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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한국유사] 청이가 몸을 던진 그 곳..왜 백령도인가

최동현 입력 2022. 01. 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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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목판·활자본에 개작본까지
200종 넘게 나온 심청전
심청 고향도 황해도·송나라 등 제각각
中 남경상인이 인신공희한 인당수
기상악화 전복·조류표류 가능성 높은
中 절강성서 고려로 왕래하는 길목과
변산반도 일대라는 설도
심청각 자리 잡고있는 백령도
삼국유사에 풍랑 심한 곡도로 기록
장산곶과 더불어 군사·교통상 요지
세종·선조실록 등에 험한 뱃길로 유명

"이윽고 배가 한 곳에 당도하였는데 이곳이 인당수였다. 폭풍우가 크게 일어나고 바다의 용들이 싸우는 듯 벼락이 내려치는 듯 크고 넓은 바다 한가운데 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일어나고 폭풍우에 안개마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갈 길은 천리만리나 남고 사방이 검게 저물어 어두워지고 하늘과 땅이 소리 없이 잠기었다. 사나운 물살은 떠들어와 배 앞부분에 탕탕 부딪히고 물결이 우르르 출렁거렸다."

심청전의 일부 내용이다. 심청전은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는 얼개다. 하지만 심청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렇게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다. 심청전은 필사본, 목판본, 활자본뿐만 아니라 개작본까지 포함해 200종이 넘는다.

심청의 고향은 황해도 황주의 도화동이라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초기 심청전 판본에는 송나라 유리국, 대명 남군땅, 송나라 황주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황해도 황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심청전은 고려와 송나라를 오가던 상인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변형되어 17세기 무렵에 형성되었다고 파악된다. 원래 심청 이야기는 송나라, 고려, 조선을 거쳐 변용·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 정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소설 계통과 판소리 계통으로 전승되면서 더욱 복잡해졌고, 일제시기를 전후해 이본(異本)들이 증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남경 뱃사람들입니다. 인당수의 용왕님은 사람을 제물로 받기 때문에 온몸에 흠 하나 없고 효성과 정절을 갖춘 행동을 하는 십오 세나 십육 세 먹은 처녀가 있으면 많은 돈을 주고 살 것입니다!" 심청전에 중국 남경 상인이 등장하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려를 왕래한 송나라 상인 대부분은 절강성·복건성·광동성 등 주로 강남 출신이었다.

고대부터 바다를 통해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오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서해 연안(沿岸) 항로다. 중국 산동반도 등주(登州)에서 북쪽으로 발해(渤海)를 건너 요동반도에 이르고, 다시 요동반도 연안을 따라 동쪽으로 항해해 압록강 하구에 이르는 항로다. 둘째, 서해 횡단(橫斷) 항로다. 산동반도 등주에서 곧장 정동(正東)으로 항해해 백령도 일대에 이르는 항로다. 셋째, 서해 사단(斜斷) 항로다. 중국 강남 일대에서 동북쪽으로 비스듬하게 항해해 변산반도 일대에 이르는 항로다.

남경 상인들이 서해를 건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연안 항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동 시간이 길고, 얕은 수심으로 인해 기상에 따라 좌초의 위험이 있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서해를 동북쪽으로 건너는 서해 사단 항로다. 사단 항로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지만 기상에 따라 전복되거나 조류를 타고 표류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당수는 중국 절강성에서 주산군도를 거쳐 고려로 왕래하는 길목에 위치한다는 견해가 있다. 중국 상인들이 풍향, 조류, 파도를 예측할 수 없는 해역에서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했다는 설이다. 또 서해 사단 항로를 감안할 때, 인당수는 우리나라의 변산반도 일대라는 견해도 제시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최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에는 심청각이 들어서 있다. 그렇다면 왜 백령도 인근에 인당수라는 전래가 남게 되었을까.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성여왕 때 양패가 당나라 사신으로 갈 때, 배가 곡도(鵠島)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나 10여일 동안 머물렀다"고 되어 있다. 곡도는 지금의 백령도다. 백령도는 삼국 시대에 곡도라고 불렸는데, 고려 시대에 백령(白翎)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고대부터 서해 항해의 중간 기착지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백령도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북한의 장산반도가 눈에 들어온다. 불과 13㎞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바다를 향해 서쪽으로 크게 튀어나와 있는 장산반도를 돌아서 항해하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전근대 시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백령도는 서해 횡단 항로를 경유한 외부 세력이 처음 도착하는 곳이고, 장산곶은 서해 연안 항로를 경유한 외부 세력이 반드시 우회해야 하는 곳이었다. 백령도(섬)와 장산곶(육지)은 하나의 세트를 구성하며, 신라 서북에서 가장 중요한 군사·교통상 요지였다.

