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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백남준의 '다다익선'

도재기 논설위원 입력 2022. 01.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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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 4년간의 보존복원 작업을 끝내고 시험 운전을 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예술과 과학은 상반된 듯하지만 이만큼 뜨거운 관계의 연인도 없다. 예술적 감성과 과학적 이성을 온탕·냉탕으로까지 구별하는 것은 근대성의 폐해다. 최근 각 분야에서 융합·연대·협업의 강조는 모든 걸 이분법으로 갈라치기하려 한 근대성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과학자의 냉철한 이성을 숱하게 자극했다. 과학기술의 산물인 휴대용 튜브 물감은 화가를 화실에서 들판으로 나올 수 있게 해 빛과 색채의 인상파 회화를 낳았다. 과학과 예술은 그렇게 ‘컬래버’(협업)로 서로를 발전시킨 반려자다.

토라진 연인들처럼 과학과 예술은 서로 다른 보폭으로 어긋나기도 한다. 예술품의 핵심 재료가 기술 발전으로 구식이 돼 없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디지털카메라로 필름과 인화지가 급감해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작품세계를 구현하는 사진가는 필름·인화지 확보가 숙제가 됐다. 한지 장인들이 사라지면서 한국화가는 전통 한지를 구하는 게 급선무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의 작품도 그렇다. 그가 1980년대 작품에 사용한 부품은 당시 최첨단이었지만 이젠 골동품 가게에서도 구할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다다익선’(1988년작)이 브라운관 모니터의 노후화, 부품 조달의 한계 등으로 2018년 이후 작동이 중단된 이유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이 4년간의 보존·복원 기본작업을 마치고 시험운전에 들어갔다고 20일 밝혔다. 고장난 모니터를 수리하고 일부는 평면 디스플레이로 교체했다. 백남준의 만년 대표작에 다시 불이 켜진 것이다. ‘다다익선’은 브라운관 모니터 1003대를 원형의 5층탑 형태로 쌓고 동서양 각국의 문화 상징물 등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부활한 ‘다다익선’은 관람객에게 기존과는 다른 여러 생각할 거리도 선사해 의미가 깊다. 현대 미디어아트들은 ‘다다익선’과 같은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핵심 재료의 교체가 작품의 원본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예술과 과학의 끈끈한 관계도 사유할 수 있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이 인류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은 백남준의 작품철학도 되새기는 감상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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