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매일경제

"국익위해 정치적 희생 감내하는 '거룩한 몸부림' 보고싶어" [김황식 전 총리 인터뷰]

이진명,박윤균 입력 2022. 01. 20. 17:39 수정 2022. 01. 21. 08:42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김황식 前국무총리 인터뷰
차기 대통령에 바란다
역대 독일총리에게 배울 점
정권 잃으며 지킨 슈미트 개혁
메르켈 총리가 이어받아 완성
한국 국회는 승자독식 구조
대화와 타협 통해 정책결정해야
1987년 헌법 바꿀 시점
국무총리 임명권 국회에 넘겨
제왕적 대통령 권한 분산 필요
30년 이상 미뤄진 개헌 논의
새 정권 임기 초반에 시작해야

◆ 2022 신년기획 인터뷰 ◆

■ 대담 = 이진명 정치부장

2013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독일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공부하고 돌아온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입을 열었다. 김 전 총리는 반복되는 전직 대통령의 비극과 극심한 갈등, 대립으로 점철된 국내 정치가 제도와 리더십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고 독일 정치에서 교훈을 찾았다. 김 전 총리는 1987년 헌법을 개헌할 필요성과 미래 세대를 위해 복지정책을 완전히 새로 쓸 것을 제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5년 단임제 개헌을 이야기했다.

▷지금 헌법은 1987년 체제에 머물러 있다. 당시에는 장기집권을 막겠다는 좋은 취지의 헌법이었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계속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생긴 게 현실이다. 이제 그 대통령제를 개헌할 필요가 생겼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은 권한 독점을 말한다. 그러니 대통령이 독점한 권한을 분산해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는 그런 정치 모습으로 바꾸는 게 향후 개헌의 핵심이 돼야 한다. 독일이 연정을 통한 협치의 상징처럼 돼 있는데 좋은 참고가 될 거다. 그러한 개헌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 권한 분산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책임총리를 하는 거다. 우리는 지금 총리 임명권을 전적으로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나. 그래서 총리의 독자적 권한이 별로 없다. 장관이랑 비슷한 수준이다. 총리에게 독자적 권한을 주고, 총리 임명권을 대통령 권한에서 떼어내면 된다. 가령 국회에서 추천해 총리를 임명하는 방식이 된다면 좋을 거 같다. 물론 미국의 부통령처럼 러닝메이트로 선출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고, 독일식의 내각제로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총리가 너무 쉽게 바뀌거나 오랫동안 임기를 유지하는 것 또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온다. 독일은 총리에 대해 '건설적 불신임'이라고 해서 의회가 총리를 해임하려면 반드시 후임자를 선임해놓고 불신임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총리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총리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1~2년 이내라도 물러나게 하는 것이 국민 뜻에 맞는 거지, 한번 뽑았다고 해서 임기 내내 불평하면서 바라만 보는 것도 좋지는 않다.

―대선 때마다 개헌 얘기가 나오는데 30년 넘도록 안 바뀌었다.

▷현행 대통령 중심제에 문제가 있다는 데 대해선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개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초반에는 그립을 꽉 잡고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취지에서 개헌 논의를 봉쇄해왔다.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임기 후반에 가서야 문제가 있다는 걸 자각하고 개헌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때는 차기 대권주자들이 부상하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을 선호하는 그런 동기에서 개헌을 반대하거나 미뤄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임기 초반에 개헌 논의의 장을 정치권이나 국민에게 열어주는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개헌이 블랙홀이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정부는 대통령이 하는 국정운영을 꿋꿋이 해나가고, 개헌 논의는 여의도에 맡겨놓으면 된다.

―우리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꼽는다면.

▷독일의 역대 총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그들은 단순히 권력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국가를 어떻게 운영해 국민에게 이익을 줄 건지에 대한 투철한 사명의식이 있더라. 나는 그것을 '거룩한 몸부림'이라고 부르고 싶다. 국익을 추구하고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확실한 사명감이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정치적 손해가 생기더라도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독일 정치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덕목이다. 가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통일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하르츠 개혁안을 만들고, 자신은 정권을 잃는 그런 것을 예상했음에도 기꺼이 국익과 자신의 총리직 상실을 맞바꿔 국익을 취하는 선택을 했다.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등 다른 독일 총리들도 당장 여론과는 다르지만 자기 철학과 소신에 비춰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다수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상대 당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경우에 따라선 자신의 정치적 희생도 감수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정치 지도자에게도 필요하다. 브란트의 동방정책도 영토를 포기해야 하는 굉장히 힘든 정책이었고, 슈미트의 핵 배치도 당내 평화주의자들의 반대가 심해 국가안보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추진했던 정책이었다.

