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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부지 타인에게 신장 떼어준 두 자매 "하나 떼어주고도 얼마나 건강한데"

박나은 입력 2022. 01. 20. 17:39 수정 2022. 01. 2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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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남·故 박옥순씨 자매
20여년전 자매가 잇달아
생면부지 타인에 신장기증
'자매기증' 국내 첫 기록
암으로 먼저 떠난 동생
'시신기증' 유언남겨
2009년 언니 박옥남씨(오른쪽)와 장기기증의 날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고(故) 박옥순 씨 모습. [사진 제공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1999년 고(故) 박옥순 씨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신장은 두 개라서 하나를 떼어 다른 사람에게 기증해도 생활할 수 있지만,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기증하는 사례는 드물다. 박씨는 신장을 한 번만 기증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주변에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장을 떼어낸 자리에 다시 신장이 자란다면 몇 번이라도 더 나눠주고 싶어요."

그런 박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시신을 경희대 의과대에 기증하며 또다시 이웃 사랑을 실천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0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에 따르면 지난 5일 박씨는 향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며 시신 기증 유언을 남겼다.

박씨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매가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한 사례로 알려진 인물이다. 48세이던 1999년 3월 그는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20대 신부전증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을 두고 '순수 신장기증인'이라고 한다. 한 해 평균 신장 기증이 2000여 건에 달하지만 순수 신장기증인 사례는 10건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8년에는 전체 신장 기증 2407건 가운데 4건, 2019년에는 전체 2687건 중 1건에 그쳤다.

박씨가 신장 기증을 결심한 계기는 언니 박옥남 씨(76)의 영향이 컸다. 5남매 중 셋째였던 박씨는 어머니를 여읜 뒤 둘째 언니 박옥남 씨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박씨는 고인보다 6년 앞선 1993년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자매가 모두 가족이 아닌 타인을 위해 신장을 나눈 것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박씨는 당시 신장을 기증하면서 "우리 언니를 봐라, 신장 하나 떼어 주고도 얼마나 건강하냐"며 만류하는 가족을 설득했다고 한다. 박옥남 씨는 "동생은 신념이 곧고 특히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일에는 한번 결심하면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자매는 신장을 기증한 뒤로도 장기 기증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 평생의 소명입니다." 신장 기증인과 이식인의 모임 '새생명나눔회'에서 활동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신장을 기증한 뒤 박씨는 평소 앓던 두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았지만 2019년 위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항암 치료가 어려웠고 암세포는 이미 폐로 전이된 상태였다.

지난 3월 박씨는 한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살신성인으로 타인이 목숨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지만, 정작 박씨는 불쑥 찾아온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박씨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임종을 기다리겠다"며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암세포가 목숨을 조여오는 가운데 평소 가졌던 이웃사랑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박옥남 씨는 "동생의 시신 기증을 지켜보며 가족 모두가 시신 기증에 대한 뜻을 마음에 품었다"고 말했다.

경희대는 시신을 기증받은 뒤 가족들에게 감사패를 건넸다고 전했다. 감사패에는 '고인이 보여주신 숭고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전체 경희인은 물론 후대 자손들의 마음속에 길이 빛나리라 믿으며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은 "고인은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생명 나눔을 향한 거룩한 의지를 보여줬다"면서 "고인의 숭고한 헌신이 이어져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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