토막을 깎아서 아버지 육신 대신 묘를 쓰더라고요. 밤나무를 깎아 넣은 묘에 세배를 하라니 웃어른들 앞에선 억지로 했습니다만, 내가 커서는 세배도 안했습니다. 아니 밤나무보고 절을 할 일이 있어요? 안했습니다. 그런 설움을 받고, 부모 없는 설움은 아무도 몰라요.”

“아니 김 선생도 밤나무로 묘를 썼어요? 나도 우리 아버지를 밤나무로 모셨어요. 기가 막힌 일이지. 대전형무소에서 끌려 나오고선 몽땅 다 죽었단 얘기를 들었죠. 아버지 유골을 영영 찾질 못하니까 나도 묫자리에 밤나무 토막을 깎아 넣었어요.”

“박 선생도? 그럼 우리는 다 밤나무 자손들이구만, 허…”

아버지가 묻힌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골령골 학살터를 찾은 김종구 씨(왼쪽)와 박용부 씨.

인천에 사는 79살 김종구 씨와 전라남도 순천에 사는 81살 박용부 씨. 백발의 두 노인이 지난 1월 10일 대전에 왔습니다.

아버지가 총살당한 학살터, 골령골에 다다른 두 노인. 한참을 서성거리다 옛 이야기를 꺼내던 와중에 이렇게 서로를 ‘ 밤나무 자손들’이라고 부르며 허탈한 웃음을 짓습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두 분의 아버지들은 골령골에서 억울하게 총살당했습니다.

김 씨가 5살, 그리고 박 씨가 7살 때 일입니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그리고 아들들이 백발이 되고 나서야 억울한 죽음의 진실이 세상 위로 드러났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의 희생이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라는 진실을 찾기 위한 유족들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억울한 죽음 값, ‘과거사 배·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두 사람에게 기가 막힐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총부리가 무서워 쌀 한 포대 내준 죄

순천에 살고 있는 81살 박용부 씨가 아직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1948년 10월 20일, 집안에 난데없이 군인들이 들이닥쳐 아버지의 가슴에 소총을 들이댑니다.

군인들은 박 씨의 아버지인 고 박풍년 씨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며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협박했고, 가족들에게 해를 입힐까 걱정이 된 아버지는 군인들에게 20kg 쌀 한 포대를 건네줬습니다.

군인들의 옷차림새가 대한민국 국군이었으니 큰일이 아닐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순천경찰서 서면지서 경찰 10여 명이 다시 집안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막무가내로 끌고 갑니다.

당시 경찰들은 “반란군에게 식량을 대줬다.”고 말하며 아버지를 끌고 갔습니다.

알고 봤더니 집안에 들이닥친 군인들은 제주4·3사건 진압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킨 ‘여수·순천사건’ 14연대 소속 국방군이었습니다.


이후 박 씨의 아버지인 박풍년 씨는 1948년 12월 13일 호남지구 계엄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포고령 제2호’ 위반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

박용부 씨는 어머니와 함께 형무소에 수감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면회를 갑니다.

거기서 아버지는 박 씨에게 “나는 석 달 있으면 나가니까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이게 아버지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박 씨는 통 소식이 끊긴 아버지가 못내 걱정됐습니다.

국군의 수복 이후 다시 대전형무소를 찾았지만, 아버지는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거기서 교도관들은 박용부 씨에게 “여기 수감자들은 다 사망인 줄 아시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68년이 흐른 지난 2008년 5월 23일. 박용부 씨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고 순천시 서면사무소에서 사건을 진술합니다.


■배우지도 못하고 들리지도 않는데... 놓쳐버린 소멸시효

아버지가 형무소에서 숨지고, 박 씨는 연좌제에 시달리며 주변으로부터 ‘빨갱이, 공산당, 좌익사범’이라며 핍박받았습니다.

공무원은커녕 취직도 어려웠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집안을 일궈야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선 청각장애라는 병까지 얻었습니다.

반세기가 한참 더 지나서야 박용부 씨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규명 결정문’을 받아 냅니다.

그리고 한참 지나 다른 유족들이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뒤늦게 박용부 씨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소송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돌아옵니다.

변호사는 “박용부 씨, 이건 법적으로 시효가 늦어버렸습니다. 배상 대상은 되는데 3년의 소멸시효가 끝나서 안 됩니다. 다음에 법이 바뀌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렵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누명을 쓰고 형무소에 갇힌 것도 모자라 억울한 사형까지 당한 아버지. 평생을 연좌제에 시달리며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아들. 그런데 진실을 밝혀내고도 배상받을 길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박용부 씨는 “그전에는 어디 가면 말도 못했어요. 저기 빨갱이 새끼다, 공산당 새끼다. 그렇게 살았는데 그 심정은 말도 못하죠. 내가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학교를 국민학교 밖에 안 나왔습니다. 청각장애로 뭔 소리를 내가 들을 줄 알아요? 말 못해, 무식해. 그러다 보니까 배보상에 누락 된 거예요.”라고 한탄합니다.


