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름 자영업자]④"유치원 때부터 가졌던 요리사 꿈, 결국 포기했어요"

박재하 기자 입력 2022. 1. 21. 06:01 수정 2022. 1. 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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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2년 만에 빈털터리에 빚쟁이 신세"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자영업 하고 싶은 마음 없어"
확장 이전하기 전 최복수씨(40)의 일식당. (최복수씨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최복수씨(40)는 유치원생 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위해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식당에서 설거지 등 잡일로 시작하며 경력을 쌓았고 돈을 모았다.

2014년, 최씨는 꿈을 이뤘다. 서울 구로구에 6평짜리 일식당을 여는 데 성공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에서 맛있는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간절한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이어지면서 결국 폐업을 선택했다. 이 기간 약 11만명의 자영업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가게를 접었다. 최씨는 그들 중 하나였다.

폐업을 앞둔 최복수씨의 일식당. (최복수씨 제공) © 뉴스1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코로나19

최씨는 2014년 처음 가게를 열자 금세 단골들이 생겼고 지인들을 데리고 오고 싶다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다. 늘어나는 손님에 맞춰 대출까지 받아 가며 가게를 20명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겼다.

그러던 최씨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9년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식당에도 번져 당시 매출이 15%나 줄었다. 그래도 최씨는 손님들에게 더 퍼주는 등 사업수완을 발휘해 줄어든 매출을 복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숨을 돌리던 중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최씨는 "1~2개월 고생해서 매출을 95% 수준으로 올리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매출의 40%가 날아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매출을 다시 올리기 시작한 최씨에게 뒤따라온 '영업 제한'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최씨는 "영업 제한이 시작된 후 손님들도 안 오기 시작해 어느 날은 온종일 오는 손님이 10명도 안 됐다"며 "그날 손질한 생선은 당일에 바로 팔아야 하는데 손님이 오지 않아 버리기만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0년 9월 처음으로 수도권의 모든 음식점에서 오후 9시 이후 취식이 불가능해지자 외식업 카드 매출액이 급감했다. 당시 서울의 경우 외식업 카드매출액은 전년 대비 14.9% 감소했고, 10월에 들어서도 6.9% 줄었다.

단골들이 최씨를 도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씨는 "3일 연속 예약해 주시던 단골도 있었고 제 가게가 없어지면 초밥 어디서 먹냐고 말씀하시며 자주 오시는 손님도 있었다"며 "그렇게 계속 도와주셔도 나가야 하는 고정비용이 너무 많아 한계가 있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대출도 다 받으면서 가지고 있는 보험, 30년 된 청약, 심지어 아내 보험도 다 깼다"며 "어떻게든 버텼지만 결국 2억원 정도 손해만 보고 장사를 접어야겠다고 판단해서 문을 닫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최씨처럼 폐업을 생각하는 자영업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간된 '2021년 KB 자영업 보고서 : 수도권 소상공인의 코로나19 영향조사'에 따르면 향후 3년간 코로나19가 지속된다면 운영중인 매장 휴폐업을 고려한다는 소상공인이 48%를 기록했다.

하지만 폐업조차 쉽지 않았다. 최씨는 "그냥 폐업하게 되면 그동안 받은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해서 개인회생을 신청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변호사 선임 비용도 낸다"며 "폐업 비용도 따로 있어 이러나저러나 계속해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12월 23일 발표된 한국은행의 '2021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 폐업률이 11.8%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2.7%)보다 낮아졌다. 폐업을 할 경우 손실보상이나 대출상환유예 등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14일 오후 한산한 모습의 서울 명동거리의 한 매장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2.1.14/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꿈' 산산조각…손실보상 제대로 최씨는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손실은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헌법에 나온대로 공공의 이익 때문에 영업을 제한하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하는데 대출만 지원해 줬다"며 "지원금도 닭 모이 주듯이 100만원, 50만원씩 줬는데 한 달 고정 비용만 300만원이라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업손실만 제대로 보상해 줬으면 버텼을 텐데 이런 식으로 자영업자한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또 어떠한 전염병이 나타날지 모르는데 그때도 이렇게 대처할 것 같아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자영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비판했다.

최씨는 결국 요리사의 꿈을 포기했다. 그는 "저만의 가게에서 정당한 가격을 받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는데 국가가 그걸 짓밟아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노력해 왔던 목표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씨는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빈털터리에 빚쟁이가 돼 있어 극단적인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먹여 살려야 하는 아내랑 2살짜리 아이를 생각하며 버텼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현재 가게를 넘겨받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오토바이를 사서 배달 기사를 하든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든 뭐라도 해보려고 한다"며 "망한 판국에 위험한 일 아닌 일 따지면서 일하면 못 산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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