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은 아파트 3층 높이 '쓰레기 산'입니다 [2022 연중기획 지구 무죄 인간 유죄①]

2022. 1. 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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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들도 도심도 불법 쓰레기 투기 몸살
전국 불법폐기물 26만t..20t트럭 1만3000대
외관 멀쩡한 마을 옆 공장안엔 쓰레기 더미
비닐·페트병부터 건축 폐기물까지 다양
여름엔 악취..하부 파이프엔 오·폐수 줄줄
1t트럭으로 매일 옮겨도 총 41년이나 걸려

쓰레기는 그림자 같은 존재다. 분명 존재하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으니 잊고 지냈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환경 기준이 강화되고 쓰레기 매립이 포화에 도달하면서 불법 쓰레기 투기는 인적 드문 곳을 넘어 일상 옆까지 침투했다. 전국 곳곳에 퍼진 불법 쓰레기 규모만 26만여t에 이른다. 그 현장을 가봤다.

지난 18일 충남 천안시 한 마을. 축사와 비닐하우스 사이 마을 길을 오르자 눈 덮인 ‘바위 봉우리’가 보였다. 다가가니 착각이었다. 바위 정체는 1t 크기의 마대자루들. 거대한 조경석 크기 마대자루엔 쓰레기가 가득했다. 이미 100여개 마대자루가 계곡 쪽에 쌓여 있었다.

계단 오르듯 마대자루를 밟고 올라섰다. 창고 외벽이 나왔고,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내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쓰레기 산이다.

원래 이곳은 폐기물 처리장이었다. 건설 폐기물을 이용해 발전소 등에서 쓰일 고형 연료를 만들었다. 하지만, 2018년 고형 원료 사용 기준이 강화되면서 부실 업체의 고형 연료는 시장에서 퇴출당했고, 그 여파로 이곳 역시 문을 닫았다. 이곳에 남아 있는 쓰레기는 1만5000여t. 1t트럭으로 매일 쓰레기를 옮긴다면 총 41년이 걸릴 규모다. 창고 안팎에 쌓인 쓰레기가 아파트 3층 높이는 돼 보였다. 어렵사리 쓰레기 더미에 올라갔다. 정상에 오른 듯 마을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말 그대로 쓰레기 산이다. 규모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건 쓰레기 종류다. 폐기 드럼통엔 ‘알레르기성 피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니 노출 시 의사 진찰을 받으시오’란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드럼통 입구엔 검은색 찌꺼기가 보였다. LPG 가스통도 곳곳에 있었다. 타다 남은 건자재, 폐타이어, 비닐 등 온갖 쓰레기는 다 모였다. 마을 인근에 쌓였으니 주민들도 고통이다. 여름엔 악취가 코를 찌른다. 창고 하부 파이프에서는 오·폐수도 흘러나왔다. 주민 이모(70) 씨는 “(쓰레기를 치워 달라는) 얘기를 계속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 지난해 불까지 나서 난리였다”고 전했다.

빈 창고에 몰래 쓰레기를 불법 투기, 외관상으론 전혀 알 수 없는 불법 현장도 있다. 충남 아산시 한 부품공장. 간판까지 걸려 있는, 여느 공장과 다를 바 없는 외관이었다. 하지만, 창고 안엔 기계 대신 쓰레기만 가득했다. 숨은 쓰레기 찾듯 창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새로운 쓰레기 더미가 쏟아졌다. 비닐, 페트병 등 생활 쓰레기부터 콘크리트나 단열재 등 건축 폐기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좁은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마을이 있다. 쓰레기 투기를 발견한 것도 주민들이다. 지난해 봄 공장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들린 후 새벽만 되면 대형 트럭이 오갔던 것. 이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직접 확인하자 트럭에 담긴 건 불법 폐기물 쓰레기였다. 주민 항의에 경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현재 추가 반입은 멈춘 상태다. 하지만, 이미 창고에 가득 쌓인 쓰레기들은 처리가 요원하다. 한 주민은 “쓰레기 더미 옆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하느냐”며 “이런 곳까지 쓰레기를 버릴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불법 쓰레기 투기·방치 쓰레기 규모는 전국 26만여t에 이른다. 21일 헤럴드경제가 환경부에 정보공개 청구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불법 투기·방치 쓰레기 규모는 99개소에 걸쳐 총 26만2635t인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시·도 별로는 충북에 방치·투기된 쓰레기가 약 5만7000t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4만7000t) ▷충남(4만5100t) ▷인천(3만9600t) ▷경북(3만8200t) ▷전남(1만5400t) ▷전북(1만4700t) ▷경남(7000t) 순이었다.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는 주체는 주로 폐기물처리 업체들이다. 정상적인 업체는 기업으로부터 폐기물을 받아 소각·매립 처리해주는 대가로 종류에 따라 t당 30만~50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불법으로 운영되는 일부 미등록 폐기물처리 업체는 시세보다 30%가량 저렴한 가격에 쓰레기를 처리해주겠다며 돈을 받고서 임대 창고나 산속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다. 운임비 등을 제외하더라도 20t 트럭 한 대 분량을 불법 폐기하면 180만원가량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하거나 전국 단위의 불법 투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조직적인 움직임까지 포착된다. 통상 고발 접수 및 수사 등을 거쳐 업체에 책임을 추궁하지만, 대부분 비용 부담 능력이 없는 영세 불법 업체들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처리하고 업주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려 해도 비용 회수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방치만 해둘 수도 없다. 불법 쓰레기 처리에 투입됐거나 투입될 예산도 900억원에 이른다. 2019년 이후 3년간 국비 예산 815억원을 투입했고, 올해도 예산 58억원을 책정했다. 앞으로도 불법 쓰레기 투기 행태는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수도권 매립지 사용 종료가 예상되는 2025년 이후엔 ‘쓰레기 대란’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처리 단가 상승에 따라 불법 처리에 따른 취득 이익도 커질 수밖에 없다. 조직적인 불법 처리 시도가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도 쓰레기 불법 투기 방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환경부 폐자원관리과 관계자는 “지난 2020년 이후로 처리업체의 처리 능력을 5년마다 확인하고 있고, 부당이익의 3배 이하에서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제도를 개선했다”고 말했다.

김상수·최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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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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