■가오리의 거짓 자백에 아버지가 죽다

79살 김종구 씨의 아버지는 1948년 11월 5일 ‘여수·순천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갑자기 서천경찰서로 연행됩니다.

김 씨가 살던 순천시 상사면 오곡리 마을에서 좌익활동을 하던 ‘일명 가오리’란 인물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경찰은 협조한 사람을 말하라며 고문을 가했는데 아버지의 이름, ‘김태수’가 가오리란 인물의 입에서 나온 겁니다.


그 길로 김 씨의 아버지인 김태수 씨는 순천경찰서에 구금됐습니다.

그리고 1948년 12월 13일 호남지구 계엄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포고령 제2호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49년 2월 5일 광주지방검찰청 집행원부에서 ‘내란죄’ 혐의로 대전형무소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6·25전쟁이 발발합니다.

고문에 의한 밀고로 김 씨의 아버지 김태수 씨는 31살의 나이로 대전시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총살당했습니다.


■변호사비에 송달료까지 냈는데 ‘이름이 빠졌다’

김태수 씨의 아들 김종구 씨는 2006년 5월 8일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아버지가 가오리라는 인물이 고문을 당한 자백만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또,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총살을 당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소멸시효를 놓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박용부 씨와 달리 김종구 씨는 국가배상청구 집단민사소송에 참여합니다.

집단소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김종구 씨.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소송인 명부에 김 씨가 빠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이미 시간은 흘러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름이 누락돼 소송에 참여할 수 없게 됐고, 마찬가지로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된 겁니다.

김종구 씨는 일자무식인 자신이 복잡한 소송 절차를 미처 챙기지 못하는 사이 배상을 놓쳤다며 한탄합니다.

김종구 씨는 “당연히 접수됐을 것으로 생각하고, 변호사비도 60만 원을 주고, 송달료도 10만 원을 냈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서 뒤늦게 와보니까 접수가 안 된 거예요. 그래서 배상을 놓친 것 아닙니까? 내가 무식한 사람이라 나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내가 못 배운 것이 서럽다. 못 배워서 못 찾아 먹고 이렇게 서럽고 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원통해 합니다.


■2만 620명의 희생자... 배상은 5,665명뿐

박용부 씨와 김종구 씨처럼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문을 받고도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찾아봤습니다.

6·25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사건을 비롯해 골령골 등 전국의 148개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로 희생된 민간인은 10만~20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이 중 6·25전쟁을 전후부터 군부와 독재정권에 의한 인권침해까지 국가폭력에 의해 살해됐다가 정부로부터 진실규명 결정문을 받은 ‘민간인 희생자’는 2만 620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일부라도 승소한 사람은 38%에 불과한 5,665명뿐이었습니다.

대다수인 1만 4,955명은 단 한 푼도 배상을 받지 못한 겁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통지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상임위원을 맡았던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전시 상황이라도 형무소 수용자이거나 혹은 보도연맹원들이거나 예비검속 당한 사람들을 국가가 정당한 절차 없이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람들을 처형, 즉 학살한 것은 불법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상당수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 대부분의 사람 거의 전원은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에요.”라고 덧붙였습니다.

국가폭력으로 집단학살에 휘말려 돌아간 민간인 희생자들. 특히 전투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과 인민군의 일방적인 학살로 숨진 대다수는 민간인들의 후손들은 배상과 보상은커녕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며 평생을 고통받았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3년’의 소멸시효

민간인 희생자의 배상 소멸시효와 관련해 2013년 5월 16일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국가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3년으로 정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202819)을 내렸습니다.

당시 재판장이던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결문을 통해 민간인 희생자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안 날로부터 3년을 권리행사 기간이라고 판시했습니다.

또, 별도의 재심 무죄 피해자가 국가배상을 청구할 경우에는 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또는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안에 소를 제기하면 상당 기간 내 권리를 행사했다며 권리행사시간을 6개월로 판단했습니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2018년 8월 30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판결에 대해 민법 조항을 과거사정리법에 적용한 것은 가해자 보호만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외면한 것으로 청구인들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무죄판결 이후 6개월에 불과했던 짧은 소멸시효 문제는 3년을 적용하는 것으로 해결됐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족들, 더욱이 연좌제와 고문, 감시 등으로 사회에서 배척당한 유족들의 경우 복잡한 소송절차부터 국가에 소송을 가한다는 부담 등의 이유로 배상받는 길을 포기하는 병폐가 벌어지고 맙니다.


■배·보상 특별법 마련하라... 9년의 하세월

2013년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국가배상청구소송에 판결을 내리며 이 같이 판시했습니다.

“국회와 정부가 과거사정리법의 의무규정과 진실화해위원회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인 해결책을 내지 않은 채 민사소송절차로 내모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진실규명 결정 이후 곧바로 소송을 제기한 사람과 시효가 끝나고 소송을 제기한 사람, 애당초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고 위자료 액수에도 차등이 발생해 피해구제의 불균형을 낳는다고 지적합니다.

