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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죽으면 내 밥줄도 끊긴다" 상관 성폭력 신고한 여군에게 돌아온 말[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입력 2022. 01. 19. 14:56 수정 2022. 02. 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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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6월 국방부 성폭력 특별신고기간 중 성폭행·성추행을 당한 여군들이 군 성고충상담관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사건 신고 직후 해당 상담관과의 근무지 분리를 요구했지만 군은 “상담관은 민간인이라 처분 권한이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육군 모 보병사단 소속 강모 소령으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은 여군 A씨와 B씨는 신고 다음날인 지난해 6월28일 군 성고충상담관 C씨를 만났다. B씨가 육군 감찰부에 제출한 진술서에 따르면 면담 당일 C씨는 “왜 피해 당일에 신고하지 않고 이틀 늦게 신고했느냐”고 말했다. B씨는 “신중하게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서 신고했는데 도리어 책임을 묻는 것 같아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방부 청사 전경. 김창길 기자

피해자들은 C씨가 상담관으로서 적절한 도움을 주기는커녕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첫 진료가 있던 7월13일 B씨는 가해자의 환청이 들리는 등 심리 상태가 불안정해 C씨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그러나 C씨는 “(상담관은) 심리조력 담당이지 행정지원 담당이 아니다”라며 거절했고, B씨는 결국 외부활동가에게 도움을 청해 진료를 받았다. 또 C씨는 8월2일 피해 회복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던 B씨에게 “장기복무에 선발되려면 빨리 부대에 복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B씨는 8월9일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그럼에도 2차 가해는 멈추지 않았다. C씨는 8월20일 B씨에게 “(네가) 죽으면 내 밥줄도 끊긴다”며 “상담 기록도 하나도 없는데 꼭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하던 8월24일에는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마약중독자 캐릭터 ‘헤롱이’에 빗대 이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C씨가 “지금은 상태가 메롱해서 메롱이인데 더 안 좋아지면 헤롱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B씨는 “상담관이 9월8일에도 우리에게 ‘으휴 두 메롱이’라며 조롱했다”며 “수치심과 치욕스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B씨는 9월30일 부모를 통해 군단장에게 2차 피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분리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B씨는 여단장에게 편지를 통해 피해 사실을 재차 알렸다. 그러나 여단장은 “너그러이 용서하고 군대에 와서 군 생활을 잘 하면 안되겠느냐”며 회유했다. B씨는 육군 양성평등센터에도 C씨의 2차 가해를 신고했지만 군은 “민간인이라 규정이 다르다”며 C씨와 근무지를 분리해주지 않았다. B씨는 “같은 영외 숙소에 상담관이 살고 있어 마주칠 수밖에 없다. 너무 괴롭다”고 호소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2021년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공군 성폭력 관련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전직 상담관들은 군 지휘관들이 사실상 상담관의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피해자 편에 서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군 양성평등상담관 출신 박모 활동가는 “통상 상담관은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한 뒤 5년째에 무기계약직 임용 여부가 결정된다”며 “이때 소속 부대 지휘관이 점수를 결정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직 상담관 D씨도 “양성평등센터에서 50점, 해당 부대에서 50점을 매기는데 부대 점수는 지휘관이 정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면 상담관이 오히려 생존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군 환골탈태” 지시에도 범행
성폭력 특별신고기간에 수차례 성폭행




강 소령이 A씨와 B씨를 성추행한 지난해 6월25일은 공군에서 상관으로부터 성추행 당한 뒤 사망한 고 이예람 중사 사건에 대한 군 경찰 수사가 한창일 때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달 5일 “군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며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에 대한 엄정수사를 지시한 지 20일 지난 시점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지시 다음날에 이 중사 빈소를 직접 찾아 유족에게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군 통수권자의 지시에 국방부는 6월30일까지 성폭력 피해 특별신고기간도 운영했다.

1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육군의 한 보병사단 소속 강모 소령은 지난해 8월4일 준강간, 강제추행,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 됐다. 사단 예하부대 과장이던 강 소령은 지난해 6월17일 회식이 끝난 뒤 술에 취한 여군 A씨를 숙박업소로 데려가 성폭행 했다.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강 소령은 범행 당시 정신을 잃은 A씨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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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입수한 군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강 소령은 성폭행 이후 “상담을 해주겠다”며 A씨와 다른 여군 B씨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A씨와 B씨는 수차례 초대를 거절했으나 부대 상관이던 강 소령의 강요에 못 이겨 같은 달 25일 저녁 술자리를 함께 했다. 강 소령은 이 자리에서 수차례 “너무 예쁘다”며 A씨와 B씨의 외모를 품평했다. 이어 술을 먹지 않는 B씨에게 4차례 이상 술을 강권한 뒤 “남자 복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술에 취한 강 소령은 오후 11시쯤 자리를 뜨려는 B씨를 힘으로 제압한 뒤 몸을 강제로 만졌다. B씨가 저항하자 강 소령은 이번에 A씨에게 다가가 추행한 뒤 자신의 신체를 강제로 만지게 했다. 이 같은 성추행은 B씨가 “대대장님께 전화하겠다”고 말한 뒤에야 중단됐다.

B씨는 강 소령의 집에서 빠져나와 A씨에게 “혹시 (강 소령의) 성폭력이 처음이 아닌 거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A씨는 앞선 성폭행 피해 사실을 B씨에게 털어놨다. 이에 B씨는 이틀 뒤 피해 사실을 대대 주임원사에게 신고했다. B씨는 군 경찰에서 “첫 번째 군 생활에서도 성군기 위반 사고를 겪은 뒤 보호받지 못해 전역했었는데 재임용된 이후에도 성추행을 당했다”며 “이번 추행을 사건화하면 군 생활을 또다시 잃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강 소령은 성폭력 피해 특별신고 기간보다 앞선 6월2일에도 B씨의 팔을 주무르는 등 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달 18일에는 업무를 하는 A씨의 어깨를 여러 차례 쓰다듬었다. 또 A씨의 신체를 자신의 신체에 맞댄 상태에서 업무를 보게 하는 등 위력에 의한 추행을 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강 소령은 지난 18일 준강간, 강제추행, 성폭력범죄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강 소령 측은 “(A씨가) 만취 상태가 아니었으며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군 재판부는 "피해자는 당시 심신상실 상태였고 직속 상관과 부하의 관계로 어려운 관계인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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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근 기자 redroot@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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