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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올려 한술.. 김에 싸 또 한술.. '갓 지은 밥'의 힘

기자 입력 2022. 01. 20. 10:10 수정 2022. 01. 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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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관 참나무능이장작구이 찹쌀밥
송도갈비 솥밥
서산 울엄마 영양굴밥
효계 계란밥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밥

밥심의 한국인에게 ‘밥은 하늘’

조선시대엔 400~600g씩 먹어

밥그릇이 지금 국그릇 보다 커

50년전 쌀 부족에 혼·분식운동

식당‘스뎅 공기밥’도 그때 등장

시루-가마솥-양은냄비 도구진화

한국산 전기밥솥 기술 세계최고

괴상한 일이다. 밥을 먹자 해놓고 찌개나 반찬만 들입다 고민한다. 주인공은 밥인데도 말이다. 한국인은 예부터 중요한 것을 만들 때는 ‘짓는다’고 했다. 주로 의식주가 그러하다. 옷이며 집은 짓는다. 글도 시(詩)도 짓고, 부르는 이름도 짓는다. 밥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짓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국과 반찬은 만들거나 한다고 하지, 절대 짓는다고 하지 않는다. 쌀을 비롯해 보리, 잡곡 등을 물에 익혀 지은 것이 밥이다. 솥(냄비) 뚜껑으로 고압을 유지해 물기를 날리고 뜸을 들이면 비로소 부드러운 밥이 된다. 매우 독특한 조리 기술이다. 다만 이 어려운 기술만 익힌다면 곡물 상태에서 빵이나 국수처럼 반죽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음식이 되기에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밥은 경제적이기도 하다. 쌀로 밥을 짓는데 벼농사를 지으면 많은 사람이 먹고살 수 있다. 18세기 중엽 기준 유럽에서 빵을 빚는 밀을 1알 뿌리면 6알을 수확했다. 쌀은 1알이 25∼30알 정도로 늘어난다. 벼농사는 매 시기 손이 가고 사람 품도 많이 들지만, 종자 당 수확량이 훨씬 좋다.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볍씨 1말을 뿌려 60말을 거두면 풍요로운 곳이라 했고 30말을 거두면 먹고살기 힘든 척지(瘠地)라 정의했다. 무려 30배를 거두는데도 작황이 좋지 않다니. 그만큼 쌀의 경제성은 우월했다. 게다가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한 밀에 비해, 기본 영양소가 고루 든 쌀로는 맨밥만 지어 먹어도 당분간 버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과연 한국인에게 밥이란 무엇인가. 밥은 다른 음식과는 그 지위나 중요도가 다르다. 밥상의 주역이다. 이름조차 밥상(식탁)이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밥은 기본이자 주역이다. 먹을 식(食) 자와 밥을 뜻하는 한자는 같다. 식사 자체가 밥으로 통한다. 빵이나 국수, 만두를 먹고도 밥을 먹었다고 한다. ‘밥 먹었냐?’는 인사말로도 쓰인다.

우린 밥을 먹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또 살기 위해 밥을 먹는다. 세종대왕도, 동학교주 최시형도, 시인 김지하도 했던 ‘밥은 하늘’이란 말도 있듯, 밥은 한국인에게 생명이요, 이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거룩하고 소중한 존재다. 꼭 쌀이나 곡물을 이용하지 않아도 밥이다. 에너지의 의미로도 쓰인다. 강아지도 금붕어도 심지어 시계도 밥을 줬다.

우리말 ‘밥’은 고려가요 상저가에 처음 등장한다. 중세 한국어에서 ‘메(또는 뫼)’라고도 불렀지만 밥으로 통일됐다. 다양한 곡식을 활용한 잡곡밥이 있었지만 이젠 쌀밥이 밥의 가장 기본적인 이미지를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예전엔 밥을 참 많이도 먹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란 말처럼 우리 선조들은 엄청난 양의 밥을 먹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선인은 밥 먹는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다른 나라에 소문났을 정도다. 실제 사진이나 기록을 보면 밥사발이 지금 국그릇보다도 컸다. 한·중·일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고봉(高捧)밥을 먹어댔다. 조선 별칭이 ‘대식국’이었다. 조선 후기 밥그릇을 보면 밥이 약 480∼640g 들어갔다. 그런데 고려와 고구려 때는 이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한다.