또, 국회와 정부는 지금이라도 배·보상 특별법을 마련해 소모적 논쟁을 종식 시키라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장은 ‘국가폭력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국가배상과 관련된 재판을 박근혜 정부와 사법 거래를 했다는 문제가 불거져 큰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 연락사무소 총책임자인 애버트(Leonard J. Abbott) 소령이 찍은 골령골 학살 장면. 대한민국 육군 헌병대 장교로 추정되는 인물이 권총으로 민간인을 사살하고 있다.

이 같은 판결 이후 2017년 20대 국회에서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하는 법률과 과거사정리법에 배·보상 규정을 두는 법안이 발의됩니다.

하지만 모두 표류를 거듭하다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모두 폐기됩니다.

21대 국회가 들어섰습니다.

2020년 7월 전용기 의원 대표 발의를 시작해 같은 해 12월 한병도 의원, 지난해 8월 이개호 의원, 지난해 10월 김용판 의원 등 모두 4개의 법률안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입법까진 도달하지 못했고, 9년째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보상 규정은 법률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상 규정 담은 ‘4·3특별법’ 공포

지난 1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1회 국무회의에서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공포됩니다.

6·25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중 처음으로 보상 규정이 담긴 법률이 통과됐고 희생자당 9천만 원의 보상금이 올해 하반기부터 지급될 예정입니다.

지급 규모는 9,600억 원. 사망자와 행방불명 희생자 1만 100여 명에게 균등 지급됩니다.

4·3특별법 국무회의 공포에 대한 소회를 말하고 있는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은 “제주의 사례를 계기로 과거사정리법도 보상 규정을 제대로 만들어서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제대로 보상해주고, 미래로 갈 수 있는 게 당연한 국가적 조치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대전 골령골부터 여수·순천사건, 거창사건 등 육지의 많은 학살사건 유족들이 진짜 제주처럼만 해준다면 원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늦기 전에 전국적인 민간인 희생 사건도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4.3사건 이외에도 과거사 사건 관련 보상 법률은 또 있습니다.

1990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2000년 제정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2013년 제정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그동안 3개의 법률을 통해 만여 명의 유족들이 3천6백여억 원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규정은 아직도 전무합니다.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영광 외가댁도 몰살… 남의 일이 아니다

과거사정리법 법안에 대한 개정 작업이 21대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1월 20일 국회에서 배·보상 필요성에 대한 국회토론회가 열립니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부터 김용판, 김민철, 김형동, 백혜련, 오영훈, 이명수, 임호선, 한병도 의원이 참여합니다.

"1월 20일 배·보상 필요성에 대한 국회토론회 열려"

그런데 토론회에 참가하는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가 민간인 희생자와 관련됐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6·25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1950년 10월 김 원내부대표의 외가댁 친척 20명이 영광지역에서 빨치산에게 몰살당했다는 겁니다.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는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영광지역 학살에서 128명의 사실관계를 확인했는데 외가 쪽 일가분은 1명도 포함돼 있지 못했다. 그래서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원내부대표는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배상을 받기 위해 개별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법률로 보상규정을 넣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원내부대표는 “개별소송에선 금액의 차이도 불균형이 벌어지고 문제점이 상당히 많다. 국가에서 과거사정리법에 보상규정을 좀 넣으면서 전반적으로 같이 형평성 있게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1년 대전시 낭월동 골령골 학살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

■유족들의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골령골 집단학살 산내사건 유족회를 비롯해 전국의 많은 민간인 학살 유족회 활동을 하는 유족들의 나이는 이제 80에서 90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81살 박용부 씨도 지팡이를 쓰지 않고선 거동조차 힘든 상태입니다.

이미 많은 유족들이 명예회복, 국가사과라는 빛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습니다.

부모를 잃은 것도 모자라 연좌제라는 2차 가해, 그리고 사회적 멸시를 받은 유족들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산내사건유족회는 “유족들에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는 늦기 전에 서둘러 법안 개정이 이뤄져야 합니다”라고 호소합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10년 해산하기 직전, 조사보고서를 펴내며 이 같이 적었습니다.

주문.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으로 결정한다.

본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집단살해한 것으로서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비록 전시였다고는 하나 국가가 좌익사범이라는 이유로 수감된 재소자들을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처형한 행위는 정치적 살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사건에 대하여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화해를 위한 국가의 조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국가는 먼저 이 사건의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5권 제2부 제2소위원회 사건 323p. >

‘말뿐인 사과’는 누구나 쉽게 그리고 진심을 담지 않아도 내뱉을 수 있습니다. 더 늦지 않게 이제 국가가 행동에 나서길 바랍니다.

삽화
박건웅 화백

도움주신분들
산내사건 희생자 유족회 / 여수·순천사건 희생자 유족회 / 제주4·3유족회 / 제주4·3평화재단 / 대통령직속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 김민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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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기자 (jjh11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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