―우리나라는 자리를 잃으면 그 지도자가 만든 개혁안도 같이 사라진다.

▷중요한 지적이다. 슈뢰더 총리의 개혁안을 상대 정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어받았다. 그게 독일을 유럽의 병자에서 성장 엔진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지식포럼에서 만난 슈뢰더 총리 말로는 "솔직히 그 정책의 결과가 일찍 나오면 선거에 유리할 줄 알았는데, 정책 성과보다 선거가 먼저 다가왔다"고 하더라. 어쨌거나 슈뢰더 총리는 선거에는 실패했지만 국익을 위해 성공한 정책을 내놓은 셈이 됐다.

우리는 정권이 안 바뀌고 대통령만 바뀌어도 전 정부가 했던 것을 뒤집는 일이 많다. 독일이 우리와 다른 점은 정책이 청와대나 당내 소수 몇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정당과의 대화, 여론 수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숙성 등 이런 오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정책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책을 결정하는 입법권이 합리적으로 행사되지 않고 있어서일 수 있다. 거대 여당이 등장하면서 입법권이 비대해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입법권이 대화와 타협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고 싶다. 각 정당과 정파 간의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에 의해 결정된 정책이라면 국민 전체의 결집된 의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국회의 현실은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갈등과 대립, 다수에 의한 지배, 즉 승자 독식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러니 국민의 뜻이 절반만 반영된 정책이 나오는 것이고, 정권이 바뀌거나 다수당이 바뀌면 뒤집어지는 거다.

―이번 대선에서는 청년정치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20·30대가 다음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주역이기에 그들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권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계적 추세도 그러하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그들에 대해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 세대 간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는 가운데 청년정치도 활발해졌으면 하는데, 소통과 대화보다는 마치 세대 간 대립과 갈등, 투쟁하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그건 서둘러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재정, 모래에 물 붓듯하면 안돼…미래 위해 복지정책 새로 써야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국가부채를 함부로 늘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선후보들이 마구잡이식으로 내놓는 복지정책에 대해 우려하며 복지정책을 종합적으로 다시 쓸 것을 제안했다.

―차기 정부가 꼭 좀 해줬으면 하는 과제가 있다면.

▷복지정책을 정교하게 전면적으로 새로 짰으면 좋겠다. 재정건전성, 국가부채, 미래 사회에 대한 부담….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연결해 증세를 할 건지, 세출을 조정할 건지 새로 정했으면 한다. 지금 대선후보들이 누구 할 것 없이 지원하겠다는 얘기만 하는데, 그 우선순위는 어떻게 할 것이고, 복지 항목은 어떻게 나눌 것이며, 복지 중복이나 누수 방지는 어떻게 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울 거며….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다음 세대의 부담도 줄이고, 국가경쟁력 훼손도 최소화하는 쪽으로 큰 틀의 정책을 다시 짰으면 한다.

―복지와 증세는 늘 논란이 많으니 대선후보들이 논의를 꺼린다.

▷무책임한 거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모범적인 복지 모델을 가진 북유럽을 보면 부러울 정도의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엄청난 갈등과 투쟁의 역사가 있었고 시행착오가 있었다. 우리도 미래 세대의 부담, 전 국민 개세주의, 고세율·고복지로 갈 거냐, 중세율·중복지로 갈 거냐 등등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 충분한 논의와 고민이 있어야 한다. 연금 문제도 등한시하고 있는데 하루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국가부채 문제를 걱정하셨는데.

▷정치인들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어쨌거나 국가부채비율이 낮을 때 국가신인도가 유지되고 그걸 바탕으로 외화 차입도 손쉽게 할 수 있고 이율도 저리로 할 수 있는 게 있다. 또 아직 우리에게 여유가 있다는 건 무책임한 거다. 코로나19가 비상상황인 건 맞지만 이런 비상사태가 이번이 끝이 아니고 언제 어떤 식으로 또 생겨서 재정을 투입해야 할지 모른다. 가정 살림과 똑같다. 내 자식들을 생각한다면 가급적 빚을 안 써야 한다. 내 자식이야 빚더미에 눌려 살든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먹고 잘살겠다고 마구 빚을 내서 쓰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모래에 불 붓듯이 사라지는 건 막아야 한다.

▶▶김 前총리는…

△1948년 전남 장성 출생 △광주제일고·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14회 △광주지법원장 △대법관 △제21대 감사원장 △제41대 국무총리 △2014년 독일 대십자공로훈장 수상 △2017년~현재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2018년~현재 호암재단 이사장

[정리 = 박윤균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