평소 얼마나 밥을 많이 먹었으면 조선 사신 홍대용이 중국에 다녀온 후 ‘청나라 밥그릇은 찻잔만 하더라’고 했고 왜를 다녀온 사신은 ‘왜인들은 한 끼에 쌀 3줌밖에 먹지 않더라’고 놀라움을 전했다. 반대로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현 일본 오키나와(沖繩) 지역의 옛 왕국 유구국(琉球國) 사람들이 “항상 큰 사발에 밥을 퍼서 먹으니 어찌 궁핍하지 않겠냐”고 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근대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도 조선인의 밥 먹는 양을 보고 하나같이 깜짝 놀란 일화들이 내려온다.

그러다 100년 후 현대에 들어선 200g으로 확 줄었다. 공깃밥 도입의 영향이 컸다. 1970년대 고질적인 쌀 부족 현상을 빚자, 당시 박정희 정권은 혼분식 장려운동과 함께 식당에서 파는 밥의 규격을 통제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 과정을 보자. 1973년 1월 양택식 서울시장은 표준식단을 공포하고 1974년 12월 4일부터 밥은 음식점에서 정해진 규격의 스테인리스 밥공기로만 팔 수 있도록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1976년 6월 29일 구자춘 서울시장은 밥공기의 규격과 양(지름 10.5㎝ 높이 6㎝, 80%만 담을 수 있다)까지 정했다. 위반 시 영업정지와 허가 취소 등 강력한 행정조치 시행을 예고했다. 이른바 그릇을 불사르고 밥을 땅에 묻는 ‘분기갱반(焚器坑飯)’ 정책이었다. 식당에선 모자란 양을 국수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50여 년 전 처음 시작한 ‘공깃밥 법(?)’은 지금 유명무실 사멸됐지만 그릇만큼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강인한 내구성으로 인해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 밥집에서 만날 수 있다. 공깃밥의 지속가능성 때문인지 한국인의 지금 쌀(밥) 소비량은 과거보다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말았다.

이처럼 홀대를 받을지언정 밥은 매우 과학적인 조리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음식이 분명하다. 밥물을 잡고 섬세한 불 조절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짓는다’고 하는 것이다. 쌀은 굽거나 쪄도 먹을 수 있지만 맛있는 밥이 되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찌고 삶고 굽는 과정이 밥 짓는 과정에 모두 들었다.

인류는 농경문화에 들면서 처음에는 곡물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반죽, 조리하거나 아예 물에 넣고 삶아 먹었다. 빵이나 떡, 국수, 죽이 밥보다 먼저, 즉 밥이 최신 조리법인 셈이다. 인디카 쌀을 쪄내듯 익히는 방식은 인도와 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에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밥을 짓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처음 나왔다. 이후 밥 짓는 도구와 기술이 두루 발달해 현재의 맛있는 밥을 지금의 우리가 먹을 수 있다.

밥을 짓는 도구는 시루, 도기, 무쇠 가마솥, 양은냄비, 압력밥솥, 전기밥솥 등 순서로 발전했다. 전기밥솥의 진화도 놀랍다. 예전엔 일본 코끼리밥솥이 세계적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한국산 밥솥의 인기가 세계적이다. 요즘 밥솥은 압력 조절은 물론이며 진밥, 된밥에 맞춘 뜸 들이는 시간, 잡곡을 넣어 지을 때 미리 불림, 누룽지의 유무까지도 선택할 수 있다. 취사선택(取捨選擇)에 따라 취사(炊事)를 선택할 수 있단 얘기다.

이처럼 밥 짓는 기술과 장비도 좋아지고, 쌀 품종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식당에서 먹는 밥맛은 늘 그저 그렇다. 이유는 바로 한가지. 식당에선 밥을 미리 지어놓는 탓이다. 바쁜(혹은 바쁠) 점심때에 대비해 아침에 밥을 지어 예의 그 ‘스뎅 공기’에 나눠 담아놓는다. 아무리 좋은 쌀로 맛있게 지어도 소용없다. 뚜껑에 눌리고 온장고에 갇힌 밥은 모든 특성을 잃어버린다. 갓 지은 밥알의 매끄럽고 보드라운 식감과 구수한 향은 사라지고, 꽉 눌려 물방울 맺힌 척척한 밥만 남는다.