‘세종실록’에는 "황해도 장연의 장산곶은 바다 쪽으로 4·5식(息)쯤 들어가 있어서 수로가 험난하기 때문에 경기도로부터 평안도에 이르는 조운이 통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1식은 약 30리다. 120~150리, 즉 48~60㎞나 돌출해 있다는 말이다. ‘선조실록’에는 "장산곶 근처는 뱃길이 대단히 험하여 평상시에도 평안도 배들이 언제나 파선당하곤 하였다"고 되어 있다. 또 ‘효종실록’에는 "황해도의 조운선이 장산곶에 이르러 여러 번 엎어졌다"고 되어 있다. 기록에서 보듯이 장산곶은 조선시대 내내 항해가 곤란한 지점이었다. ‘영조실록’에는 장산곶에 대한 군사 대책이 남아 있다.

"장산곶은 바닷길이 아주 험악하므로 황해도 조련(操鍊)하러 나가는 군사가 매번 이곳에서 뒤집어지거나 빠지며, 황당선(荒唐船)이 출몰하는 첫 길이 바로 장연 앞바다이니 진실로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산곶의 북쪽에다 별도로 한 군영(軍營)을 설치하여, 더러는 수사(水使)로 하여금 조련하게 하고 더러는 해당 병영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관장하게 하여 그 조련을 주관하도록 한다면 군사들이 빠져 죽는 근심은 없어질 것입니다. 황당선 또한 감히 멋대로 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1771년 장연부사(長淵府使) 홍화보가 영의정 김치인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장산곶 일대를 항해하는 것이 어려우니, 장산곶 북쪽에 별도의 군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치인이 이러한 내용을 영조에게 아뢰자, 영조는 장산곶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 군사를 조련하도록 명하였다. 항해의 어려움 때문에 군사 조련이나 외적 대처도 장산곶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어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36년 일본 해군성 수로부에서 제작한 '장산곶지압록강구 조선서안(長山串至鴨綠江口 朝鮮西岸)' 해도.

1936년 일본 해군성 수로부에서 제작한 ‘장산관지압록강구(長山串至鴨綠江口) : 조선서안(朝鮮西岸 )’ 해도(海圖)에는 다양한 해저 정보가 담겨 있다. 일반 육지 중심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없는 수심, 암초, 사퇴(砂堆) 등을 확인할 수 있다. 1907년 일본 해군성 수로부에서 제작한 ‘조선수로지’에는 보다 구체적인 정보가 확인된다. 대청도와 소청도 사이는 조류 속도가 3노트인 반면, 장산곶 부근은 5~7노트로 2배 정도 빠르다고 되어 있다. 1노트는 약 1.85㎞/h다. 장산곶 부근의 조류 속도는 시속 9~13㎞라는 말이다.

또 1953년 일본 해상보안청에서 제작한 ‘조선서안수로지’에는 백령도 동단 2.5㎞ 지점부터 남남동 방향으로 폭 280~740m, 길이 10㎞ 정도의 사퇴(砂堆)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해저의 대규모 사퇴와 암초들은 선박 항해에 치명적이다. 특히 대양 항해를 하는 선박 대부분은 바닥이 뾰족한 첨저선(尖底船) 형태였기 때문에, 평저선(平底船)보다 훨씬 위험했다.

백령도와 장산곶 일대는 풍향, 풍력, 조류 방향이 자주 크게 바뀌는 곳이다. 현대에도 기상이 좋지 않으면 항해를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전근대 시기에는 해저 지형을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서해안의 밀물과 썰물의 영향까지 받아야 했다. 당시 가늠할 수 없는 바다의 변덕에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심청전의 ‘인당수’가 백령도와 장산곶 일대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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