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활로 열자..70대 '흙의 화가', 세계 무대로..

2022. 1. 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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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문예위 '아트체인지업' 사업
'흙의 화가' 조도중, 세계 무대 '거장' 찬사
함연지 출연 웹뮤지컬 '보름 오는 날' 인기

팬데믹 시대 예술가에 새 활로와 기회
다양한 예술콘텐츠 만나는 접점 마련
스위스아트엑스포에 걸린 조도중 화백의 작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조도중 화백의 작품들은 직관적인 활기가 느껴지며,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예술 천재의 작품이다.” (스위스아트엑스포 창업자 페트리샤 젠 클로젠의 평론)

수백 가지의 흙을 골라내 자연 그대로의 빛깔을 찾아냈다. 조도중(74) 화백은 ‘소일 아트(Soil Art)’의 창시자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자연의 흙’을 재료 삼아 그림을 그렸다. 1997년 전북 고창의 산속 작업실에서 은둔하며 지낼 당시, “한라봉 크기 만한 붉은 흙덩어리를 꽃으로 착각”한 것이 물감을 대체하는 재료를 사용한 계기였다. 조 화백은 “흙에는 의외로 고유의 색이 많다”며 “물감이 12가지 색의 혼합과 확장인 것처럼 흙은 고유한 명도, 채도로 수천 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 온 다음 날 흙을 캐내 정제 과정을 거쳐 수백 가지 색을 만든다. 흙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조 화백은 “물감은 미끄러지며 색이 칠해지지만, 정제돼 가루화된 흙은 접착력이 없고 미끄러지지 않아 흉내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창시자’라는 수사가 무색하게도 국내에선 그리 화려한 명성을 얻진 못했다. 그러다 70대가 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중문화계에 윤여정(‘미나리’), 오영수(‘오징어게임’)가 있다면, 미술계엔 조도중이 있었다. 세계는 조 화백을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칭송했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아고라 갤러리를 비롯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모셔갔다’. “현대미술에 중대한 공헌을 해줘 감사하다”(마틴 번스타인 아티팩트212(artifact212) 갤러리 대표)는 찬사도 함께 보냈다.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 물감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흙그림의 빛깔”은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한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하는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지원 아트 체인지업’에 선정, 2020년 연말에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구축하자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1967년 제1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최연소로 입상하며 데뷔한 이후 일생을 그림에 몸 바쳤지만, 지금의 성취는 상상 밖의 일이었다. 영어로 게시물을 올리는 홈페이지와 SNS에는 미술계 관계자들은 물론 애호가들이 수없이 방문한다.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의 방문자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 홍콩 등지에서 많이 찾는다.

‘흙의 화가’ 조도중 화백은 2020년 연말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구축한 이후,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자연의 흙’을 재료 삼아 그림을 그리는 조 화백은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칭송받으며 해외 유수 갤러리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조 화백 측은 “10개월 사이에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등 전 세계 10개국 15개 갤러리에서 연락이 와 다양한 전시를 진행했고 현재도 기획 중”이라며 “온라인 활동 이후 아고라 갤러리에서 작품이 8000만 불(한화 965만원)에 팔리며 꼬리를 물고 전시 초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무대에서의 성취로 국내에서도 조 화백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유례 없는 팬데믹으로 오프라인에서의 예술활동은 가로 막혔지만, ‘아트 체인지업’의 지원금으로 구축한 홈페이지, SNS 등의 온라인 활동은 지속가능한 예술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조 화백 역시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도 산속에 틀어박혀 있어 이름도 작품도 알리지 못했고, 외국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방법도 없고 꿈조차 꿀 수 없었다”며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이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가능하게 됐다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트 체인지업’은 오프라인 중심의 예술활동을 온라인으로 확장,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한 사업이다. 2020년 첫 회를 시작, 2021년엔 175개 사업이 선정해 총 40억 5000만 원을 지원했다. 분야는 전 장르를 망라한다. 문학, 시각예술, 연극, 뮤지컬, 무용, 음악, 전통예술, 다원예술 등 기초예술 전 분야의 다양한 작품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 체인지업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웹뮤지컬 ‘보름 오는 날’ [아르뜨락 제공]

공연 제작사 아르뜨락도 이 사업을 통해 웹뮤지컬 ‘보름 오는 날’을 제작했다. 고윤진 아르뜨락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뮤지컬 공연이 연기와 취소를 반복하며 어려워지자, 뮤지컬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온라인 콘텐츠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대형 뮤지컬 제작사가 웹뮤지컬을 선보인 사례가 있지만, 중소 제작사의 입장에선 제작비와 영상 문법 구현의 어려움으로 시도하지 못한 도전이었다. ‘오뚜기 3세’이자 앞서 대형 제작사의 웹뮤지컬 ‘킬러 파티’에도 함께 한 뮤지컬 배우 함연지가 출연한 이 작품은 타로카드를 소재로 한 일상의 판타지 물로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웹뮤지컬 형식은 “뮤지컬 장르의 진입 장벽을 낮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품은 추후 타로카드와 관련한 1분 이하 숏츠로 제작, 또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웹뮤지컬 ‘보름 오는 날’을 제작한 고윤진 아르뜨락 대표 [아르뜨락 제공]

‘아트 체인지업’은 예술가들에게 온라인이라는 새 활로를 개척, 활동 영역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이를 통해 대중에겐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넓혔고, 다양한 K-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조도중 화백은 올해에도 미국에서 열리는 ‘근현대미술 거장 전’을 비롯해 스페인, 스위스 등지에서 다양한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조 화백 측은 “인맥, 자본력의 부족으로 해외 무대에 나갈 수 없는 실력있는 작가들이 이러한 지원을 계기로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게 됐다”며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통해 한국의 작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러한 활동이 K-아트를 선도하고, 한국의 위상을 빛낼 수 있는 첫 걸음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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