아무리 맛있는 국과 찬을 내는 집이라도, 이런 과정을 거친 밥은 거개 다 비슷한 맛이다. 사실 잘 지은 밥이라면 별 반찬이 없더라도 맛있다. 널리 퍼져나가는 구수한 밥 향기에 은은한 단맛까지 품은 뜨거운 밥 한술엔 차가운 총각김치 한 조각, 마른 김 한 장, 간장 한술이면 떠넘기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11월부터 햅쌀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로 도정을 마쳐 수분을 충분히 머금은 햅쌀로 금방 지어 먹으면 그야말로 밥이 보약이요, 밥심이 난다는 말뜻도 비로소 이해된다. “언제 밥이나 한 끼 합시다” 인사다운 인사를 건네고 싶다면 정말 밥맛 좋은 곳을 알아놓아야 한다. 잘 지은 밥을 내는 식당, 특색있는 밥집을 몇 곳 모아 소개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서울고기집 솥밥 = 제주돼지 생고기구이를 파는 집인데 점심에 김치찌개와 즉석 솥밥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고깃집답게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여낸 김치찌개는 뜨거운 솥밥과 잘 어울린다. 금방 지은 밥에 칼칼한 국물을 끼얹어 한술 뜨면 뜨거운 풍미가 금세 침을 고이게 한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9길 12 나전빌딩. 1만 원.

◇정원순두부 솥밥 = 50년 가까이 서울 서소문에서 순두부를 팔아온 집이다. 야들한 순두부와 고기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뚝배기는 매콤하면서도 구수하다. 갓 지은 돌솥밥과 퍽 어울린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1길 33. 8500원.

◇동귀리갈칫집 솥밥 = 제주산 갈치를 튀겨서 무한리필해주는 집이다. 갈치는 맛이 좋지만 가느다란 가시가 성가신데 튀겨내니 그냥 씹어먹을 수 있어 편하다. 1인 1 주문 시 추가로 얼마든지 더 준다. 갓 지은 솥밥을 곁들여 주니 밥도 좋고, 누룽지와 먹어도 맛있다. 파스타, 돈가스, 제육볶음 등 다양한 메뉴를 곁들여준다. 제주시 월랑로 83 1층. 1만4900원부터.

◇계류관 참나무능이장작구이 찹쌀밥 = 화덕에서 장작으로 구워낸 닭을 파는 집으로 요즘 핫한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의 맛집이다. 바삭한 장작구이 닭 안에 든 찹쌀밥이 촉촉하고도 고소하다. 장시간 구워낸 시간의 힘이다. 닭 껍질과 살을 적당히 찢어 밥과 함께 곁들이면 세상 어느 ‘치킨’이 부럽잖다. 서울 중구 퇴계로87길 15-17 102∼103호. 1만9000원.

◇송도갈비 솥밥 = 유명한 송도갈비 본점인데 고기뿐 아니라 밥에도 신경 썼다. 달지 않게 간장과 과일만으로 재워낸 뒤 숯불로 구운 양념소갈비는 숯솥밥과 함께 즐기면 좋다. 감자를 넣고 즉석에서 지은 밥에 부드럽고 짭조름한 고기반찬이면 누구나 입이 즐거워진다. 인천 연수구 능허대로 16. 점심 통양념갈비한상 2만8000원. 냉면 또는 솥밥 포함.

◇서산 울엄마 영양굴밥 = 가게 앞 개펄에서 직접 굴을 캔다. 어리굴과 단호박, 밤, 대추 등을 넣고 지은 돌솥밥에는 맛이 제대로 들었다. 그냥 퍼먹어도 황송하지만 따로 재배한 채소와 담근 간장으로 만든 양념장도 빼놓을 순 없다. 쓱쓱 비벼 먹자면 자연과 계절의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2길 74-19. 1만4000원.

◇밀양집 토렴 돼지국밥 = 부평동 깡통시장의 50년 노포. 경남 스타일 돼지국밥집인데 밥을 토렴해서 내놓는다. 종일 우려낸 사골과 머리 고기 육수에 내장 등을 넣어 진한 육수가 밥알에 스며들어 따로 놀지 않는다. 진한 국물 맛을 밥과 곁들이려는 지혜다. 부산 중구 중구로47번길 35. 7000원.

◇효계 계란밥 = 닭고기를 부위별로 숯불에 구워 먹는 집이다. 세세하게 저며낸 닭고기를 직접 구워줘 고급스럽게 즐길 수 있다. 다양한 부위를 맛보고 마지막에 잘 지은 밥 위에 생 특란을 올린 계란밥을 먹는데 이게 또 별미다. 밥에는 따로 살짝 간을 했고 쪽파와 유기농 특란을 올려 한 그릇으로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15길 15 1층.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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